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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이 시대의 초상

대중문화 담론의 중심… 사회상의 단면 보여줘
  •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불현듯 '속물'들이 당당하게 수면 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욕의 독신녀들의 이야기 < Sex & the City>가 한국 여성 동지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스타벅스 커피와 브런치로 상징되는 된장녀 신드롬을 낳았다. 'OO녀' 열풍은 이후 '개똥녀', '똥습녀' 등 수많은 아류들을 양산했다.

당당함과 뻔뻔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속물들은 몇 년이 지나자 윤리의식 없이 본능에만 충실한 진짜 속물들로 전락했다.

케이블 TV 프로그램에선 상대방 몰래 바람을 피운 당사자들이 모자이크 없이 방송에 출연하고, 방송국 측에선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들의 높은 반응 속에 시즌을 거듭해 방송을 이어간다.

속물이 대중문화 담론의 중심이자 알짜배기 방송 콘텐츠가 되는 현실은 그대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성관계, 교육현실, 문화현상 등 우리 삶을 아우르는 세계에서 속물 근성이 나타나는 방식엔 상류층에 대한 허영과 지향이 오롯이 나타나있다.

  • 영화 '나는 곤경에 처했다'
지식인과 속물, 동전의 양면

문제 하나. 극장 안에 헛헛한 웃음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빵' 터지는 폭소도, 은은한 웃음소리도 아닌 '피식' 정도의 코웃음이다. 어떻게 들으면 자조가 섞인 것도 같다. 웃는 이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어떤 감독의 작품일까.

몇 줄 되지 않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답은 곧 떠오른다. 바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지난해 개봉한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첩첩산중>은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홍상수 영화 관객'의 전형적인 반응을 양산했다. 그의 작품에 대한 한결같은 반응에는 '스노비즘'이라는 공통의 정서가 있다. 스노브(snob, 속물)란 고상한 척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는 저열한 인품의 사람을 가리킨다.

영화 속에서 그럴 듯하게 폼을 잡으며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지식인의 이면엔 눈 앞의 여자를 꼬셔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속물 근성'이 있다. 그러다 궁지에 몰리기라도 하면 얇게 포장된 지식인의 고상한 성품은 어느새 밑천을 드러내고 금세 '찌질이'로 전락하고 만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두 영화 역시 속물 근성을 다루고 있다. <삼거리 극장>으로 데뷔한 전계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뭘 또 그렇게까지>는 제목부터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연상시킨다.

  • 드라마 '공부의 신'
속물적인 남성 예술가가 춘천에서 묘령의 미대생을 만나 속이 들여다보이는 심리전을 벌이고, 그의 권위에 기대려는 여자의 구도는 홍상수 영화에서 익히 봐오던 설정이다. 뉴커런츠 부문 수상작인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여자의 성적 유혹에 매번 굴복하며 지리멸렬한 연애를 이어가는 남자의 속물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두 영화, 아니 홍상수의 영화들까지 포함해 속물 근성을 다룬 영화들의 공통점은 결국 속물들의 '찌질한' 진짜 정체다. 예술가나 영화감독, 교수 등 지식인들의 현학적 포장과 과시는 결국 하룻밤의 성적 욕망에 있고, 그 과정이나 결말이 순조롭지 못할 때는 한없이 비굴해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런 속물들의 양태를 한 마디로 보여준다. 영화 속 주인공인 감독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영화 속 여학생의 대사처럼 '사람들이 이해도 못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정작 그렇게 비난한 여학생은 위선적인 노 예술가의 권위에 이끌려 하룻밤을 보내는 또 다른 속물이다. 이들 속물을 대놓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은 현실 속 누군가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논리의 만연이 초래한 속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문제아들을 1등으로 만든다는 허무맹랑 도전기 <공부의 신>의 속물성에는 현 시대의 사회상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 영화 '뭘 또 그렇게까지'
먼저 보이는 속물들은 학교라는 상아탑의 가치보다는 사업으로서의 학교를 먼저 생각하는 캐릭터들이다. 존폐 위기에 몰린 학교를 바로 세우기보다는 하루빨리 정리하기를 원하는 이사장과 돈만 밝히는 영어선생은 학생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변호사와 노골적으로 대비된다.

하지만 <공부의 신>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단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의 속물성에 관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명문대를 가기 위해서다. 문제아들의 일류대 입학을 제1목표로 삼은 주인공인 교사의 목적 역시 그것만이 학교를 살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가 학교 안에 구축해 놓은 세계는 공부의 재미나 학생의 본분 같은 말랑말랑한 언어가 아닌 경쟁사회의 축소판으로서의 '작은 전쟁터'다. 아이들은 학문의 가치보다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는 성과(점수 상승)를 통해 기쁨을 맛보게 되고, 그 와중에 도태된 아이는 친구 집단에서 떨어져 소외감을 맛본다.

이것은 학생들의 세계가 아닌 기성세대가 사는 약육강식의 사회 그대로다. 아무리 아날로그적 교육자의 모습들로 감동스럽게 포장해도 어딘가 찜찜한 것은, 벌써부터 결과와 성과 중심으로 평가받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학교까지 침입한 신자유주의의 속물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적자생존이 판치는 정글과 같은 사회. 사회학자 김홍중 대구대 교수는 지난해 발행된 <마음의 사회학>에서 이런 우리 사회를 스노브(속물)들이 지배하는 가짜 민주주의 사회, '스노보크라시(snobocracy) 사회'라고 불렀다. "부자 되세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10억 만들기 프로젝트", "대한민국 1%"와 같은 말들이 "행복하세요"나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기분 좋게 들리는 사회인 것이다.

최근 근현대 한국사회의 속물성을 <토털 스노브 total snob>에서 짚어낸 최혜실 경희대 교수는 공동체보다 개인의 자유나 정의가 강조되는 근대부터 속물이 탄생한 이유를 '돈'이라는 척도의 가치상승으로 보았다. 돈(물질)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속물 근성의 가속화는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속물 지향을 부정하는 태도는 시대로부터 '잉여인간' 혹은 '루저'로 낙인찍힌다. 긴 가방끈과 명품 가방으로 서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결혼을 고민하는 시대. 그래서 그 시대를 이루는 주인공들이 바로 스노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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