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문화평론가·작가가 말한다2009 팝·패션 핫이슈… 지드래곤, 씨엘, 서인영, 엄정화 등 꼽아

2009년 팝 시장은 비욘세와 블랙아이드피스, 그리고 레이디 가가 이 셋이 주인공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인물은 레이디 가가로, 팝에 문외한일지라도 그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그저 엽기 황당 패션, 자위 퍼포먼스, 양성애자 발언 등 선정적인 몇 가지 단어로만 기억되지만 사실 그녀는 10대 초반부터 작곡을 하고 뉴욕의 클럽이란 클럽은 전부 누비며 공연을 해온, 문화적 정체성이 확고한 아티스트다. 얼마 전에는 비욘세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했으며 프라다 등 하이패션계의 내로라하는 하우스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가장 잘 팔리는 스타일 아이콘이기도 하다.

한국의 연말 가요제는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거나 레이디 가가를 따라하는 아이돌로 넘쳐났다. 조금만 노출이 있거나 난해한 패션을 시도해도 어김 없이 한국의 레이디 가가라는 별명이 따라 붙고 있지만 사실 한국에는 그녀처럼 예술의 전방위를 아우르며 다른 분야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샘을 제공하는 아티스트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떼어서 만들어 볼 수밖에.

이 일으키는 논란, 서인영의 대중적 반향, 의 난해함, 낸시랭의 가십성을 떼어내면 레이디 가가가 될까? 디자이너와 문화 평론가, 작가들이 말하는 한국의 레이디 가가는?

디자이너 이상봉

2010 S/S 이상봉 의상을 입은 레이디 가가
그녀는 누가 뭐래도 지금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다. 이전 마돈나 이상의 파워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는 점, 어떤 것도 소화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다음에 어떤 옷을 입을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예측 불허 등이 그녀가 가진 매력이다.

주로 구조적이거나 노출이 많은 스타일을 즐기는데 내가 파리에서 선보이고 있는 구조적인 옷들과 콘셉트가 맞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지난 해 방한 이후로 내 의상을 입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얼마 전 파리에서 열린 신곡 발표회 장에서도 2010 S/S 컬렉션의 하얀색 투피스를 입었는데 의외로 상당히 클래식한 선택이었다.

레이디 가가는 패션계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배우들은 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려는 반면 가수들은 앨범이 새로 나올 때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패션과 통한다. 마돈나와 장폴 고티에가 만나 탄생한 원뿔 브래지어가 좋은 예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로 강렬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아이콘은 아직 없지만 엄정화가 가장 가까운 예가 아닐까? 그녀는 매 앨범마다 이제까지의 그녀와도 다르고 다른 어떤 가수들과도 다른 콘셉트를 들고 나왔다. 용기도 있고 노래와 스타일도 늘 잘 들어 맞았다. 성숙미와 완성미, 그리고 하이 패션의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가장 흡사하다고 본다.

디자이너 김종실

가수 엄정화
'남들과 다른'. 나는 레이디 가가 패션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시도하는 것은 진정한 아티스트의 본분이다. 어떻게 팔까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듣는 것.

가로수길에 문을 연 벨앤누보에서도 그와 같은 생각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빈티지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국내에서는 삐삐밴드의 보컬이었던 이 그녀와 비슷하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고할 뿐 아니라 음악에 있어서도 1위가 목표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음악과 의상으로 표현한다. 게다가 빈티지를 상당히 창의적으로 활용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

레이디 가가는 앤디 워홀에 비견할 만하다. 그가 만화, 패션 등 대중적 요소를 가지고 기존 파인 아트계에 반향을 일으켰다면 레이디 가가 역시 하위 문화격인 동성애, 노출(섹시함이 아닌 불편하게 만드는), 그로테스크함으로 상위 문화에 영감을 주고 있다. 레이디 가가가 보여주는 것들은 늘 매끈하고 보기 좋은 것들만 늘어놓는 기존 팝계에서는 볼 수 없던 것들이다.

그녀는 앤디 워홀의 아트 팩토리를 모델로 한 '하우스 오브 가가'를 운영하면서 음악과 스타일, 무대 장치 등 모든 분야에서 쉬지 않고 파격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처음엔 마이너였다가 나중엔 하나의 문화 양식이 되어서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늘 있어왔던 일이다.

