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in Cinema] (1) 영화 <불멸의 연인> 속 <카바티나>죽음 앞두고 연인과 만난 장면서 흐르는 음악 그 절절한 흐느낌

버나드 로즈 감독의 <불멸의 연인>은 악성 베토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베토벤이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서랍에서 "나의 천사이자 나의 전부이며 나의 분신인 그대"라고 시작되는 열렬한 연애편지를 발견했다.

편지에 받는 사람의 이름은 없었고, 그저 '불멸의 연인에게'라고만 쓰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은 누구일까.

그동안 많은 사람이 불별의 연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고 애를 썼지만 정작 진실은 지하에 누워있는 베토벤만이 알 것이다.

그런데 예술의 세계에서는 이런 '모호한 진실'이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될 때가 많다. '불멸의 연인'이 바로 그런 경우다. 베일에 가려진 악성의 연인.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영화적 코드가 아닐 수 없다. 버나드 로즈 감독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베토벤의 비서 쉰들러로 하여금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을 찾아나서도록 했다.

영화에는 베토벤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력한 불멸의 연인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줄리에타 귀차르디와 베토벤의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에르도디 백작 부인, 그리고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의 부인인 요한나가 나온다. 세 사람 중에 누가 과연 불멸의 연인일까.

여기서 버나드 로즈 감독은 전혀 의외의 인물을 불멸의 연인으로 내세운다. 바로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의 아내 요한나이다. 하지만 실제로 베토벤은 요한나를 아주 싫어했다. 동생 카스파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조카 카를의 양육권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생모로부터 아들을 빼앗으려는 베토벤의 노력은 거의 편집증적인 수준이었다.

그는 요한나가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다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녀가 남편의 돈을 훔치고, 그를 독살하려 했으며, 무도회에서 몸을 팔았다는 등 온갖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이런 작전이 효과가 있었는지 베토벤은 양육권 소송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버나드 로즈 감독은 영화에서 베토벤이 혐오했던 요한나를 불멸의 연인으로 격상시켰다. 참으로 비약적인 상상력, 충격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베토벤은 동생 카스파의 아내 요한나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그러는 사이 요한나는 베토벤의 아이를 갖는데, 그 아이가 바로 카를이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그 후 베토벤은 카를에 대한 양육권 소송을 제기한다. 카를을 생모에게서 빼앗는 데 성공한 이 비운의 천재는 카를에게 비극적인 정성을 다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베토벤은 요한나와 화해한다. 병상에 누워 마지막을 기다리는 베토벤이 요한나를 불러 카를에 대한 친권을 생모에게 양도하는 서류에 서명한다. 오랜 세월 끌어온 요한나에 대한 애증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다.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여인. 그 여인의 아들을 빼앗아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어미에게 아들을 빼앗은 비정한 인간이라는 낙인뿐이었다.

이제 영원한 이별을 목전에 두고 만난 베토벤과 요한나. 이 절절한 장면에 흐르는 음악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3번 5악장 <카바티나>이다.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이 곡에는 말년을 맞은 사람 특유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5악장 <카바티나>는 베토벤이 눈물을 흘리며 작곡했다고 한다. 말년에 이르러 현악 4중주와 같은 소박한 양식에 집중했던 베토벤. 그는 이 긴밀한 양식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한나와 베토벤. 오랜 세월 끌어온 두 사람 사이의 애증이 해소되는 순간. 그 가슴 저린 장면에 흐르는 카바티나는 요한나에 대한 베토벤의 절절한 흐느낌이다. 세인의 지탄을 받는 불륜의 사랑이었기에 그 사랑을 왜곡된 집착과 증오로 풀 수밖에 없었던 베토벤. 마지막으로 요한나를 만난 그는 가슴으로 울었다. 이런 베토벤의 슬픔을 대변하듯 카바티나를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역시 모두 처절하게 "흐느끼고 있었다."



글 진회숙(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