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탄생 150주년 내년 서거 100주기 맞아 공연 줄이어

2000년 무렵, 세기 말의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클래식 음악의 레퍼토리는 거대한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이전까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던 레퍼토리를 가진 베토벤이 왕좌를 구스타프 말러(1860~1911)에게 내줘야 했던 것. "곧 내 시대가 올 것"이라던 말러의 예견은 사후 90여 년이 흘러서야 마침내 이루어진 셈이다.

2010년은 말러 탄생 150주년이다. 내년은 서거 100주기이다.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는 음악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어,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가 꼭 거쳐 가는 레퍼토리"라는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의 말이 아니더라도, 또한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가 아니더라도, 말러의 교향곡은 무릇 지휘자라면 한번쯤 욕심 내 볼 만한 레퍼토리가 됐다.

불과 50년 전,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말러는 무대에서 환영받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지휘자들은 거대하고 난해한 말러 교향곡을 지휘하기 꺼렸고 관객들은 후기 낭만파 음악에 지루함을 느꼈다.

'도덕적인 디오니소스의 광기'

한 비평가가 말러의 지휘 장면을 보고 남긴 말이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성격의 조합은 말러의 음악과 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이는 현대의 시대성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러의 음악을 미디어를 통해 알려왔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말러의 음악의 근본적인 갈등과 대립을 이같이 설명했다.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지휘할 성시연 지휘자
"작곡가 말러 대 연주자 말러, 유대교도 대 기독교도, 충실한 신자 대 의심 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대 약아빠진 사람, 변방의 보헤미안 출신 대 세상물정에 밝은 빈 사람, 파우스트적인 철학자 대 동양의 신비주의자, 오페라를 작곡한 적이 없지만 오페라적인 교향곡을 작곡한 사람 등등. 이런 이중적인 대립구도는 끝없이 이어진다. 말러의 음악 속에서 음양이 전면적인 대립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그는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것과 달리 에너지를 얻기 위해 때때로 육식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최대한 '고기처럼 보이지 않게' 해달라는 특별 주문을 하기도 했다.

빈 오페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 등에 음악감독으로 불려다녔던 말러는 생전엔 작곡가보다 지휘자로 더 명성이 높았다. 시즌과 시즌 사이 여름에 바짝 작곡에 몰두했던 그는 다섯 곡의 관현악 연가곡과 아홉 곡 완성 교향곡 그리고 미완성의 교향곡 한 곡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페러, 빌럼 멩엘베르흐,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 레너드 번스타인 등 지휘자들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소위 '말러 음악 선구자'로 불리는 이들이다. 말러가 음악의 위대함보다는 스타 지휘자들의 열정적인 레코딩 덕분에 현대 클래식 음악계를 휘어잡았다는 비아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말러를 불러내는 20여 개의 지휘봉

올해는 어느 때보다 '말러 교향곡'에 대한 여러 지휘자의 다양한 해석을 밀도 높게 감상할 수 있다. 2월 4일 서울시향 성시연 지휘의 '대지의 노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만 20여 개 남짓한 공연이 줄줄이 이어진다.

말러 교향곡 지휘하는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말러 교향곡 4번과 6번을 제외한 교향곡 전곡이 한 차례 이상 무대에 올려진다. 서거 100주기인 내년에도 이 열기는 식지 않을 것으로 보여 2년 동안 말러 교향곡은 원 없이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독일 작가 장 폴 프리드리히 리히터의 소설 <거인>에서 영감을 받은 교향곡 1번 '거인'. 초인적 삶을 지향하거나 우상시하는 내용을 담았을 거라는 추측과 달리 천재로서의 삶의 허무함이 표현된 작품이다. 서울시향의 정명훈(11월 3일, 예술의전당)과 열흘 뒤 주빈메타가 이스라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11월 13일, 세종문화회관 / 11월 14~15일, 예술의 전당)와 공연한다. 특히 주빈메타는 기존 자신의 레코딩에서와 마찬가지로, 출판 당시 말러가 의도적으로 배제한 '블루미네 악장'도 포함할 것 같다.

