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옥진 컬렉션: 일본 근현대미술>展우메하라 류자부로 작품 등 日 근현대미술 53점 처음 선보여

신옥진 부산 공간화랑 대표
한국 미술을 제대로 알려면 일본 미술부터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 근대미술의 기반이 일본 미술을 통해 형성된 이유에서다. 한국 근현대미술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부터 일본 유학파에 의해 서양화가 도입되면서 구체적으로 이뤄졌다.

제1세대 유학파인 고희동, 김관호, 이종우, 나혜석 등이 서양화를 직접 체험하고 국내에 전파한데 이어 1920년대 중반과 30년대 초반에는 이마동, 오지호, 이인성, 도상봉 등 유학파 2세대에 의해 서양화가 서서히 정착됐다.

1930년대 중반에서 40년대로 이어지는 유학파는서양화단의 조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개성적으로 발전시켜 한국 근대서양화의 기조를 마련했는데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황염수, 박고석, 유영국 등이 그들이다.

이처럼 한국 근현대미술의 도입과 정착에 일본 미술은 가교이자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당대 그들의 작품을 대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일본 미술에 대한 연구는 나름대로 깊이를 더해왔으나 직접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우메하라 류자부로 '나폴리비치' (1912-1962)
그런 점에서 지난달 23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신옥진 컬렉션:일본 근현대미술>전(展)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는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가 그동안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일본 근현대미술작품 53점으로 꾸며졌다. 국내에선 초유의 전시로 그동안 국내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일본 근대미술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작품은 우메하라 류자부로를 비롯해 레오나르 후지타·야스이 소타로·사이토 요시시게·무나카타 시코·가와라 온·요코오 타다노리·세키네 노부오·무라카미 타카시까지 일본 근대미술을 중심으로 현대 작가까지 아우른다.

우메하라 류자부로(1888~1986)는 유럽으로 건너가 인상파의 거장 르누아르에게 직접 그림을 배운 뒤 돌아와 화려한 색채와 호방한 터치가 어우러진 작품을 남겼다. 레오나르 후지타(1886~1968)는 1910년대 프랑스로 건너가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과 깊이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벌였던 '에콜 드 파리'(1차 세계대전 후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 파리에서 활동하던 외국작가들)' 작가다.

'일본 현대판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나카타 시코(1903~1975)는 서양화가 최영림(1916~1985)이 1930년대 말 유학시절 일본에서 배웠던 스승이다. 로댕의 제자인 부르델에게서 조각을 배운 시미즈 다카시(1897~1981)는 무사시노미술대에서 한국 근대조각의 거장인 권진규(1922~1973)를 가르쳤던 스승으로 이번 전시에서 그의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다.

또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이우환(1936~ )이 주창한 '모노파(物派)' 탄생의 밑거름이 된 세키네 노부오(1942~ ), 일본의 인물화를 대표하는 키시다 류세이(1891~1929), 액션으로 새로운 회화표현의 장을 연 시라가 카즈오(1924~2008), 누드사진 전문가로 '사진의 신'으로 불리기도 한 아라키 노부요시(1940~ ), 나무를 소재로 한 추상조각으로 유명한 모가미 히사유키(1936~ )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시미즈 다카시 '무제' (1955)
전시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고희동(1886~1965)의 작품 '일본풍경'(1915)으로 시작한다. 고희동은 1908년 미술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한국 근현대미술과 일본 미술과의 연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신옥진 대표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신옥진 대표 개인이 기증한 컬렉션만으로 전시가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신 대표는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근대 미술작품을 수집하면서 국내 1세대 작가들의 학력, 경력이 대부분 일본 유학파라는 사실을 알고는 일본 화랑과 경매를 쫓아다니며 작품을 사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1998년부터 지금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 350점을 기증한 것을 비롯해, 경남도립미술관(200점)·밀양시립박물관(100점)·부산시립박물관(30점)·전혁림미술관(12점)·박수근미술관(2점)에 작품을 기증했다.

신 대표는 이번 전시와 관련 "그동안 여러 차례 작품을 기증해왔지만 '일본 근현대미술'은 우리 서양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해온 컬렉션이어서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일본 근현대미술 작품을 컬렉션하면서 자연스럽게 당대 한국 미술과의 상관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일부에서 한국 작가들이 일본을 베낀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오히려 극복하고 심화시켰다고 봅니다. 일본과는 다른 특색을 지녔죠."

신 대표와 3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우환 화백은 전시 소식을 접하고 "개인으로 대단한 일을 했다. 그런(신옥진 개인이 하는) 전시여야 순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주위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며 속내를 전했다.

레오나르 후지타 '모정' (1951)
조일상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이 전시는 미술 기증의 모범을 보인 예로 미술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고 평했다.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미술을 조망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4월 18일까지 이어진다. (051)740-4248


키시다 류세이 '자화상' (1928)
무나가타 시코, 판화 '여인 누드' (1958)

부산=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