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랄프로렌, 스타일 닷컴… 아이폰 패션 어플 생생 체험기

아이폰 패션 어플
아이폰으로 샤넬의 최신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와' 소리는 나오지만 '올레'까지는 아니다.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나 에르메스 버킨백을 색깔별로 가지고 있다는 빅토리아 베컴이 아닌 이상 패션쇼는 컴퓨터로 느긋이 찾아봐도 무방하다.

라이프 스타일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아이폰에 발을 걸치고자 하는 패션 브랜드들이 늘고 있지만 으레 컬렉션 사진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데에는 실망이다. 이게 그 세상을 뒤흔들 만큼 뛰어난 기동성에 걸맞는 콘텐츠인가?

이럴 때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오히려 작은 브랜드에서 발견되는 법이다. 누가누가 머리를 잘 썼나. 생생한 패션 어플 체험기.

"선물을 골라 드려요, 물론 로만" - Coach

코치
는 선물을 대신 골라주겠다며 나섰다. 제일 먼저 상황을 선택한다. 발렌타인데이, 생일, 축하&감사, 기념일 중 3월에 생일을 맞는 20대 후반의 남자 후배를 위해 생일을 클릭.

성별에 남자를 택한 후 가격대로 넘어간다. $에는 100달러 이하의 제품이, $$에는 100~300달러, $$$에는 300~590달러까지의 선물이 나와 있다. (조금씩 겹쳐 있기도 하다) $ 카테고리를 집중 공략하던 중 48달러짜리 너무나 멋진 머니 클립을 발견했다.

메탈로 이루어진 데다가 옵 아트 형식으로 무늬가 전면에 배열돼 있어 그야말로 차가운 도시 남자의 소지품으로 적당하다. 오픈한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사진은 한 개뿐이다.

제품 사진 아래에 매장 찾기 메뉴가 있지만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만 서비스가 되고 있다. 이메일과 페이스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돼있어 일단 메일로 사진을 보내 두었다. 얼마나 자주 사용할 지는 모르겠으나 로 선물하겠다고 작정한 사람에게는 유용할 듯.

"없는 게 없어요" – ZARA

자라
오프라인의 전략이 넓은 매장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스타일이라면 어플은 그 전략을 그대로 이어 받아 물량 공세로 나선다. 의 거의 모든 옷을 올려 놓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제품 사진을 볼 수 있다.

여성복 신상품 란에 올려진 제품 개수만 50여 개로 컬렉션 메뉴에는 그 2배가 넘는 제품이 있으며 남성복, 아동복, 청소년 라인이 또 그만큼 씩 따로 있다.

모델이 입고 찍은 카탈로그가 아닌 행거에 걸어 옷의 디테일이 잘 보이도록 찍은 사진들이라 제대로 지름신을 자극한다. 게다가 가격대도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만큼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에 트렌디한 블랙 재킷이나 에나멜 구두에 꽂히면 그대로 다음 역에서 내려 매장으로 달려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가격 정보나 상품 설명은 없고 룩북과 카탈로그를 볼 수 있다.

"전통과 유산의 가치" – Polo Ralphlauren

첨단 기술의 총아 아이폰 속에서도 랄프로렌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다큐멘터리 영화 메뉴를 클릭하면 1978년 컬렉션 무대 뒤에서 초롱초롱 안광을 내뿜고 있는 청년 랄프로렌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털이 북슬북슬한 팔로 가위를 들어 천을 자르고 당대 최고의 모델들과 작업을 한다.

폴로 랄프로렌
포토 에세이는 가장 최근의 컬렉션이 진행되는 과정을 모델 캐스팅부터 피팅, 장신구 선택, 쇼 당일 메이크업, 피날레 무대까지 전부 사진으로 찍어 에세이 형식으로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모노톤에 분위기 있는 사진과 영상들은 전통과 유산을 중시하는 랄프로렌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랄프로렌이 아내를 위해 만든 리키 백에 관한 메뉴도 있는데 열 종류의 리키 백 사진과 각 제품이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인지, 특징은 무엇인지, 가격은 얼마인지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패션 백과사전, 손 안의 대용량 외장하드" – Style.com

