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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공공디자인인가

'사람·도시·공간' 주제 세미나
정부, 지자체 주도 아닌 사회구성원과 합의가 기본임을 환기
  •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에는 공공디자인이 화두로 떠올랐다.

디자인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시골마을의 휑한 벽면은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채워졌다.

반포대교 워터스크린 설치, 광화문 광장, 노점부스의 디자인 변경, 우수 공공디자인 인증제도 도입 등도 공공디자인 활성화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올해 서울시는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가 선정하는, 세계 첫 '세계 디자인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의 공공디자인에 대한 이해는 도시를 아름답게 하기보다 병들게 하고 있다는 일부의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도시가 변해가는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밀어붙이기 식의 정책으로 여기저기서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마포구에서 일어난 노점상 강제 철거도 폭력적 단속과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무너뜨렸다는 데에 사회적인 반발이 적지 않았다.

  • 공공디자인 세미나
공공영역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의미임에도 사회 구성원들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공공디자인은 결국 정부와 시민을 각각 주체와 객체로 구분짓게 한다.

2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사람, 도시, 공간'이라는 주제로 공공디자인 세미나가 열렸다.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온 발표자들이 각국의 사례 발표를 했지만 결국 이번 세미나는 기본으로 돌아가, 한국 공공디자인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공공디자인이 만드는 도시 이미지

스페인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빌바오. 지금은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과거 그곳은 철강, 조선산업의 중심지였다.

1970년대 말 유럽에 닥친 산업위기로 쇠퇴의 길을 걸었던 빌바오가 현재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계기는 1980년대 도시재생운동인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을 통해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빌바오는 문화도시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물론, 미술관에 찾은 방문객만 지난 10년간 986만 명, 2조 1,000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얻고 있다.

  • 공공디자인 전시
대대적인 도시계획을 통한 이 같은 효과는 혹할 만큼 매력적이다. 이미 해외 주요 도시에서는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오랫동안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해 왔다.

채민규(명지대 공간디자인학과)교수는 세미나를 통해 효율적인 도시 브랜드 구축을 위해 TIP(Town Identity Program) 개발을 역설했다. TIP는 도시의 브랜드 구축을 위한 설치수단으로 스카이라인, 도시구조물, 공공시설물 등 도시를 형성하는 요소들의 조화를 통해 도시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계 주요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고 노후화되면서 삶의 질의 개선 차원에서 역시 도시정비는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삶의 질과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요구는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으로 모였다. 국내의 사정도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대부분의 공공디자인이 정부 주도로 일방적이고 획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다. 구성원을 무시한 공공 공간의 조성은 그곳을 또다시 황폐화시키고 만다. TIP를 통한 도시 이미지의 체계적인 구축이 필요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이해다.

공공디자인에 사람은 있는가

"진흙을 형성하여 그릇을 만들면 그 비어 있는 허공에서 유용성을 찾게 되고 집에 문과 창을 뚫게 되면 그 비어 있는 공간에서 유용성을 찾게 된다. 그러므로 사물의 존재는 유익성이 있고 무-존재는 실용성이 있다." 송주철(송주철공공디자인연구소)소장은 '노자의 도덕경'을 인용해 공간의 개념을 설명했다. 그동안 공공디자인이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그는 한국에 비어 있는 공간이 실제 별로 없다고 말한다.

1934년, 일본에 의해 주도되었던 근대 도시계획이 해방으로 중단되면서 미완성이 된 한국의 도시는 공간을 디자인하기 불리한 상황을 안고 있다. 광화문 광장만 보아도 수직적이고 차도가 양 옆에 자리해 광장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뭔가 채워 넣어야 할 곳보다 비워내야 할 곳이 많음에도 계속해서 채우려고 하는 것이 현재 공공디자인의 문제임을 송 소장은 짚어냈다.

"공간에는 스토리와 의미가 있어야죠. 장소가 아닌 공간으로서 여겨진다는 것은 그런 특별한 의미가 담기는 겁니다." 뭔가 많이 있어도 딱히 갈 만한 곳은 없는 곳이 서울이다. 그는 현재 한국,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공공디자인은 더하기보다 빼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공공(Public)이라는 말에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창섭(건국대 디자인학부)교수는 그것은 '환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2006년 목포시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30년 된 가로수 메타세콰이어 30그루를 3분의 2가량 자르고 그 위에 시를 상징하는 꽃과 특산물 등을 조각했다. 도시를 꾸며보겠다고 목포시가 700만 원을 들여서 벌인 일이다. 시민이 거세게 반발하자 목포시는 아예 나무를 베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오창섭 교수는 여기에서 '타자'에 대한 개념을 끌어냈다.

공공디자인이 '공공'이란 가면을 쓰고 서로 다른 가치관과 취향을 가진 이들을 '시민'으로 뭉뚱그리는 데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 따라서 도시에 공공디자인을 하는 사람도,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도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은 바로 '타자의 존재'다.

"타자는 현재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태어날 세대, 지나간 과거와 자연까지도 아우른다. 타자와의 대화가 쉽지는 않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오창섭 교수는 강조했다.

공공디자인이 한국에 발을 붙인 지 10년을 헤아린다. 공공디자인이 방문객이 아닌, 이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공공재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기본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공공디자인인가를 고민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모은다.

참고자료: 공공디자인 선진 사례집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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