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음악제, 태싯 그룹공연, SFX Seoul 등 다양한 시도

태싯 그룹의 공연GameOver(사진제공=Tacit Group)
현대음악은 어렵다. 게다가 때때로 거북하다. 기자에게도 현대음악에 대한 불편한 기억은 남아있다. 프랑스 파리, '아고라 페스티벌'중 샤틀레 극장에서의 본 공연에서다.

이 페스티벌은 현대음악가 피에르 불레즈가 창립한 프랑스 현대음악의 보고인 이르캄(IRCAM)이 주최하는 음악축제로, 현대음악의 첨단과 무한한 변주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기자가 본 공연은 파두 가수인 크리스티나 브랑코와 바리톤 성악가 프랑크 뵈르너의 매우 기묘한 듀오 연주였다.

브랑코와 뵈르너가 번갈아 부르는 형식이었는데, 브랑코의 음성은 그대로 들려주면서 뒤이어 나오는 뵈르너의 노래는 컴퓨터 조작을 통해 비틀고 왜곡되었다. 무대 옆에 자리한 이르캄의 컴퓨터 음악 디자이너의 솜씨다. 처음 가득 찼던 객석은 반복되는 파열음이 듣기 거북했든지, 시간이 흐를수록 일행과의 엑소더스는 꾸준히 이어졌다. 현대음악은 다 이런 걸까?

주위를 좀 둘러보면 현대음악 작곡가는 우리와 충분히 호흡하고 있다. 영화 <와호장룡>의 OST를 작곡하고 동영상을 통해 유튜브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동참할 것을 권유하던 탄둔은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다. 영화 <피아노>의 마이클 니먼과 <트루먼 쇼>의 필립 글래스 역시 미니멀리즘 계열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이다. 생각보다 많은 현대음악 창작자들이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음에도, 현대음악이란 단어에는 왜 듣는 순간 멀어지게 하는 저주의 주문이라도 숨겨진 것처럼 보이는 건지.

"지금처럼 작곡가가 많은 시대도 없을 거예요. 정말 홍수같이 작품이 쏟아집니다. 과거의 음악은 이미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곡이 추려진 상태지만 현대음악은 그 단계가 없었죠."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인 '아르스 노바'를 꾸려가는 진은숙 작곡가의 말이다. 그녀가 이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듣는 곡은 100곡을 넘는다.

서울시향 아르스노바 시리즈를 통해 아시아 초연된, 피에르 불레즈의 송가2(바이올린:강혜선)(사진제공=서울시향)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현대음악이 쏟아지고 있지만 연주 한번 되지 않고 사장되거나 연주가 되더라도 이후에 다시 묻히는 곡들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옥석을 가리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공연장의 텅텅 빈 객석을 보면 과연 현대음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차고 오른다. 창작자들과 창작자와 대중의 매개자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대중에 손 내미는 현대음악

세계의 현대음악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어는 없다. 그동안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던 독일이 경제적 쇠퇴를 겪으면서 독주 체제가 무너졌고 작곡가 각자의 세계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진은숙 작곡가 역시 너무나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하나의 화두로 정리할 수 없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다.

이 독자적인 세계를 한데 모아주고 선보이는 자리, 현대음악제의 역사는 한국에서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 한 명인 강석희 작곡가가 창립한 범음악제는 올해로 38년에 이른다. 매년 가을 서울에서 열리는 이 음악제에 세계적인 현대음악 연주단체가 초청되거나 국내 작곡가들이 공모해 선발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현재 ISCM(국제현대음악협회)의 한국지부가 범음악제를 이끌고 있다.

20여 년이 된 대구국제현대음악제, 영국에서 한국 작곡가들의 음반을 제작하며 국제적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합포만 음악제, 한국에서 현대음악과 동의어로 불리는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 그리고 광주 정율성 국제음악제, 진주 이상근 음악제 등이 국제적인 규모로 성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음악가들은 여전히 고민하고 갈증을 느낀다.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서.

올해로 38주년을 맞는 범음악제 리허설 현장(사진제공=범 음악제 사무국)
작곡가 진규영


현대음악은 내게 있어 동시대의 음악을 의미한다. 청중이 현대음악에 괴리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무조음악의 시조인 쇤베르크 때 정도로 보여진다. 이때부터 현대음악이라면 조성이 없고 청중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으로 보여진다.

어떤 시대마다 필연적인 현대음악이 존재한다. 쇤베르크의 획기적인 양식의 등장도 세계대전으로 불안한 유럽 정세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몰락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1950~1960년대에는 전자음악이 발달하면서 기계적인 음악(음렬음악)이 한동안 주류를 이뤘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유럽도 포스트모던 스타일이라는, 조성음악으로의 회귀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시대마다 사회변화와 무관하지 않게 음악도 변하고 있다.

나 역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작곡할 때만 해도 전자음악을 썼지만 지금은 좀 시들해졌다. 한마디로 첨단기술에 사람들이 익숙해진 만큼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된 거다. 하지만 이것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그동안 현대음악은 순수음악인들의 소유였다. 그만큼 사회에 대한 역할은 부족했다고 본다. 시대와 호흡하는 현대음악을 끌어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테트리스와 음악은 어떻게 인터랙션하는가

Fantastic Four(김덕우, 김유영, 문웅휘, 양지인), 예술공간헛, SFX Seoul Radio 2008(사진제공=SFX Seoul)
지난해 여름, 두산아트센터에서는 독특한 멤버 구성의 흥미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바나나걸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테크노 디제이 가재발과 작곡가인 장재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를 주축으로 하는 태싯(Tacit) 그룹의 첫 단독 공연이다.