교향곡 2번은 '부활'이란 표제가 붙은 웅장하고 화려한 작품이다. 서울시향 정명훈(8월 26일,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대전시향의 장윤성(2월 28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광주시향의 구자범(5월 17일~18일, 옛전남도청앞광장), 부산시향의 리 신차오(12월 17일, 부산문화회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러의 작품을 '부활'시킨다.

1시간 43분, 말러가 남긴 교향곡 중 가장 길이가 긴 곡이 교향곡 3번이다. 총 6개 악장으로, 4악장에선 성악가가 노래하고 5악장에선 어린이 합창이 들어간다. 서울시향의 정명훈만이 이 작품을 연주하는데, 서울시향은 올해 교향곡 2번과 3번을 음반사 낙소스를 통해 발매해 해외 진출에 시동을 건다.

말러가 자신의 부인인 알마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쓴 선율이 담긴 교향곡 5번. 덕분에 가장 대중적인 악장을 포함하는 이 작품은 4개 단체가 연주한다. 대전시향의 장윤성(4월 9일,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부산시향의 리 신차오(4월 20일, 예술의전당), 서울유스오케스트라의 박태영(5월 9일,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안드레스 넬슨스가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10월 26일 예술의 전당에 선다.

데뷔 음반을 말러 교향곡 1번으로 택했던 헝가리 출신의 이반 피셔는 교향곡 7번을 내한공연(성남아트센터) 레퍼토리로 택했다. 10월 8일,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연주하는 이반 피셔의 정평이 난 말러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수많은 연주자와 합창단이 등장해 관객을 압도할 정도의 감동을 전하는 천인(千人) 교향곡인 8번은 대전시향에서 장윤성(12월 30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이 선보인다. 대규모 편성이라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이다.

교향곡 10번은 사실상 미완성 작이다. 말러가 완전히 마무리한 악장은 1악장이고 나머지 악장은 스케치 형태로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음악학자나 작곡가 등이 보필해 5악장으로 완성해냈다. 이중 데릭 쿡 버전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되는데, 제임스 드프리스트가 서울시향(10월 7일, 예술의전당)을 이끌고 교향곡 10번을 데릭 쿡 버전으로 연주한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최악의 앨범

영국의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에서 최악의 말러 교향곡 앨범을 소개했다. 다음은 그녀의 선정 앨범과 선정 이유.

"1번은 말러가 의도적으로 배제한 블루미네 악장을 기어코 집어넣은 오자와(또는 메타, 래틀)의 연주가 있으며 2번은 '부활'의 기미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시노폴리의 연주가 있다. 3번은 연주를 망친 주범인 잘못 고른 메조소프라노였고 (라인스도르프, 예르비), 보이소프라노를 기용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4번과 성악 훈련이 제대로 안 된 데시 할반을 맞아들인 발터의 4번 역시 작곡가의 지시로부터 한참이나 먼 연주였다.

콘드라신이 지휘한 모스크바 필의 호른 연주는 5번의 팡파르 서주에서 음정이 어긋난 채로 악을 쓰며, 호렌슈타인이 스톡홀름 필하모닉을 이끌고 녹음한 6번은 그냥 연주가 형편없었다. 불레즈의 7번은 인간적인 온기를 살균한 메마른 연주다. 8번의 경우 텐슈텐트와 솔티의 연주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음반이 사실적인 소리 전달에 실패해 와르르 무너지며 카라얀은 9번을 마치 죽음의 불안이 전혀 드리워지지 않은 관현악 협주곡처럼 다룬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살로넨이 지휘한 <대지의 노래>에 뜬금없이 등장하는데, 그의 상대역인 스웨덴 출신의 바리톤도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10번의 경우 권위 있는 데릭 쿡의 버전 말고 슬래트킨, 바르샤이, 지크하르트, 올슨 등이 지휘한 별볼일 없는 네 개의 버전이 있다. 이 모든 음반이 최악의 말러 연주로 손색이 없지만 내 기억 속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졸연은 로린 마젤(1983년, 빈 필하모닉)이 지휘한 '부활' 교향곡 음반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