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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권하는 역사 속 수집가들

쥬노 김 개인전 <산책일지> 전
시대와 경계 넘어 세계 곳곳 누비며 수집의 소명 다한 4人의 행적
전시장에 들어서면 첩첩이 쌓인 거대한 상자들이 우리를 맞는다. 들여다 보면, 자료들이 수북하다.

박물관 사진도 있고, 풍경 사진도 있고, 책의 글귀나 사진을 추려 놓은 것들도 있다. 작가 쥬노 김과 큐레이터 최경화의 공동 수집품이다. 수집대상은 선배 수집가들이다.

가깝게는 한 세기, 멀게는 삼 세기 전에 세계 곳곳을 누비며 수집의 소명을 다한 이들의 행적이다. 한 사람의 평생도 당대와 맞물린 한 역사인데, 네 명의 평생을 한 데 모으려니 전시장이 모자랄 수밖에.

작가와 큐레이터의 묘책은 이 모든 원재료를 하나의 여정으로 꿰어내는 것. 작가는 수집가들의 궤적들을 축약하고 발췌해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이어 붙였다. 그래서 상자들 틈, 전시장 가운데에서는 네 명의 수집가, 그들의 시대, 그리고 경계를 넘은 그들의 지리(地理)가 생생하게 상영중이다.

출발점은 민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8살 때 스웨덴으로 간 작가에게 민화의 원근법은 흥미로워 보였다. 가까운 물체는 크게, 먼 물체은 작게 보이도록 그리는 서구식 원근법과는 전혀 달랐다. 인간의 시각이 늘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이 크게 그려지고, 가까운 물체와 먼 물체가 동등한 민화 특유의 원근법이 오히려 더 정확할 수도 있었다.

  • Dossier of Accidents
가장 먼저 호기심을 자극한 인물은 일본의 민화 수집가 야나기 소예즈(국내에는 '야나기 무네요시'로도 알려져 있다)였다. 1936년 도쿄에 일본 공예박물관을 설립한 그는 일본은 물론, 한국, 중국, 영국, 아프리카까지 넘나들며 민화를 비롯한 공예품을 수집했다.

박물관으로 남은 그의 수집 내력은 단지 개인의 취미로만 풀이되지 않는다. 당대의 무수한 것들 중 골라진 것들은 이렇게 모두의 역사로 공인되었다. 작가는 오늘날의 박물관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는 평범한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민중은 누구인가?"

질문은 야나기 소예즈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20세기 초는 이데올로기의 시대, 정치적 소요와 혁명이 일어난 시대다.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많은 운동은 문화와 상업으로 이어졌다." '민중의 물건'에 대한 관심이 상업을 융성시켰고, 산업전반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과 민중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영국의 공예운동가이자 문명비평적 문학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윌리엄 모리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그의 작업에 영감을 얻어 문명의 스냅사진들에 기지 넘치고 풍자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이를테면 건축물의 창문에 대해서 "안의 것과 밖의 것을 통합 또는 분리시키는 역설적인 틀 장치. 당신이 마음 속의 고향을 생각할 때 당신의 마음은 그곳으로부터 미묘하게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사랑하는 장소와 그곳 사람들에게 항상 낯설어야 한다."

생산현장의 작업장은 좀더 비판적이고 기대하는 시각으로 본다. "직조기와 인쇄기가 설치된 사람들이 노동하는 공간. 작업장은 이윤창출을 위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향상시키는 장소이다."

  • Untitled: Postal Exchanges Sweden-Japan 2009
이 작업들이 작가가 민화의 원근법으로부터 배운 핵심적인 교훈인 '낯설게 보기'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면, 19c 여행가 이자벨라 루시 버드를 따라가는 작업은 다른 사회와 언어, 관습에 부딪히며 '낯설게 보기'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작가는 영국인인 이자벨라의 일본 여정을 따라가며 두 세기 전 그녀처럼 편지를 쓴다.

이자벨라가 일본의 예절을 강요하며 외국인을 멸시하는 일본인 통역자를 보면서 "애국심이라는 것이 어디에 머무는 것인지 궁금했어. 우리 마음의 강한 곳, 아니면 약한 곳일까?"라고 쓰는 동안 작가는 "여기서는 정확한 사실과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것과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같지 않을 수도 있다"고 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고생을 자처한 것일까? 이들을 안온한 삶을 보장하는 정해진 영역, 평범한 시야 밖으로 내몬 요인은 무엇일까? 마지막 수집가, 17c 동식물연구자이자 민속지학자인 게오르그 에버하르트 룸프의 일생이 힌트를 준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군인으로 인도네시아에 상륙했던 그는 평생을 암본섬의 동식물을 채집하며 살았다. 그를 인도네시아로 보낸 것은 시대상황이었지만,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머문 것은 호기심과, 감동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식물이 어떤 사회에서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그는 채집기에 이렇게 적었다.

"라틴어로 헤바 서플렉스. 기도하는 것처럼 손가락 깍지를 낀 두 손 모양 잎사귀 형태. 말레이 연인은 서로 구애하거나 용서를 구할 때 그 식물을 보낸다. 각각의 식물들이 감정이나 욕망을 나타내고 꽃 언어는 간접적이면서도 열정을 전달하는 좋은 방법이다."

고난도 수집을 방해하지 못했다. 그는 42살에 실명한 후에도 연구를 계속하다 죽었다. 그의 모토는 '경험은 모든 것을 앞선다'였다.

  • Untitled: Research Note 20091214
여정의 막바지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이들의 열렬한 수집욕은 곧 삶의 열정이었음을. 각각 스웨덴과 일본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회-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포함해-를 넘나들며 사는 작가와 큐레이터 역시 이 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프로젝트 이후 작가와 큐레이터는 자신이 속한 사회로 돌아갔지만, 그 결과는 여기에 남아 우리에게 수집과 여행을 권하고 있다.

<산책일지> 전은 다음달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화동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02-739-7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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