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인권운동가 영화 <밀크>서 트랜스젠더 사진전까지

영화 '밀크'
'LGBT' 혹은 'GLBT' 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풀이하면, 'L'은 lesbian(레즈비언, 여성동성애자), 'G'는 gay(게이, 남성동성애자), 'B'는 bisexual (바이섹슈얼, 양성애자)이며, 'T'는 transgender(트랜스젠더, 성전환자)를 뜻한다.

즉,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모두 총칭할 때 쓰는 약어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LGBTQ' 또는 'LGBTQQ'라고 쓰는 이들도 있다. 'LGBT'에 Questioning나 Queer까지 포함해서 부르는 것.

Questioning은 자신의 성 정체성(Sexual Identity)이나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Queer는 이성애적이지 않은 모든 성적 소수를 뜻한다. (인용: 성적소수자사전http://kscrc.org/bbs/zboard.php?id=press_dictionary)

영화 '헤드윅'
이들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최근 해외 작품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LGBT' 즉 성적소수자들은 친숙하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출연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는 매 에피소드마다 게이들이 존재한다.

여성보다 더 패션에 민감한 스탠포드와 웨딩플래너 앤소니가 그렇다. 두 사람은 <섹스 앤 더 시티>속에서 단순히 사회적 약자나 성적소수자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구석에 숨기보다는 현실에 부딪힌다. 자신들의 사랑과 우정에 대해 스스럼없이 털어놓으며, 표현에 있어서도 대범하고 자유롭게 큰 목소리를 낸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고 국내 여성 시청자들조차 "캐리처럼 고민을 털어놓을 게이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남기곤 한다.

뮤지컬 <헤드윅>은 아예 트랜스젠더 헤드윅이 주인공이다. 미국을 동경한 베를린의 한 청년이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겪는 에피소드가 주된 내용이다. <헤드윅>은 트랜스젠더 록 가수가 펼치는 무대가 주를 이룬 뮤지컬로, 관객들의 큰 호응 속에 국내에서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 작품 속 성적소수자들은 이제 구석에서 움츠리거나 맨 뒤에서 손을 들지 않는다. 당당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성적소수자들이 다시 한 번 대중문화 속에서 소개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1970년대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정치활동을 한 하비 밀크(1930~1978)의 삶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영화 <밀크> 때문이다. <밀크>는 게이 인권운동가인 하비 밀크의 삶을 복원해 스크린에 담았다.

하비 밀크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선언한 후 미국 정계에 진출한 전설 같은 인물이다. 그는 40년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지만, 결국 세상에 게이임을 떳떳하게 밝히면서 편견에 맞선다. 영화는 하비 밀크가 동성애자들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애쓰는 모습까지 더한다.

영화 '리틀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
<밀크>의 홍보사 스폰지 측은 "<밀크>를 보는 관객들마다 감동스럽다는 찬사를 보낸다. 주인공 하비 밀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보다는 그 벽을 허물고 세상과 맞서는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화라는 점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영화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에서는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실화가 그려졌다. 이 영화에서는 스페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등장한다. 로르카는 당시 동성연애자로, 영화 속에서 달리와의 우정과 사랑을 애잔하게 표현했다. 두 사람이 달빛이 빛나는 호수에서 수영하는 장면은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이지만, 성적소수자들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밀크>와 함께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성적소수자가 등장하긴 하지만 별다른 거부감 없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사실 <섹스 앤 더 시티>나 <헤드윅>처럼 <밀크>와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 또한 우리네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작품에 대해서는 과연 관대해질 수 있을까.

얼마 전 서울 대학로의 사진전문 갤러리 카페 '포토텔링'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을 모델로 한 'MIX TRANS FORM' 사진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국내 '트랜스젠더 1호 연예인' 하리수를 포함한 20여 명의 트랜스젠더들이 모델로 나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들의 노출수위가 문제가 돼 음란물 배포 혐의로 고소당하는가 하면, 19세 미만에게는 관람이 금지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이번 사진전의 기획자 이현수 씨는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성적소수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아픔을 전달하고 싶었다"며 "좋은 의도로 기획한 사진전이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의미가 퇴색된 것 같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다시 꺼냈다는 것과 사람들이 이들의 존재를 잊지않고 상기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밝혔다.

서동진 작가는 저서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에서 '대체 너는 무엇이건대 초능력과 신비를 누려도 무방하며(과학의 검열관으로부터 무참히 곤죽이 되지 않은 과학 밖의 성이 있다면 그것이 동화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 어떤 분할과 위계를 무법하게 넘나들며 또 그것을 완벽하게 봉합하느냐'(꼬마 유령 캐스퍼에 대한 담론 중)고 적었다. 작가는 일반인과 장애인, 성적소수자 등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일침을 가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의 사무국장 리언 씨는 "성적소수자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 그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제대로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진지하게 이들의 사실적 삶을 담은 미디어는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전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