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고향을 그리는 예술혼

[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25) 샤갈과 차이코프스키
러시아 대표 화가·작곡가 작품 속에 향수와 판타지 녹여
  • Final Scenefor the Aleko
샤갈과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가와 음악가로 그들의 작품에는 고향인 러시아에 대한 향수와 환타지가 녹아있다.

강한 색채와 호소력 짙은 멜로디를 가진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동화 같이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샤갈의 그림은 우리를 그들의 고향으로, 또 그들의 꿈속으로 이끈다.

샤갈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의 연인 벨라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09년, 샤갈은 그의 작품의 근원이 된 여인 벨라를 만난다. 당시 벨라는 14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였다. 샤갈은 그녀와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녀의 침묵은 나의 것이다. 그녀의 눈도 나의 것이다. 그녀는 마치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현재, 그리고 나의 미래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는 나를 관통하고 있는 듯하다."

첫눈에 벨라에게 반해 버린 가난한 샤갈은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벨라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부모님을 설득하고 1915년, 드디어 결혼에 성공한다. 그로부터 35년간 샤갈과 벨라는 더 없이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 나간다. 벨라와의 결혼 기간 동안 샤갈의 작품은 동화 같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행복을 그리고 있다.

  • 사걀 자화상
차이코프스키를 얘기할 때에도 빠질 수 없는 여인이 있다. 바로 나데즈다 폰 메크라는 여인으로 차이코프스키를 후원했던 부유한 미망인이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와 그녀는 천 통이 넘는 편지를 통해 교류했지만 절대 만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편지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들은 서로 만났다 하더라도 결코 연인으로 발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안토니나 밀류코바라는 여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은 그를 자살로 몰아넣을 만큼 끔찍한 것이었다. 자살에 실패한 그는 결국 그녀에게서 도망치고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평생을 통해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4년간 차이코프스키를 후원했던 폰 메크부인은 1890년, 갑자기 연락을 끊고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하지 않은 채 후원을 중단한다. 그 동안의 인연을 단칼에 끊어버린 폰 메크부인에 대한 배신감에 차이코프스키는 큰 상처를 입는다.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차이코프스키는 이 일이 있은 후로 더욱 힘들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1892년, 그는 <호두까기 인형>을 작곡하는데, 여기서 그는 우울함이나 고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림같이 아름답고 완벽한 곡을 만들어낸다.

<호두까기 인형>은 클라라와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 인형의 사탕나라로의 여행을 그리고 있다. 현실에서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사랑과 행복을 꿈꿨던 것일까? 차이코프스키의 힘겨운 인생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작품은 샤갈의 그림처럼 동심의 세계 속 환상적이고 행복한 여행,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는데 왕자와 클라라는 차이코프시키의 음악에 맞춰 행복한 꿈을 꾸듯 춤을 춘다. 마치 샤갈의 하늘을 나르는 한 쌍의 연인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 Scene 1 for Aleko
샤갈의 그림과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발레 <알레코>에서 그 만남을 갖는다. 1942년, 멕시코 시티에서 초연되었던 <알레코>는 레오니드 마신의 안무로 만들어졌으며, 에르노 라피가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아 편곡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삼중주가 음악으로 쓰였다. 무대장치와 의상 디자인은 샤갈이 맡았다. 푸쉬킨의 <집시들>을 각색한 이 발레는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귀족 알레코와 자유의 상징인 집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귀족이었던 알레코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염증을 느끼고 집시 무리에 속하게 된다. 그는 집시 여인 쳄피라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도 자유로운 집시들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알레코는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사랑을 찾아간 챔피라를 끝내 살해하게 된다.

이 발레의 무대디자인에 대해 샤갈은 "나는 색채 스스로가 움직이고, 말하게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삼중주 1악장의 멜로디는 샤갈의 첫 번째 장면에 쓰였던 <달빛아래 알레코와 쳄피라>의 그림처럼 슬픈 결말을 예견하듯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다.

아름답고 동화 같은 그림을 그렸던 샤갈은 1944년, 평생 사랑해 온 벨라의 죽음과 세계 2차 대전을 지나며 심한 아픔을 겪는다. 1947 완성한 <추락하는 천사>과 같은 작품들은 샤갈의 애수에 찬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대작인 교향곡 6번 <비창>을 초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다. 그를 둘러싼 죽음의 의혹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동성애자는 러시아에서는 처형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강요에 의한 자살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The Bride for the Eiffel Tower
평생 동성애자였던 괴로움과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차이코프스키와 환상적인 색채로 맑은 사랑을 노래했던 샤갈. 어쩌면 샤갈이 경험했던 아름답고 완전한 사랑을 동경했을지 모를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샤갈의 그림처럼 너무나 아름답고 호소력 짙은 멜로디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샤갈과 차이코프스키는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고향을 향한 그리움, 따뜻함, 동심 등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이들의 작품을 대하노라면 가슴 깊이 느껴지는 짚은 향수와 동화같이 맑은 영혼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 Von Meck
  • 차이코프스키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19년 11월 제2802호
  • 이전 보기 배경
    • 2019년 11월 제2802호
    • 2019년 11월 제2801호
    • 2019년 10월 제2800호
    • 2019년 10월 제2799호
    • 2019년 10월 제2798호
    • 2019년 10월 제2797호
    • 2019년 09월 제2796호
    • 2019년 09월 제2795호
    • 2019년 09월 제2794호
    • 2019년 09월 제2793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영주, 산사의 추억 영주, 산사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