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전쟁>, <개청춘> 상영회불안정 노동의 시대, 88만원 세대와 쌍용 노동자주제 집담회 열어

작년 여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에 참가했다가 해고된 김신동 씨가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에게도 잘 끝나는 날이 올까?"

재작년 봄부터 1년 간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은 손경화 씨는 말했다. "청춘은 원래 불안하고 20대는 답이 없다고 말하는 게 싫어서 카메라를 들었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는 사실 버겁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올해 초 한국의 실업률은 5%에 육박했다. 노동환경의 불안은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 유연화는 당연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안의 삶은 의문투성이다.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정부가 정리해고를 독려하고, 녹색성장을 하기 위해 강을 개발한다. 다 우리 사회가 잘 사는 길이라는데, 정작 우리는 잘 사는 것 같지 않다.

의문을 품은 이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어 기록했다. 어떤 언론도 들어갈 수 없었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파업 현장과, 언론이 몰랐던 20대의 실상을. 전자는 <당신과 나의 전쟁>이고, 후자는 <개청춘>이다. 이들 다큐멘터리영화는 각각 오늘날 한국사회의 중요한 증상을 포착한다.

그리고 불안한 노동환경에 대한 질문을 통해 서로 이어진다. 정리해고 사태는 취업난의 거울쌍이고, 안정된 삶이 품귀된 사회에서는 누구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행복해지고 싶어서 우리는 질문을 한다. 의문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문이 크고 깊은 만큼 질문도 많이 필요하다.

그것이 <당신과 나의 전쟁>의 등장인물 김신동 씨와 <개청춘>의 감독 손경화 씨의 질문이 만난 연유다. 지난 13일 서울 성균관대에서는 <당신과 나의 전쟁>과 <개청춘>을 상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불안정 노동의 시대, 88만원 세대와 쌍용 노동자는 어디에서 만나는가?'라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국사회의 불안한 증상, <당신과 나의 전쟁>과 <개청춘>

"도대체 파업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이상욱 프로듀서)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77일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벌어진 옥쇄파업의 전후, 안팎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영화다. 노무현 정부 당시 쌍용자동차의 대주주가 되었던 상하이차가 투자를 철회한 후 법정관리 대상이 된 쌍용자동차가 경영정상화 방안으로 직원 2500여 명을 정리해고한 것이 파업의 발단이었다.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상영회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누군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리해고 대상자들이 보기에 책임져야 할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공장을 지역 경제, 직원들의 삶의 터전이 아닌 이윤 생산의 수단으로 보는 해외자본을 도입한 것이 어려움을 가중시킨 원인이었다.

전직원 고용승계와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던 상하이차는 쌍용자동차의 핵심 기술을 얻자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은 채 한국을 떠났고, 이 과정의 손실과 구조조정 결과는 고스란히 국내 경제의 몫으로 남았다. 회사 경영과 정부 정책이 실패한 사례인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회사의 정리해고 방안은 대상자들의 반발을 샀고, 노사간 협상이 여러 차례 결렬되면서 파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알려져 있다시피 회사가 고용한 경비업체와 경찰특공대가 파업을 진압했다. 막판은 아비규환이었다. 전기와 가스는 물론, 음식과 물까지 끊긴 파업 현장에 최루액이 살포되고 테이저건이 쏘아졌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무시됐다.

영화는 이 현장을 충실히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이런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그 심각성만큼의 사회적 논의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은 국가경제를 걱정한 나머지 빠른 정상화를 촉구했고, 파업의 근본적 원인을 따져 해법을 모색하기엔 너무 급급한 분위기였다.

파업 기간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불러일으킨 애도 행렬은 한국에서 사는 삶의 고단함을 증언했지만, 그 슬픔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쌍용자동차의 일은 잊혀졌다. 영화는 그 망각을 슬퍼한다.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은 한국사회의 불안한 삶의 한 상징이기에, 언제든 또 다른 곳에서 벌어질 수 있기에. 그래서 영화 제목은 '그들'이 아닌 <당신과 나의 전쟁>이다.

<개청춘>은 이십대 후반 여성 감독 3명이 '반이다'라는 이름으로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영화다. 88만원 세대에 대해 말은 많지만, 정작 이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사회에 스스로 그 실상을 폭로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대기업의 고졸 여사원, 군대 가기 전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는 청년, 방송사 막내 작가다. 각각 다른 처지의 이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그 공통점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매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 자격지심과 자기계발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감독들은 끊임없이 이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본다. 스스로 "쩔은 직장인"이라는 대기업 여사원 앞에서는 "뚜렷한 소속이 있는 그녀가 부러울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청년실업이라는 말을 비웃으며 자신만만해 하는 청년 앞에서는 "아니, 사회가 뭔가 문제가 있는 거 같아. 그런데 어쩐지 변명 같아" 침묵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씩씩해 보였던 그들이 자신 안의 막막함을 꺼내 놓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함께 막막해 한다.

방송사 막내 작가는 결국 회사의 인력 감축으로 글 한번 제대로 못 써본 채 해고된다. 이 "아무것도 책임져주지 않는 사회에서" 청춘들은 어디로 가나. 감독들은 IMF를 겪으며 자란 세대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고 배웠고 꿈이나 용기 같은 단어는 사치였다. 그런데 지금 안정적인 직장은 하늘의 별이 되었고 사회는 꿈과 용기가 없다고 도리어 이들을 나무란다.

영화는 결론낸다. "스스로를 갉아먹기"보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지 어떨지, "물음을 주고받자"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공론화할 것인가

이 결론에 따라, 영화 상영이 끝난 후 <뉴라이트 사용 후기>의 저자 한윤형이 사회를 맡고 <개청춘>의 감독 중 한 명인 나비,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전 기획부장,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의 이류한승 활동가, 성균관대 문과대학 학생회장인 의미, 대학원생인 최태섭이 참석한 '집담회'가 이어졌다. 한국의 불안정한 삶의 환경의 상징적 존재들인 노동자와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가 주된 화제였다.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에 있었던 이창근 전 기획부장은 "노동자에게 경제적 책임을 지우는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해고가 노동자에게는 삶의 터전의 상실인 만큼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의미는 "대학 내에서도 구조조정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지 않다. 대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인 노동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류한승 활동가는 "대학생들이 사회적 타자와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제안했다.

20대 스스로 불안정한 노동 환경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비는 "<개청춘>을 대학에서 상영했을 때 대학생들이 '저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을 봤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은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대다수는 상황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최태섭은 "20대 중 상당수는 처음부터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는 '먹고 사는'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태섭은 "먹고 사는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천박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는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인 노동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는 <당신과 나의 전쟁>과 <개청춘>의 상영 정보는 영화 사이트(http://77days.tistory.com과 http://dogtalk.tistory.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