세계 최대의 패션 사이트 의 어플에는 뭐가 있을까? 과연 지금까지 축적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 베이스만큼 을 거의 통째로 집어 넣은 듯한 라이브러리 형의 어플이다. 비디오 메뉴에서는 2010 S/S 컬렉션 중 베스트로 꼽혔던 알렉산더 왕, 후세인 살라얀 등 31개의 쇼 영상을 볼 수 있다. 풀 영상이 아닌 디자이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패션계 유명 인사들의 멘트를 집어 넣은 편집 영상으로 콘셉트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보다 보면 저절로 공부가 된다. 사진 메뉴는 더 방대해 무려 2000년 S/S부터 지금까지의 컬렉션 사진을 볼 수 있다. 온라인 사이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해 아이폰만의 서비스가 없는 것은 아쉽지만 손 안에 이토록 가벼운 패션 백과사전이 들려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든든하다.

"17세 이상만 오세요" – Victoria Secret

섹시한 속옷과 최고의 모델들이 등장하는 패션쇼로 유명한 . 어플을 받아 클릭하면 제일 먼저 17세 이하는 접근 불가라는 메시지가 뜬다. 들어가 보면 왜 17금인지 알 수 있다. 아름다운 모델이 간이 탈의실 벽에 이번 시즌 신상 비키니를 걸치며 갈아 입는 섹시하고 유머러스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스타일 닷컴
미란다 커, 타이라 뱅크스 등 슈퍼 모델들이 총집합하는 의 쇼답게 패션쇼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본 무대와 축하 공연, 무대 뒤 피팅 장면까지 전부 담았다. SHOP NOW는 본격적인 '지름'의 시간. 브라, 팬티, 슬립, 수영복으로 카테고리가 세분화 돼 있다. 팬티를 클릭하니 또 다시 모양별, 시즌별, 베스트셀러, 요즘 가장 섹시한 팬티 항목으로 나뉘어져 쇼핑 시 소거법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모양별 쇼핑으로 들어가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보이 쇼츠를 택하자 9개의 모델이 뜬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클릭하면 설명과 가격대, 색상이 상세하게 나와 있고 구매는 할 수 없지만 장바구니 기능이 있어 마음에 든 모델을 기억해 두기에 좋다.

"지금 몇 시?" –

가장 베이식한 옷을 만들면서도 지루한 이미지라는 함정은 요리조리 잘 피해가는 는 역시나 뻔한 카탈로그 대신 독특한 기능의 어플을 내놨다. 어플의 이름은 유니클락. 들어가면 Seoul South Korea라는 글자 위에 대뜸 16 41 33이라는 숫자가 뜬다. 초 단위로 계속 바뀌는 숫자는 를 입은 모델들의 영상과 급박하게 교체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불안해지고 곧 뭔가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눈을 떼기가 어렵다.

특히 의 극히 평범한 트레이닝 웨어를 입고 전혀 평범하지 않은 동작을 반복하는 모델들은 이런 생각을 부추기지만 알고 보면 그저 현재 시간이 오후 4시 41분임을 알려주는 것 외에는 별 다른 게 없다. 허무한 나머지 웃음이 픽 나오지만 사실 영상 자체의 아름다움이 충분한 볼거리가 되고 의 옷은 걸어 놓는 것보다는 그렇게 입고 춤추는 편이 훨씬 예뻐 보이니 머리를 잘 쓴 셈이다.

빅토리아 시크릿
"앉은 자리에서 보는 전 세계 스트리트 패션" –

전 세계를 누비며 스트리트 패션을 촬영하는 사진가 스콧 슈먼의 어플은 간단해서 좋다. 접속하자마자 다른 메뉴 없이 바로 사진이 뜨기 시작해 아무 생각 없이 세계 각지의 패션 리더들 또는 패션 괴짜들의 사진을 휙휙 넘겨 보며 구경할 수 있다. 뉴욕의 옐로 캡 앞에서 모피 코트를 입고 선 금발의 커리어 우먼부터 하이 웨이스트 쇼츠를 입고 강을 등진 청순한 시골 소녀까지. 로딩 시간이 길어 마음처럼 휙휙 넘겨 보기는 좀 힘들다. 사진은 확대해서 볼 수 없다.


유니클로
사토리얼리스트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