무대 위 컴퓨터 앞에 나란히 자리한 여섯 명의 연주자(?)가 테트리스를 하면 그 화면이 고스란히 관객들이 보는 스크린에 쏘아진다. 키보드를 누를 때마다 미리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음으로 변환되는 메커니즘은 테트리스가 아닌 채팅을 할 때도 적용된다.

작곡가들이 오선지 악보를 앞에 두고 악상을 고민하는 일은 보기 힘든 광경이 됐다. 디지털 시대에 적극적으로 테크놀로지를 차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컴퓨터 음악제인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SCIMF)가 올해로 17회를 맞으며 매년 성장해가는 것만 보아도 젊은 작곡가들의 달라진 작업의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작곡가 장재호


해외의 경우, 작곡과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전자음악을 배우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현대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전자음악을 알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전자음악을 통해 젊은 창작자들은 오히려 20세기 예술의 아방가르드적인 난해함에서 벗어나 사람들과의 유대관계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는 알고리즘 음악이다. 컴퓨터에서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 프로그램이 최종적인 결과를 만드는 거다. 내가 최종적인 음악을 생각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먼저 만들고 그 프로그램으로 하여금 음악을 만들게 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만든 음악이 사실 일반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도한 것이 태싯 그룹이었다.

알고리즘 아트의 맥락을 가져오면서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게임을 접목해 대중과 소통을 시도했는데, 막상 해보니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관객의 호응 면에서 보자면 성공적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서는 음악적인 면이나, 무대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소리 같은 경우도 굉장히 디테일한 작업이 필요해서 좀 더 손 볼 필요가 있다. 또 무대에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다 보니 무대가 썰렁한 부분도 보완해야 할 점이다. 음악을 좀 더 음악답게, 공연을 더 공연답게 하는 것이 올해의 과제다.

변방의 예술, 사운드 아트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통 실험작업을 하는 김온 작가는 OHP필름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파도를 그려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끄적인 듯한 그 흔적은 기타를 안은 최정우 작곡가에게로 가서 멜로디로 태어났다.

그런가 하면 일산 신도시에 위치한 개농장 앞에서 노래 부르기 퍼포먼스를 영상물로 작업한 조은지 작가는, 개들이 짖고 낑낑대는 소리에 맞춰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를 열창했다. 어쩐지 구색이 맞지 않아 보이는 공연은 빽빽하게 자리한 관객들 사이에서 진행됐다. 미디어 아트와 현대음악의 접점으로 불리는 사운드 아트 퍼포먼스가 지난 13일,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리던 현장이다.

일상과 주변의 소리, 노이즈 음악으로만 대변되던 사운드 아트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SFX Seoul(서울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가 2007년 처음 막을 올렸지만 현대음악 아티스트들은 일제히 이들을 외면했다. 정규 클래식 교육의 수혜 여부로 현대음악가와 사운드 아티스트가 분류된다는 사운드 아티스트의 뼈있는 농담처럼, 사운드 아트는 같은 핏줄을 타고 났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서자의 운명을 타고난 예술이다.

20세기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는 주방의 기구나 꽃에 물주기, 끓는 냄비 뚜껑 열고 닫기 등을 '워터워크(water walk)라는 퍼포먼스로 엮어내며 사운드 아트를 실험했음에도 평생 작곡가라는 타이틀로 살았다. 그의 경우를 보더라도 사운드 아트에 대한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시선을 짐작할 수 있다.

SFX Seoul 디렉터 양지윤


현대음악 아티스트들은 사운드 아트에 대해 설익은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2007년에 처음 SFX Seoul을 맡았을 당시, 행사 후원을 맡은 기관 중 하나인 서울문화재단에서 누구에게 심사를 맡겨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미디어 아티스트'나 '현대음악가'라고 답했다.

하지만 행사 후 콘서트홀에서 만난, 심사위원 중에 한 명이었던 현대 음악가는 사운드 아트가 '날것'임에 분개했다. (물론 그녀는 내가 디렉터인 줄 몰랐다) 이는 아직도 한국의 현대음악이 부르주아적 감수성과 소리에 대한 닫힌 태도로 일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들의 이러한 분개나 놀라움은 긍정적인 것이라 믿었다.

그 후, 몇 년 사이 조금씩 현대음악 아티스트들이 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줄리어드 음대와 한예종을 졸업한 음대생들이 직접 현대음악 작곡가인 리게티의 작품을 연주하고 해설하는 공연(Fantastic Four)도 포함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관람객들 역시 이전의 어색함보다는 흥미롭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지난 13일 상상마당에서 열렸던 퍼포먼스에서 단 한 명의 관객도 자리를 뜨지 않고 열중하는 모습은 나를 놀라게 했다.

사운드 아트의 범위는 다양하다. 노이즈 음악도 있지만 특정 지역의 소리를 녹음해서 다른 장소에서 재생하는 필드 레코딩도 있다. 또 작가가 의도한 음악에 따라 뮤지션 없이 악기가 자동으로 연주되는 형태(로버트 야콥슨이나 다비드 발루라의 작업)도 존재한다.

멜로디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주변의 소리를 의식하면 무엇이 음악이고 소음이냐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것이 사운드 아트와 현대음악이 통하는 지점이며, 사운드 아트가 가지는 기술적 특성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콘텐츠는 더 중요해진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