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TEXT@MEDIA FEST문인·미술작가·미디어아티스트 등 협업 7개 공연 후 전시

'파라랭귀지: 페이션트 콘트롤' 영상 감상하는 관객
지난 한 해 문지문화원 사이에서는 텍스트와 매체 관계에 대한 실험 공연이 수차례 열린 바 있다. 'TEXT@MEDIA FEST'란 제목의 이 연속 공연은 문인, 미술작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 장르를 뛰어넘은 젊은 예술인들이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고민하는 장이었다. 뉴미디어 시대,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작가와 관객이 경험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 한 것.

이 21세기적 텍스트 실험은 7개의 공연으로 남았고, 이 공연을 기록한 작품과 책을 모아 지난 7일부터 홍대 근처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21세기적 텍스트 실험

미래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20세기 초 일련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1980년대 일렉트로닉 문학의 핵심은 '텍스트 실험'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두 운동은 텍스트와 매체의 관계에 대한 당대의 성찰에서 비롯됐다.

'TEXT@MEDIA FEST'는 이 일련의 텍스트 실험,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미술작가 구동희, 시인 김경주, 김민정, 소설가 김중혁 등 한국의 젊은 예술인 16인은 지난 해 6월부터 한 달에 한 차례씩, 미디어와 텍스트의 관계를 '낯설게 하는' 텍스트 실험 공연을 선보였다.

'도축된 텍스트' 설치 작품과 영상
이 공연을 기획한 문지문화원 사이 관계자는 "(책과 같은) 익숙한 매체에서 벗어나 텍스트와 텍스트 경계를 낯설게 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외연적 확장을 기대했다. 이 실험은 '예술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가?'란 존재론적 고민과 닿아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진행된 일곱 개의 공연은 한국 젊은 예술인들의 고민을 드러낸다.

프로젝트의 출발은 성기완 시인과 구동희 작가의 <파라랭귀지:페이션트 콘트롤 Paralanguege:Patient Control>.

뉴미디어와 매체 관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보여준 이 공연에서 두 작가는 공연장 한쪽 벽면을 분할해 한 면에는 미리 녹화한 영상을 교차 상영하고, 다른 화면에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4개의 방에 CCTV가 배치되고 컨트롤러(구동희 작가)의 제어에 따라 각 방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감시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퍼포머들의 모습과 실제 퍼포머들의 모습은 같은 듯 달라 보인다. 실제와 조작의 구별을 교란시키는 이 퍼포먼스는 공연 당일 관객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전달되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텍스트와 뉴미디어 관계를 성찰적으로 바라보았다는 평을 들었다.

김경주 시인과 아이잭 신 미디어아티스트가 선보인 <도시설화 Urban Myth>는 뉴미디어, 특히 모바일 미디어가 갖는 확산의 가능성을 텍스트 창작과 유통과정에 적용한 공연이었다.

김중혁 소설가와 최수환 미디어아티스트, 이세옥 작가가 공동 작업한 <자동기계들의 밤, 쌍쌍-바에서 불러요 A Night of Automata>는 자동이란 키워드로 텍스트, 사운드, 영상에 접근한 공연이다. 사운드 프로그래머가 소설가에게 말없이 타이핑으로 기계어를 가르쳐주면, 소설가(김중혁)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소설을 쓰고, 영상작가는 텍스트와 미디어에 대한 대화를 담은 영상을 프로젝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연이 끝난 5개월 후 김중혁 작가는 이날 공연에 대한 단편소설 <공인중개사의 밤>을 발표하기도 했다.

심보선 시인과 이태한 작가가 참여한 <텍스트 해상도 Text Resolution>는 시 쓰기를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계적 컴퓨팅'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실험극이다. 강정-신용목, 김민정-김소연, 심보선-진은영 등 6명의 시인의 작품 한 편을 골라 무작위로 작품 속 시어 20-40개를 꼽고, 이 시어가 들어가는 시를 파트너 시인들이 각자 한 편씩 쓰는 방식. 공연을 기획하고 시를 썼던 심보선 시인은 "시 쓰기를 데이터 컴퓨팅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사실은 디지털적 사유"라고 설명했다.

김민정 시인, 오재우 작가, 류성훈 미디어아티스트가 참여한 <어른어린이의 반죽놀이 Clay Play For Kidults>는 종이매체와 뉴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텍스트 기록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를 생산하는 주체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공연의 전반부에서 한 시인(김민정)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정리한 텍스트와 그 기록에 쓰인 단어를 웹에 검색해 찾은 랜덤한 이미지와 영상을 3개 채널로 프로젝션했다.

후반부에서 관객들이 입장 때 미리 받은 4개 단어를 조합, 앞서 상영된 시인의 내러티브를 잇는 문장을 즉석에서 만들고 김민정 시인의 얼굴이 인쇄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 명씩 낭독을 이어갔다. 이 공연은 문학의 내러티브 구성에 있어서 관객의 역할을 고려했다는 점, (시인의 일과를 적은) 준비된 텍스트와 즉흥적으로 발화된 텍스트 사이 충돌, 연결 방식을 실험한 것이다.

한유주 소설가와 이준 작가가 작업한 <도축된 텍스트 Butchered Text>는 음식과 텍스트를 은유적으로 연결해 읽고, 텍스트를 먹고 맛보는 텍스트로 전환하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공연은 크게 글자(자르기), 단어(썰기), 문장(섞기), 단락(찌기), 글(먹기) 등 5개 무대로 구성됐고, 각각의 무대에서 고기를 도축하고, 저미고, 섞고, 조리하고, 먹는 행위를 보여주었다.

난해함? 새로움!

21세기적 텍스트 실험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심보선 시인은 "이 프로젝트에서 즐거운 체험은 협력의 즐거움이었다. 내 아이디어는 이태한 작가의 아이디어와 만나 긴장하고 타협하고 상승했다. 동시에 대화와 협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가장 어려웠는데, 타 장르 작가들과 협력 작업이란 포맷이 (처음에)어색했고, 대화를 할 때 말을 아꼈고, 어떤 구체적인 기획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이디어에 봇물이 터지고 신명나게 회의를 하게 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한유주 소설가는 "기획부터 공연까지 6개월 이상 시간이 있어 다른 작가들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이준 작가와 주제어를 선택하고 기획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는데, 공연을 준비하며 문학 이외 장르, 미디어에 대해 예전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성기완 시인은 "장르가 다른 작가들의 공동 작업은 국내 거의 없던 터라 공연 전 난해함에 대해 걱정했지만, 대부분 관객들이 텍스트 실험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감상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진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총 16명의 작가가 참여한 'TEXT@MEDIA FEST'는 자리를 옮겨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오는 20일까지 전시된다. 총 7개 공연 중 설치형태로 전시 가능한 작업 6 작품이 전시 중이다. <파라랭귀지:페이션트 콘트롤>에서 프로젝션 된 영상의 재편집본, <자동기계들의 밤, 쌍쌍-바에서 불러요>에서 키네틱 타이포와 고연에 대한 메타적 영상작업, <텍스트 해상도>에서 발표된 6편의 시와 프리젠테이션 자료들, <어른어린이의 반죽놀이>에서 프로젝션된 3채널 영상, <도축된 텍스트>의 텍스트영상과 설치물 등이다. 이원 시인, 임민욱 작가의 <폴리 히스토리 Poly History>는 전시 마지막 날인 20일 공연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