이윤정
가가의 음악은 일렉트로니카를 반영했지만 혁명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적이다. 유행에 민감한 프로듀서가 제작했고 멜로디가 잘 살아있다. 여기에 그녀의 혁신적인 비주얼이 더해지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 셈이다. 이런 모습에 열광하는 것은 음악계보다는 사실 패션 잡지 쪽이다.

파격적일수록 더 쿨하고 핫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분야의 특성상 레이디 가가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아이콘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이 레이디 가가에 가장 근접했다. 그는 상업적인 아이돌 가수이면서도 크리에이티브한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다만 표절 시비 때문에 음악적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다르다.

대중성 있는 음악과 비주류적인 태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15년 전의 박진영도 비슷한 예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좋아할 만한 곡을 만들면서 이미 그때부터 지금도 논란이 될 만한 비닐 바지를 입었고 섹스에 대한 과감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서인영은 스타일은 있지만 음악적 색깔이나 태도와 연결되지 않음으로써 인정받지 못했다. 사실 음악에서 스타일이나 태도가 묻어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가수가 많다 보니(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음악과 스타일이 일치해 파괴력을 갖는 경우가 드물었다. 요즘에는 패션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젊은 가수들 사이에도 가능성이 보여지고 있다. 반대로 인디 음악계에서 자리를 잡아 주류로 올라오는 가수가 있다면 그들의 스타일이 화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씨엘
2000년대 들어서 빌보드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흐름 중 하나는 클럽 문화다. 레이디 가가는 이 클럽 문화의 아우라를 주류 문화로 끌어 올린 장본인이다. 그녀의 인기는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하다'라는 말을 증명한다. 이제는 콘텐츠 자체보다는 가십이나 화보를 통해 대중의 말초 신경을 건드릴 수 있으면 된다. 음악이 매우 훌륭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레이디 가가의 음악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단의 평가도 훌륭하고 대중에게도 인정받았다. 다만 타블로이드 저널에서 원하는 요소들 – 가십이나 기행, 논란이 되는 발언, 확 튀는 비주얼 등 – 을 그녀가 정확하게 짚어낸다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한국에서는 레이디 가가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 정도의 창의력과 음악성을 가진 아티스트도 없을뿐더러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일 한국의 음반 시장 환경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연예인들은 대중의 구미를 맞추는 역할이지 정치적, 사회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극도로 소극적이다.

패션저널리스트 홍석우

레이디 가가의 음악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입는 옷이나 행위에 있어서는 다른 1위 가수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정의를 내리자면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패션을 융합한 전위적인 스타일이다. 기존 패션계의 뮤즈가 케이트 모스 같은 모델이었다면 레이디 가가는 패션계가 아니라서 더 신선한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직업도 스트립 댄서였다고 하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서브 컬처 코드가 하이 패션계에 새로운 충격으로 와 닿지 않았을까?

지드래곤
최근 국내에서 레이디 가가와 비교되는 가수들 중에는 투애니원이 비교적 가깝다. 시크하고 멋지게 또는 예쁘고 귀엽게 입는 사람들은 많지만 과감함과 파격에 있어서는 아이돌 중 최고다. 물론 레이디 가가는 스스로 입고 그들은 입혀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겠지만.

미술작가 박성철

레이디 가가를 보며 떠오른 것은 한 마디로 '과하다'였다. 가장 '핫'한 패셔니스타로 불리고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패션을 보고 지나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한국에 레이디 가가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했을 때 과거 기생들의 가체를 떠올렸다. 가체는 조선 시대 미의 상징이었다. 클수록 아름답고 파워가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목에 무리가 가더라도 과도하게 쌓아 올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레이디 가가의 과도한 패션이 연상됐다.

작품명 '스타일 - 레이디 가가'에서 가가는 더할 가(加)자 두 개를 겹쳐 쓴 것이다. 더하고 더한 위에 또 더해서 만든 가체 머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지나쳐 상식을 벗어난 현대 사회 미의 기준을 뜻한다. 플라스틱으로 내부를 만들고 그 위에 알루미늄 선을 하나하나 붙여서 완성했다.

외적인 것에만 눈이 먼 현 세태를 비판했지만 눈에 익지 않은 것들을 시도해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사물에 대해 뒤바꿔 생각할 기회를 주는 레이디 가가의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정작 풍자를 목적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일단 결과물이 이렇게 아름답지 않은가.

박성철 '스타일-레이디 가가(加加)'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