일상의 다양한 희로애락의 다른 표현 통해 현실 비판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야, 이 빵꾸똥꾸야!" 인터넷에선 연일 '빵꾸똥꾸' 같은 현실을 개탄하고, 연인들은 거리에서 서로를 향해 '빵꾸똥꾸' 운운하며 사랑싸움을 한다. 아무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권고 조치를 내려도, '빵꾸똥꾸'는 이미 국민 유행어가 됐다.

어감상 욕이 분명한 '빵꾸똥꾸'가 전 국민적으로 애용되는 데에는 암묵적인 수용의 합의가 있다. 하는 쪽은 일단 후련하고 통쾌하다. '어린이용' 비속어임을 감안하면 듣는 쪽도 마냥 기분나쁘지만은 않다. 이 말이 권력자에 대한 비판에서 지인에 대한 애정 표현까지 폭넓게 쓰이는 이유다.

현실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연극 속 인물들도 관객에게 대놓고 욕을 한다. 욕쟁이 할머니를 보러 식당을 찾는 손님들처럼, 관객은 기꺼이 이들의 욕설을 받아들이고 즐거워한다. 노골적인 욕의 '선언'이, 오히려 욕하는 자의 상황과 성격을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듣는 자가 분노보다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 욕은 그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소통이 된다.

욕쟁이 캐릭터, 미운 건 사실 내 자신

만화가 강풀의 원작을 연극으로 옮긴 <그대를 사랑합니다>. 제목은 낭만스럽기 그지없지만 이 연극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말은 '니미'다. 그 다음은 '염병', '젠장할'이 수위를 다툰다.

연극 '욕'
이 욕들은 전부 김만석 노인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니미, 힘 좀 써봐!"라는 말로 연극을 시작하는 김만석은 이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도, 데이트 중에도, 친구가 죽어도, 줄곧 '니미~'를 입에 달고 산다. 무엇이 불만스러운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사는 김만석은 누군가가 자신의 비위를 건드리기만을 기다리는 '욕 자동판매기' 같은 캐릭터다.

처음엔 생경하게 받아들여지는 그의 욕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과거와 성격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마누라가 위암으로 죽기 전에 먹고 싶다던 게.. 우유였어.. 니기미.. 겨우 먹고 싶은 게 우유라니.. 근데 한 방울도 못 마셨어.. 의사가 우유는 절대 안 된다고 얘기하는 바람에.. 평소에도 밥상 머리에서 트림한다고 구박깨나 했는데... 니기미... 더 좋게, 더 따뜻하게 말해줄 수도 있었는데..." 시종처럼 함부로 대하던 아내를 위암으로 잃고 나서야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김 노인은 항상 욕을 한다. 세상을 향해 욕을 하고 고성을 내며 손가락질을 하지만, 비난의 대상은 사실 그 자신이다.

하지만 송이뿐 할머니와 새로운 염문을 쌓으면서 그의 욕이 순화되는 과정은 재미를 준다. '빵꾸똥꾸'처럼 귀엽기마저 하다. 연애 중인 김만석의 '니미'에는 분노와 역정이 없다. 관객은 '니미!'에서 '니~미~'로 변해가는 그의 억양의 변화를 느끼며 급기야 귀여운 욕의 향연에 자연스레 빠져든다. 적의와 분노 대신 슬픔과 허망함, 반가움과 즐거움이 담긴 욕에서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연극을, 현실을 똑바로 봐라 관객들아

"여러분이 극장에서 늘 보았던 것들을 여기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늘 들었던 것들을 여기서는 듣지 못할 것입니다." 무대 위의 배우는 다른 작품에서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모양이다. 하지만 차츰 객석을 향한 존칭은 하대로 바뀌더니 급기야 배우들은 관객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급기야 객석에 물 한 양동이를 퍼붓는 것으로 모독은 그 대미를 장식한다.

연극 '관객모독'
국내에서 처음 <관객모독>이 공연됐을 때만 해도 모멸감을 못이겨 공연 도중 문을 박차고 나가는 관객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더 센 수위의 욕을 요구하는 관객마저 생기고 있다. 그래서 버전업된 <관객모독>은 공연 때마다 극을 다르게 진행하고 때로는 관객을 직접 무대에 올려 함께 극을 진행하기도 한다. 대본에 충실한 교과서적 욕설과 정형적 대사는 더 이상 관객을 효과적으로(?) 모독할 수 없다고 판단, 최근 현실을 감안한 시의성 있는 대사들도 추가되고 있다.

'관객'은 '배우'와 '희곡'과 함께 연극의 3요소로 꼽히지만, 실제 연극에서 관객은 대체로 감상자에 머물고 만다. 관객 역시 잠재적으로 이런 사실을 전제하고 연극을 '감상'하러 온다. 결국 무대와 객석 사이엔 이중의 벽이 만들어진다. <관객모독>의 욕과 물 세례는 바로 이런 벽을 허물어뜨리는 유무형의 창이다. 부패하고 부조리한 현실과 그것을 방조한 구성원들을 향한 욕설은, 동시에 현실의 도피처로서의 연극을 찾은 관객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욕이 금지되는 세상? 욕이 필요한 세상!

오는 19일부터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공연되는 블랙 코미디 연극 <욕>은 욕의 출처와 배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은 헌법 1조 1항을 '욕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로 바꾼다는 이색적인 설정으로 흥미를 돋운다. 이 법의 희생자가 된 남녀 두 주인공은 사형을 언도받고 집행일만 기다리다 감형조건으로 1억 원이라는 큰 돈을 요구받게 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결국 욕하게 만드는 사회의 불합리성을 말해준다. 중산층의 붕괴가 마름모형 사회구조를 눈사람형으로 변화하는 현실에서 욕마저도 금지된다는 설정은 결국 강자의 약자에 대한 무한착취, 무한지배를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극단 사조 제 56회 정기공연
한 관객은 "결국 우리 사회도 어느 순간 욕에 관한 법이 생겨 욕 한 마디로 애달픈 생을 마감하는 억울한 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며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연극은 유머와 춤과 음악이 어우러져 즐거움을 자아내는 분위기였지만, 극 속 현실과 비슷한 실제 현실의 암담함이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공연 관계자 역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서민, 인상 써야 할 일이 더 많은 서민들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한다.

욕하지 않는 사회가 가능한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부제는 '참을 수 없는'. 결국 욕이란 힘 없고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분과 한을 분출할 수 있는 무난한 해방구이기도 하다.

욕의 본래 목적은 그 대상에게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안겨주는 것이지만, 일상의 욕은 다양한 희로애락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욕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는 연극 대사들이 때론 정제된 언어보다 더 큰 울림과 경각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