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슈말 독일건축박물관장<메가시티 네트워크>전 부대행사로 강연 열고 가능성과 과제 진단

"한국 현대건축의 독창성은 전통적 표상을 재판단하는 데서 나옵니다."

지난 13일 방한한 피터 슈말 독일건축박물관장은 한국 현대건축의 수준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이 건축을 통한 국제적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제안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메가시티 네트워크> 전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특별 강연에서였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는 2000년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와 건축물을 모아 유럽에 알린 순회 전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독일건축박물관을 시작으로 베를린, 에스토니아 탈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다.

시작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열린 동서양의 공공공간과 관련한 포럼이었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건축을 접한 이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에게 전시를 제안한 것.

그 결과로 구성된 전시는 유럽 곳곳에서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스타일을 찾았다"(프랑크푸르터 노이에 프레쎄), "변화하는 환경에서 뛰어난 실험정신과 복합적 문제를 다루는 유연성이 한국 건축가들의 특징이다" (바우벨트) 등의 비평을 끌어냈다.

조남호의 '교원고도연수원'
은 '유럽의 눈으로 본 한국 현대건축'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메가시티 네트워크> 전에 대한 유럽의 반응을 전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건축의 가능성과 과제를 진단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이다.

이슈 1. 한국은 해외 스타 건축가의 실험장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많은 해외 스타 건축가들의 작업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 건축가들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비판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좋은 현상이다. 수준 높은 건축물을 통해 한국의 명성이 높아질 수 있다. 선진 건축 기술이 전수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국 건축가들도 해외에서 스타가 될 수 있다. 내가 주목하고 있는 건축가들은 조민석, 조병수, 최문규 등이다. 이들은 여러 차례 국제건축비엔날레, 해외 저널 등에 소개되어 인지도가 높아졌다.

최문규의 '쌈지길'
한국 건축가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내가 언급한 건축가들은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현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자산이 되었다.

2008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 한국관을 설치한 것처럼 좀더 조직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국제적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웹사이트는 건축을 미디어아트와 결합할 수 있는 통로로도 의미가 있다.

이슈 2. 한국 현대건축의 수준은 어떤가.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한국정원' 정도밖에 몰랐다. 다행히 김성홍 교수가 지역의 맥락에서 한국 현대건축을 잘 정리하고 부각시켜주어 그 다양성과 독창성을 알게 되었다.

서구의 눈으로 보았을 때 한국 현대건축은 매우 새롭다. 특히 전통적 표상을 다시 구성하는 실험적 시도가 흥미롭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최문규의 쌈지길이나, 전통적 건축 양식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한 조남호의 교원고도연수원 등이 그 예다.

조병수의 'ㅁ'자집
조민석의 부티크 모나코 같은 주상복합건물에서는 서구에 없는 새로운 용도와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은 또 어떤가.

세계화가 진행될 수록 지역이 각자의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다양성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현대건축은 서구를 비롯한 세계를 놀라게 만들 수 있다.

이슈 3. <메가시티 네트워크> 전에 대한 독일사회의 반응은?

이것이 '한국' 현대건축이라면 북한 건축은 어디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는 분단과 통일을 겪은 독일사회의 역사를 반영한 것이다.

통일 이후 동독을 재건하는 것은 서독 건축가에게도 중요한 과제였다. 사회주의 하에서의 동독 건축가들은 주로 공동주택이나 기념비적 건물을 지어 왔기 때문이다. 서독 건축가들은 동독의 건축 프로젝트라는 기회를 얻는 대가로 특별세를 냈다. 그것으로 통일 비용의 일부를 충당했다.

피터 슈말 관장
한국 현대건축도 곧 이런 상황을 겪게 될지 모른다.

이슈 4. 1979년에 설립된 독일건축박물관은 세계 최초 건축전문박물관 중 하나다. 박물관의 역할과 의의는?

박물관인 만큼 건축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아카이브화한다. 후세대에게 건축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전시, 심포지엄을 열고 도서관을 운영하며 건축 문화를 독일사회에 대중화하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이후 동독 건축전을 통해 건축사를 정리하는 한편, 해외 건축가를 독일에 소개하는 전시를 열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의의 중 하나는 세계 여러 건축박물관과 공조하는 것이다. 건축가들이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것을 지원한다. 한국에도 건축박물관이 만들어진다면 이 국제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강연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은 전시에 소개된 건축물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건축 문화 전반과 현안들에 대한 제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건축가들의 창의성이 활발히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기업이 입주하는 건물도 세워졌을 텐데 그 수준은 어떠한가.

건물 자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공장화된 대형건축사무소에 건축을 의뢰했기 때문에, 독창성 있는 건물이 나오기 어려웠던 것 같다. 대부분의 대형건축사무소는 창의적 건축보다 비용을 낮추는 효율적 경영에 관심이 있다.

올해 열릴 상하이엑스포의 독일관 건물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공모를 주관한 정부 부처가 문화 관련 부서가 아닌 상공부였기 때문이다. 대형건축사무소를 통해 최고 수준의 건축물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최근 한국에서는 '창조도시', '문화도시'라는 기치 하에 지자체 주도 건축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창조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세계적 경향이다. 건축이 일익을 담당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프로젝트의 방향을 민간 영역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특히 소규모 건축사무소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해 진행해야 한다. 도시를 창조적인 허브로 만들려면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기본이다.

옛 기무사터에 신축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물도 한국 건축계의 큰 관심사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고 있나.

바람직하지 못한 역사를 잘 변환해내는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나치의 생체 실험에 동원되었던 화학 회사 이기팜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군이 40년간 주둔한 곳이다. 독일 정부는 이곳을 대학으로 재건했다. 이 과정에 역사가들이 참여했고, 그들이 역사의 비극을 환기시키는 전시관을 만들었다.

정부에서는 다른 이름을 붙였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여전히 '이기팜관'이라고 부른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벤치마킹해도 좋을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도 전시와 강연을 통해, 또 그 건축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공공에게 인식시켜야 하지 않을까.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