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큐브릭과 리게티의 '영원한 시간 여행"

[Classic in Cinema] (2)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속 <아트모스페르>
우주 공간에 무수한 별무리 떠 있는 듯한 느낌… 탁월한 배경음악 선택
SF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시작부터가 특이하다.

화면에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동안 음악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영화치고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어둠 속에서 음악만 듣다 보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치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스탠리 큐브릭은 이런 방식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먼 우주공간으로 진입하는 통과의례를 치르게 한다.

그렇다면 듣는 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척박한 지상의 세계에 먼 우주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환각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 음악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헝가리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의 <아트모스페르>라는 작품이다.

지난 1968년, 리게티는 뉴욕에 사는 친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자신의 작품 <아트모스페르>가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편지였다. 우주로의 진입을 암시하는 영화의 도입부는 물론이고, 마지막에 우주의 광활한 폭발이 펼쳐지는 장면에서는 거의 9분 가까운 시간 동안 리게티의 작품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음악을 요긴하게 사용하고도 정작 작곡가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화가 난 리게티는 영화사에 항의편지를 보냈고, 이 일은 결국 법정으로까지 가게 되었다. 하지만 6년간의 소송 끝에 리게티에게 돌아온 저작권료는 고작 우리 돈으로 35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자신의 역작을 마음대로 사용한 것에 항의하기는 했지만 리게티는 스탠리 큐브릭이 자신의 작품을 매우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했다고 한다.

리게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이다. 영화에 쓰인 <아트모스페르>는 '대기' 혹은 '분위기'라는 뜻인데, 제목은 물론 음악 자체도 SF영화에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1961년에 작곡된 <아트모스페르>는 보통 사람들이 듣기 버거워하는 현대음악에 속한다. 현대음악은 영어로 '당대의 음악(Contemporary Music)'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대의 음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지나간 시대의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서양의 고전,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을 주로 듣는다. 당대의 음악인 현대음악은 낯설고 어렵고 불편한 음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낯설고 불편한 느낌' 때문에 이 음악이 SF 영화에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SF 영화 자체가 비현실적인 공간,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어둠 속에서 울리는 <아트모스페르>를 듣게 된다. 음악이라기보다 음향효과에 가까운 곡으로 마치 우주 공간에 무수한 별의 무리가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곡을 연주하는 악기들은 열이면 열, 모두 다 각기 다른 음을 연주한다.

하나도 같은 음을 연주하는 악기가 없다. 따라서 작곡가는 연주에 참여하는 수십 개의 악기 하나하나를 위해 음표를 일일이 그리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이 곡의 악보를 보고 있으면, 작곡가의 위대한 창조성 이전에 엄청난 수의 음표를 일일이 그려 넣은 작곡가의 위대한 노동에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각기 다른 음을 연주하지만 그 차이는 아주 미미하다. 그래서 얼핏 들으면 음악이 정지해 있는 것 같다. 우주에 거대한 먼저 덩어리가 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멀리서 보면 그 덩어리는 그대로 정지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미세한 먼지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트모스페르>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지극히 정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서 수많은 음이 끊임없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소리는 미세한 무지개빛으로 분광하며 흘러간다. 대기 중에 부유하는 듯한 현상, 그 안에서 미세한 음들이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움직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음향 덩어리가 우주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리게티는 이 작품을 통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면서 지속되는' 음향적 역설을 펼쳐 보이고자 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통해 '영원한 시간 여행'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배경음악으로 리게티의 <아트모스페르>를 선택한 것으로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장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19년 11월 제2803호
  • 이전 보기 배경
    • 2019년 11월 제2803호
    • 2019년 11월 제2802호
    • 2019년 11월 제2801호
    • 2019년 10월 제2800호
    • 2019년 10월 제2799호
    • 2019년 10월 제2798호
    • 2019년 10월 제2797호
    • 2019년 09월 제2796호
    • 2019년 09월 제2795호
    • 2019년 09월 제2794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암스테르담 ‘자전거’여행 암스테르담 ‘자전거’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