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남 이경성 추모 학술세미나국내 최초 미술 평론가, 현대미술 제도 초석 놓은 행정가 재조명

지난 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석남 이경성 추모 학술세미나
작년 말 작고한 석남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2월1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석남 이경성 추모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김현숙 미술평론가, 조은정 미술평론가,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사업관리팀장이 발제를 맡아 국내 최초의 미술평론가이자 현대적 미술 제도의 초석을 놓은 행정가로서 이경성 전 관장의 업적을 정리 평가했다.

세미나의 내용은 단지 한 원로미술인에 대한 애도라기보다 한국 미술의 한 기원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었다. 이경성 전 관장의 행보는 곧 한국 근현대미술이 만들어진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과제까지 도출되었다.

문명을 대상으로 한 미술평론

해방 전후 비평과 책 전시 포스터
1930년대 후반 동경 와세다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중 미술에 눈을 뜬 이경성 전 관장은 졸업 후 미술사 전공으로 같은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당시 다양한 미술 작가들과 교류하며 "책을 통하기 보다 몸과 마음으로 미술과 관계를 맺었고"(김현숙 미술평론가 '한국근대미술사학 연구의 태두-석남 이경성') 이 경험은 이후 이경성 전 관장의 비평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즉 사회적 상황과 현장과의 연계 속에서 창작을 이해하게 되었다.

김현숙 미술평론가는 1910년에서 1945년 사이 한국 근대미술이 미술 작가들의 현실 도피의 수단이었음을 지적한 이경성 전 관장의 국내 최초 근대미술사 논문 <한국회화의 근대적 과정>을 예로 든다. 그러나 이 "불행한 시대가 낳은 미숙한 미술"을 한국미술사의 엄연한 한 부분으로 주목하는 것 역시, 이경성 전 관장의 업적이었다. 이는 일제 시대를 거치며 단절된 한국미술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이런 "통사적 관점"에는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데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의 미술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과거와 연관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한 것이다. 미술평론을 일종의 "문명평론"으로 본 그의 밝은 눈은 이후 한국 미술계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현장에 놓은 미술의 초석

김환기와 함께 있는 이경성 전 관장(오른쪽)
이경성 전 관장의 평론이 지면을 넘어 이루어진 것도 그가 '현재성'을 강조하는 비평가였기 때문이다. 조은정 미술평론가는 인천시립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워커힐 미술관장, 서울올림픽 미술관장 역임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 미술평론"이라고 말했다.('석남 이경성 미술평론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연구') 이경성 전 관장은 "미술평론이 반드시 글로만 써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평론가로, 또 미술행정가로 좋은 전람회를 기획하고 행정을 완수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몸으로 쓴' 가장 유명한 평론 중 하나는 한국 근대미술의 중심적 제도였던 국전에 대한 비판이었다. 초기에는 반공적, 반일적 성향을 띠었고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규정이 대폭 바뀌는 등 국전이 외부 힘에 휘둘려온 상황을 지적하며 국전보다는 현대미술관을 미술 정책의 중심지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사업관리팀장은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 이후 산업화라는 격변하는 여건 속에서 작가들의 작업의 가치가 간과되고 작품이 소실되는 현실에 대한 이경성 전 관장의 고민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설립된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특히 그가 재직한 1982~1983년에 미술관은 오늘날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학예연구사를 선발하고 도서자료실을 확충함으로써 전문성을 강화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현대'가 'Modern'에서 'Contemporary'로 바뀐 것도 이때다.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려는 의지를 반영한 개명이었다.

이경성 전 관장의 행보는 오늘날 한국미술의 문제를 일깨운다.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비평의 위기를 지적하며 이는 무엇보다 "비평가 자신의 자기 위치 점검이 치열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지호, 미술논집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김달진 김달진미술연구소장은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경성 전 관장이 마련한 초석을 토대로 얼마나 발전했는지 질문했다. "장르별 전문 학예연구사가 없다는 점"을 들며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사 부족 문제를 지적했고, "미술관의 자료 관련 역할과 기능에 대해 심도 있게 방향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근대 미술평론의 곡절을 넘어

지난 2월26일부터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위치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해방 전후 비평과 책>은 이경성 전 관장을 추모하는 동시에 그가 활동한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미술평론의 풍경을 살피는 자리다. 이경성 전 관장을 비롯해 윤희순, 김영기, 김용준, 오지호 등 당시 대표적인 평론가들의 글이 전시된다. 이들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한 원천이다.

근대화가 시작된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듯 혼란스러운 관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미술사관이 이어지고 있었고 조선 미술에 무지한 반면 서구 미술 이론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흔적이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윤정 학예연구사는 "한국 미술계를 지배한 미술사 인식의 왜곡을 검토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는 시작점"이라고 그 의의를 밝혔다.

이경성, 현대한국미술의 상황; 이경성 미술평론집, 1978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