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제오페라·미술·무용 등 다양한 장르 포섭 프로그램 확장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
통영국제음악제는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클래식 음악축제 중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좌석 점유율은 90%를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더구나 이런 성과는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비주류, 비인기 장르로 꼽히는 현대음악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 높게 평가된다.

세계 현대음악사의 주요 작곡가인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인, 윤이상이라는 작곡가 한 사람의 음악사적 의의를 조명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이런 점들을 볼 때 통영국제음악제가 통영을 음악 도시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올해로 9회를 맞은 통영국제음악제에는 그러나 관성이 아닌 변화가 엿보인다. 매년 윤이상의 작품 표제에서 테마를 가져왔지만 올해는 란, 자체적인 테마를 선정했다. 테마에 걸맞게 오페라, 미술, 무용, 영화, 문학, 음악극 등 음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장르도 포섭해 프로그램을 확장했다.

음악과 이들 장르의 조우는 자못 흥미롭다. [+문학]에서는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짧은 글 40편에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이 곡을 붙인 '카프카-프라그멘트'가 공연된다. 소프라노와 바이올리니스트만이 등장해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공연이지만 여기에 '내레이션'을 넣어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피아니스트 남선영
낭독을 하는 사람은 대중적이면서도 강렬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였고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낙점됐다. 음악과 다른 장르의 결합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한층 풍성하고 매끄럽게 다듬어졌다.

[+미술]은 그림을 보고 작곡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으로 꾸며지고, [+무용]에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전위적인 현대무용가 자비에 르로이의 몸을 거쳐 흘러나온다. [+영화]는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이병우와 TIMF 앙상블의 조화가 돋보인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이 같은 공연을 선보이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크 음악과 현대음악으로 균형을 맞추던 통영국제음악제가 본격적으로 레퍼토리 확장을 꾀한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한편, 이 같은 변화는 통영국제음악제, 나아가 클래식 음악 축제가 공통으로 가진 고민의 흔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좁아지는 클래식 음악의 입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당장 관객 동원은 문제없어도 볼거리와 놀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두 손 놓고 있다가는 도태될 수 있다는 자각이 그 시발점인 셈이다. 그러나 이 고민이 해결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당분간 대중적인 공연과 통영국제음악제로서의 소명의식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가는지가 관건이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와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의 협연, 한국과 프랑스의 라이징 스타인 두 명의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알렉상드르 타로의 만남,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내한공연 등 통영국제음악제가 아니라도 볼 수 있는 공연도 있지만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공연도 많다.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이병우
[+윤이상]은 음악제 기간 중 어떤 형태로든 거의 매일 윤이상의 곡이 연주되는 프로그램이다. 공식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할 폐막 공연에는 도천 테마파크 내 윤이상 전시실 개관을 기념해 모든 곡이 윤이상의 곡으로 연주된다.

한국의 작곡가 시리즈와 나이트 스튜디오, 그리고 신나라의 음악극 <에코>와 같은 공연도 통영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제작비 대비 수익이 10%에도 못 미치지만 공공의 목적으로 통영국제음악제가 꾸준히 해온 시리즈다. 올해 나이트 스튜디오에는 과 피에르 불레즈가 창단한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IC)의 솔리스트 4명이 무대에 선다.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곡이 발표되는 '한국의 작곡가들' 시리즈에는 윤이상부터 이혜성, 김희라, 성세인, 윤성현 등의 신예 작곡가들의 작품이 차례로 선보인다. 시리즈는 아니지만 음악극에 주력하는 의 음악극 <에코>는 통영국제음악제를 통해 초연된다. 메아리처럼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외로운 존재인 인간을 주제로 한 3막의 음악극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며 인간의 무의식 속으로 파고든다.

통영국제음악제와 국립오페라단이 공동 제작하는 글룩의 바로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로 막을 여는 음악제의 공식공연은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더불어 축제 내내 147팀이 200여 회의 공연으로 통영시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프린지 공연은 3월12일부터 3월24일까지다. 통영국제음악제 공식공연 시작과 동시에 개관하는 도천테마파크에서는 윤이상의 유품도 볼 수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올해 눈여겨 볼만한 공연은.

모두 밤샘 기획회의를 거치며 심혈을 기울인 공연이다. 그중에서도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김홍재 지휘자의 공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독일 유학 당시 윤이상 선생에게서 사사한 김홍재 지휘자는 일본에서 히사이시 조와 함께 작업하면서 영화음악 지휘자로도 명성이 높다. 그가 일본에서 돌아와 울산시향의 지휘자로 부임했는데, 울산에서 그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활용하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 신나라
-통영국제음악제가 벤치마킹하는 축제가 있나.

국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좋은 롤 모델이다. 장르는 달라도 통영국제음악제보다 5년 먼저 시작한 부산 국제영화제는 축제라는 요소에서 보면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만 하더라도 현대음악을 많이 하면 이것이 바로 통영국제음악제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대중성을 잃고 만다. 그러다 조금 대중적으로 가면 초심을 잃었다는 비난도 들린다. 그 중심을 잡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통영의 음악당 건립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음악당은 2012년 가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5월에 첫 삽을 뜬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에게 맡기려고 했지만 국내 건축법이 허용되지 않아 결국 2년의 세월만 허비했다. 부지까지 700억 예산으로 1300석 규모의 콘서트홀과 300석 리사이틀홀을 음향에 집중해서 지을 예정이다. 바닷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음악당이 될 거다.


이용민 사무국장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