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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그리스 신화의 재발견

전통 서사극 재현서 또 하나의 판타지 액션, 슈퍼히어로물 창조
  •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
판도라의 위력이 스크린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리스 신들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포세이돈의 숨겨진 아들이 제우스, 하데스 삼촌들과 일합을 겨루는가 하면, 3D 기술로 되살아난 영웅 페르세우스는 타이탄족과 결전을 벌이며 판도라 대전의 영광을 재현할 기세다.

그동안 신화 캐릭터를 차용한 현대극이나 스타배우들을 기용해 그리스 신화를 정통 서사극으로 재현했던 할리우드는 신화 속 인물과 서사 구조를 적극적으로 변형하며 또 하나의 판타지 액션, 슈퍼히어로물을 창조하고 있다.

영화 속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

현대영화에서 그리스 신화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신화 캐릭터를 빌려온 인물들은 그 자체로 극 전개에 대한 예상과 반전의 기능을 갖게 된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모피어스, 페르세포네, 오라클 등은 그리스 신화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주였다.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에 나오는 해저 괴물 크라켄은 영웅 페르세우스와의 일전으로 유명한 거대한 문어 괴물이다. <미션 임파서블2>에서 각각 세상을 위협하는 악성 바이러스와 이를 치료하는 유일한 약으로 등장하는 키메라와 벨레로폰은 신화에서는 여러 가지 동물이 합쳐진 괴물과 그를 무찌르는 영웅의 이름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에서는 두 개의 캐릭터가 하나로 묶여 각색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틀라스의 딸이자 님프인 칼립소가 여기서는 바다의 여신 격으로 등장한다. 원래 칼립소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다 표류한 오디세우스를 보살피다가 사랑에 빠졌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그를 막지 못하고 대신 순풍을 불게 해주어 편안한 귀향길을 도왔다.

하지만 영화에서 여신 칼립소는 연인과의 언약이 깨진 것에 분노해 바다 한가운데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파괴적 존재로 바뀌었다. 신화에서는 이 같은 소용돌이로 지나가는 배를 난파시켰던 존재가 괴물 카립디스였다.

이카루스와 다이달로스는 영화를 넘어 대중문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인물들이다.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며 신의 영역을 침범한 바람에 아들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른 다이달로스의 일화는 오늘날 오히려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류를 상징하는 말로 바뀌었다.

때문에 영화에서도 두 인물은 주로 하늘이나 우주와 관련된 대상에 이름붙여지는데,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서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한 팀이 '다이달로스'거나, <선샤인>의 태양 탐사선 '이카루스 2호'가 그런 경우다.

  • '캐리비안의 해적- 세사의 끝에서'의 칼립소
슈퍼히어로물로 재탄생한 그리스 신화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예의 삼지창을 든 채 뉴욕에 나타났다? 최근 개봉한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의 첫 장면이다. 이제까지 신화를 다루기 위해 고대로 거슬러올라가거나 일부 캐릭터와 빌려와 인물에 투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그리스 신화를 미국의 현대 문화에 안착시켰다. 올림포스 산으로 가려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면 되고, 지옥문은 할리우드 입간판 옆에 있다. 메두사와 싸우기 위한 무기는 방패가 아니라 아이폰이다.

주인공이 알고 보니 포세이돈의 아들로서 반인반신(demi-God)이라는 설정은 그대로 그리스 신화의 영웅 콘셉트를 가져왔다. 주인공만 이런 경우인 것은 아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갓' 아이들은 주인공 외에 수천 명이나 있고, 각성한 데미갓들은 미래의 영웅이 되기 위해 캠프에서 이미 수련 중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부분 신의 강간에 의해 태어난 데미갓 영웅들의 태생을 어린이 관객의 취향에 맞게 판타지물의 주인공처럼 바꾼 것.

특히 이런 캠프에서 자신의 능력을 연마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쩐지 <해리 포터> 이야기와도 닮아 있다. 왠지 호그와트를 연상시키는 데미갓 캠프에서 주인공은 영리한 모범생 여학생과 떠벌이 친구와 친해져 모험을 시작한다. 이 같은 <해리 포터>와의 유사성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을 연출한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수완으로 더욱 배가된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신화적 판타지를 영국의 문화적 특색과 성공적으로 융합시킨 반면,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결합은 다소 작위적이고 전형적인 설정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4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는 <타이탄> 역시 제우스와 하데스 간의 전쟁을 다룬 액션 블록버스터다. 두 신 사이의 전쟁으로 고통받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땅으로의 위험한 여정을 떠난 영웅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과 <트로이> 혹은 <300>을 연상시키는 정통 서사극이다. 아킬레우스, 테세우스와 함께 잘 알려진 영웅 페르세우스의 모험과 타이탄족의 멸망 등 그리스 신화 중 인기있는 레퍼토리들을 집대성한 것이다.

기존 그리스 서사극들이 사실주의에 입각한 충실한 재현에 집중한 반면 <타이탄>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완성한 거대괴물들을 대거 동원해 판타지로서의 기능을 한층 더 보완했다. 천마 페가수스, 해저괴물 크라켄, 메두사, 거대전갈 등 시화 속 초현실적 캐릭터들이 3D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화면은 확실히 <아바타>가 휩쓸고 간 영화혁명의 잔향을 또 한 번 기대하게 한다.

영화이론가들은 이처럼 판타지 블록버스터 속에서 그리스 신화가 활용되는 현상을 슈퍼히어로 장르의 한 변주로 해석한다. 한동안 마블과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이 각자의 사연과 초능력으로 드라마를 이끈 것처럼, 현대에서 또는 과거에서 신과 닮은 영웅들이 적을 무찌르는 이야기 또한 하나의 슈퍼히어로 장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가 특정한 기능과 형식을 가지고 오랜 세월동안 인류 문명사에서 반복되어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리스 신화 캐릭터들이야말로 지금의 엑스맨이나 헐크의 조상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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