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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미디어, 사후세계와 통하다?

[미디어아트프리즘] 미디어아트와 샤머니즘
과학기술 통해 인간을 세계와 하나로 묶는 영적 교류 가능성 모색
  • 콘스탄틴 브랑쿠시
근대조각과 달리 원시조각과 현대조각이 갖는 공통점은 물성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조각은 대리석이 주를 이루었다. 매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대리석은 회화에서의 유화와 공통점이 있다.

노먼 브라이슨의 지적처럼 수묵화의 먹이나 수채화의 물감과 달리 유화는 덧칠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림이 재현하고자 하는 모델과 거의 흡사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근대 서양회화가 모델과 똑같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유화의 덕택이다. 그래서 브라이슨은 유화를 투명한 매체라고 말한다.

이때 투명하다는 말의 뜻은 감상자가 유화로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마치 실재 모델을 보는 듯 착각을 하기 때문에 정작 눈앞에 있는 이미지가 유화라는 매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가장 훌륭한 유리창은 유리창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투명한 유리창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각에서 대리석 또한 그러하다. 대리석 자체는 매우 강직한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그 표면을 잘 다듬을 경우 다른 돌과 달리 부드럽고 유연한 질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피디아스나 르네상스의 미켈란젤로와 같이 훌륭한 조각가의 손을 거치게 되면 대리석은 생생한 피부와 매끈한 질감을 지닌 생명체로 거듭난다.

한 마디로 대리석이 지닌 돌이라는 매체의 특성, 즉 물성은 사라져버리고 그 어떤 실물보다도 완벽한 다비드의 상이 된다. 대리석이라는 물성은 투명한 유리창처럼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말게 되는 셈이다. 고대와 근대 조각은 매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근대 유화처럼 투명한 예술이다.

  • 콘스탄틴 브랑쿠시
로댕 이후 근대 조각은 더 이상 투명한 예술이 되기를 포기한다. 재료의 물성을 전혀 감추지 않는다. 심지어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가 매우 매끈하게 다듬은 대리석 조각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 표면의 질감만으로는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브랑쿠시의 작품은 어떤 현실적인 사물도 묘사하지 않은 매우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태를 나타낸다.

구체적인 현실 모델의 부재함은 이미 브랑쿠시의 조각이 투명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감상자는 이 조각물에서 조각의 물성 자체에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밖에 없다.

김은영의 작품은 조각에서 물성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녀의 작품은 일정한 길이의 못에 엄청난 고열을 가해서 용접하여 탄생한 것이다. 고열에 의한 용접, 그라인딩(갈아내기), 파운딩(해머나 망치질) 등을 통해서 못의 형태만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못의 질감 자체가 다르게 표현된다.

수많은 못을 용접하여 만든 덩어리는 일상적으로는 경험하지 못한 못의 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서 작가의 내면(스스로의 억압과 해방)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뿐 어떠한 모델도 재현하고 있지 않다. 재현이 아닌 물성의 표현이 작품의 핵심인 셈이다.

물성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서 현대조각은 원시조각과 상통한다. 아직까지 현존하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원시조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원시조각의 대부분은 목조조각이다. 이들은 나무를 활용하여 조각을 하지만 고대 조각가나 근대 조각가처럼 실재 모델과 똑같은 모습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콘스탄틴 브랑쿠시
가령 그들의 조각이 실재 모델처럼 보여지기를 원한다면 나무결이나 거친 표면처럼 나무의 재질적 특성을 나타내는 요소들을 감추려할 것이다. 하지만 원시조각은 나무의 재질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그들은 나무결을 그대로 살려서 그것을 결코 훼손하지 않은 채 목조각을 만든다. 말하자면 재질의 물성을 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원시조각의 물성에 대한 강조는 현대조각의 맥락과 전혀 다르다. 현대조각이 재질 자체에 관심을 둔다면 원시조각에서 물성의 강조는 재료 자체의 강조가 아닌 샤머니즘적 특성에서 나온다.

예컨대 원시부족민들은 모든 나무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이미 고사하여 조각의 재료로 활용되는 나무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조각의 재료로 활용되는 나무 자체도 하나의 생명체이므로 주어진 결을 그대로 살려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나무 자체의 생명력이 훼손되지 않고 물성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다.

원시부족민들에게 조각 자체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영령의 주술적 힘을 지닌 것인 셈이다. 따라서 원시조각의 물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초자연적인 영령과 관계한다는 주술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론가인 로이 애스콧(Roy Ascott)은 미디어 아트에서 원시부족의 샤머니즘 형태가 부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얼핏 들으면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 주장은 사실 그다지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샤머니즘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교류가능성이다.

  • 김은영, 덩어리
샤머니즘은 매우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을 세계와 하나로 묶는 힘을 지닌다. 말하자면 영적인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애스콧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상호주관적인 네트워크이다. 이는 그의 예술적 관심이 미디어 아트 중에서도 텔레마틱 아트(telematic art, 원격예술)에 있음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인간의 지성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가능하며, 오늘날의 네트워크는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샤머니즘 전통에서 주술사가 초자연적인 영령과 교접하는 것은 제의에 참여한 구성원 모두의 영적 합치를 전제한다. 이 경우 의식은 현실의 견고한(solid) 육체로부터 벗어나서 증기(moist)의 상태가 된다. 샤머니즘의 영적 네트워크는 이러한 증기의 상태이다.

애스콧이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에서 찾고자 하는 긍정적인 힘은 바로 이러한 영적인 네트워크이다. 그래서 그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이러한 미디어를 모이스트 미디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모이스트 미디어는 초자연과 상통하는 샤머니즘의 경우처럼 자신의 견고한 신체를 벗어난 증기적 상태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애스콧이 미디어 아트에서 추구하는 것은 샤머니즘의 부활이며, 새롭게 형성된 이상적인 네트워크 공동체이다.

첨단의 과학기술과 샤머니즘은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스콧의 경우처럼 적지 않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과학기술을 통하여 긍정적인 의미의 샤머니즘을 부활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네트워크 예술가인 아이언 폴록(Ian Pollock)과 재넛 실크(Janet Silk)의 작업 "데드 에어, 무덤 너머로부터 발산되는 전파"(Dead Air, Radio from beyond the Grave)은 네트워크와 소통의 범위를 사후세계로까지 확장하고자 한다. 이들은 라디오 주파를 이용한 간단한 장치를 통하여 우리의 공간에 떠돌고 있지만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이들의 장치가 실제로 존재하는 혼령의 소리를 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공기 중에 진동하지만 소리로 지각되지 않는 소리들의 채취를 통해서 소통의 범위를 확산할 수 있다는 확신을 담고 있다. 과학과 샤머니즘, 문명과 원시가 반드시 이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 아이언 폴로과 재넛 실크, Dead air, Radio from beyond the 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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