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마임의 집' 3~4월 공연 끝으로 '축제 극장 몸짓' 으로 새 둥지

'마지막 생일 굿'
"비나이다 비나이다. 춘천마임축제의 성공 개최를 비나이다."

황해도 만신인 이해경의 축원 굿판이 작은 극장 안에 모인 사람들을 신명나게 한다. 지난달 27일 늦은 저녁, 국내 유일의 마임전용공간인 춘천 '마임의 집'에서는 개관 13년을 기념하는 생일 굿이 열렸다.

이날 공연은 단순히 생일 굿 외에도 특별한 행사가 하나 더 마련됐다. 만신 이해경은 이날 올해의 '춘천마임축제'의 성공을 기원함과 동시에 새로운 '마임의 집'을 축원하는 굿을 했다.

'마임의 집' 설립자이자 한국마임의 산증인인 유진규 역시 스비타 오마르(Sbitar Omar)의 'Didgeridoo' 연주와 함께 올해 축제와 '마임의 집'이 잘 되기를 바라는 즉흥퍼포먼스를 펼쳤다.

이것은 그동안 춘천마임축제와 함께 한국마임의 산실 역할을 해왔던 '마임의 집'에 안녕을 고하는 자리여서 의미가 컸다. 1998년 2월에 춘천 옥천동에 문을 연 '마임의 집'은 상반기 3~4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축제극장 몸짓(Festival Theater M)'으로 옮겨가게 됐다. 그래서 이날 생일 굿은 옥천동 '마임의 집'에서의 마지막 생일 굿이 됐다.

'마임의 집'의 탄생과 역사

원래 서울에서 열렸던 한국마임페스티벌은 춘천으로 옮겨져 1995년부터 춘천마임축제로 발전해 현재에 이르렀다. 춘천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성공적으로 결합한 한국마임은 인천국제크라운마임축제(1995), 한국마임(1996, 서울), 대구거리마임축제(2001) 등 다른 지역으로 파생되어 한국마임의 생명을 이어왔다. 물론 그중 춘천마임축제가 마임축제로서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런 춘천마임축제도 처음부터 춘천을 오늘과 같은 마임의 도시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당시 마임은 축제기간 외에는 볼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춘천을 마임의 도시, 예술의 도시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춘천마임축제 측은 1998년 2월 '토요일에는 춘천에서 마임을 만나자'라는 표어를 내걸며 상설 마임 전용 극장인 '마임의 집'을 열게 됐다.

어느 지역의 어느 극장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마임을 정기적으로 공연한 '마임의 집'은 개관 후 전국에서 찾아온 애호가들에게 마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마임의 대중화뿐만 아니라 마임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강습회를 개최하며 창작을 지원하는 등 마임문화관으로서의 기능도 충실히 수행했다.

무엇보다 '마임의 집'은 그 자체로 예술도시 춘천의 면모를 새롭게 다졌고, 이로부터 파생된 관광은 결과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케이스였던 '마임의 집'은 실제로 유럽의 한 마임축제 예술감독이 세계에서 5개밖에 없는 마임극장 중 하나라고 인정할 정도로 춘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모단메아리 강정균의 '가방 in'
2000년 경영상의 이유로 잠시 문을 닫았던 이곳은 2002년 2월에 다시 문을 열고 정기 공연을 계속했다. 마임만 고수해온 것은 아니다. 판토마임, 피지컬씨어터, 오브제씨어터, 비주얼씨어터, 현대춤, 다원예술 등 몸과 움직임, 이미지를 아우르는 새롭고 실험적인 모든 현대공연 예술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마임전용극장 이상의 의미

그래서 '마임의 집'은 단순한 극장이 아니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숨통이자 인큐베이터였고 관객들에게는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장이자 문화공간이었다. 50석 규모의 객석은 30~40명만 들어서도 꽉 차는 조그마한 공간이었지만, 그만큼 마임이스트들의 미세한 표정연기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좋은 학습장이기도 했다.

이처럼 '마임의 집'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장소를 이전하면서 그 이름을 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춘천마임축제의 송은혜 홍보팀장은 "기존의 '마임의 집'이라는 이름을 쓸 건지, 이전하는 곳의 '축제극장 몸짓'을 그대로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의 중"이라고 답해 일말의 여지를 남겨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옥천동의 '마임의 집'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10년 넘게 춘천마임축제를, 마임도시 춘천을, 한국마임을 지탱해왔던 작은 공간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번 3~4월 공연은 이전을 앞둔 '마임의 집'의 마지막 순간을 담기에 더욱 의미 있는 공연이 된다.

3월 6일부터 시작된 2010년 '마임의 집'의 첫 공연은 <2009 한국마임>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모단메아리 대표 강정균 마임이스트의 <가방 in>이 선정됐다. 가진 것은 없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는 거리 예술가의 삶이 무대 위에 리얼하고 코믹하게 펼쳐진다. 마침 작품의 내용이 마임의 집이 지나온 여정과 비슷해 관객들의 호응을 기대케 한다.

휴관과 재개관 등 13년 동안 꿋꿋하게 존재감을 지켜온 옥천동 '마임의 집'의 이번 공연은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올해 춘천마임축제 참가작품들과 함께 그동안 사랑받았던 작품들의 앵콜공연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이제까지 매주 그래왔던 것처럼, '마임의 집'은 4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관객과 만나게 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