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뮤직 아카데미와 18인의 장장 토론회각개전투 해외공연보다 장르 페스티벌 집중 후원이 효과적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공연 장면
과연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일까'아니면, '세계적인 것은 전통의 부정(否定)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세계적인 것은 오직 마케팅의 승리일까', '그렇다면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할까'까지.

이 케케묵은 질문은 여전히 한국의 예술가들을 고민에 빠뜨린다. 한국음악 관계자들로까지 확장된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지난 2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개최한 '월드뮤직 아카데미와 18인의 장장 토론회'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따라가는 과정이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수요조사에 따르면 국내 한국음악 그룹의 해외진출 목적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국내 시장의 도피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해외공연 경력이 오히려 국내 공연시장에 빠르게 안착하려는 방편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를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이, 실제로 한국음악 연주자들은 오랜 시간 소외되고 방치되었으며 텅 빈 객석을 바라보고 한탄만 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느 한 곳의 출구는 다른 곳으로 향하는 입구가 될 수도 있다.

아이리쉬 탭댄스 <리버댄스>
한국음악이 해외에 진출한다고 할 때, 월드뮤직 시장을 겨냥한다는 사실은 묵언의 합의와도 같았다. 이 같은 논의를 할 때 으레 월드뮤직 시장의 맥락에서 풀어왔던 것도 그런 이유다. 20세기가 '세계화'의 시대였다면 21세기 패러다임은 세계화를 바탕으로 한 '다각화'이다.

탈 서구경향이 나타나면서 프랑스에서 출발한 월드뮤직의 주도권은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음악들로 옮겨졌다. '장르가 아닌 시장의 개념'으로 생겨나 태생적 한계와 숙제를 안고 있는 월드뮤직은 그러나 세계 모든 음악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다. 한국음악의 해외 진출을 월드뮤직에서 찾고자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월드뮤직을 좋아하는 이유를 "그 안에 나라와 민족의 문화와 역사가 들어 있어서"(송기철)라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동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 월드뮤직 시장 안에는 한국음악이 속해 있지 않다. 한국음악은 세계 월드뮤직 안에서도 전혀 새로운 장르인 셈이다.

월드뮤직이 포용하는 장르에는 쿠바음악의 장르, 아프로 레게, 삼바, 보사노바, 살사, 탱고 안데스 인디오 등의 음악, 유럽의 캑틱, 집시, 플라멩코, 파두, 아프리카의 주주, 치무렝가, 룸바 등이며 지금까지 아시아의 음악은 인도의 라가 정도만이 주요 월드뮤직으로 소개되고 있다.

월드뮤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혼종이다. 대중음악과 비서구 전통음악의 이종교배로 시작된 월드뮤직은 변이를 거듭해 아예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이런 양상은 해가 갈수록 복잡해진다.

세네갈 출신의 유순두
지난해 워멕스 쇼케이스에 출연한 그룹 중 하나인 Ale Moller Band는 스웨덴 출신의 Ale Moller가 만돌라, 플루트, 아코디언, 하모니카와 노래 담당하고 세네갈 출신의 Mamadou Sene는 아프리카 발성의 노래와 리티, 그리스 출신의 여성가수인 Maria Stellas는 메인 보컬이며 손가락 타악기인 심벌즈를 연주하고 멕시코 출신의 Rafael Sida Huizar는 멕시코 드럼, 캐나다 출신의 Sbastian Bube는 베이스와 백 보컬을, 그리고 스웨덴 출신의 Masnus Stinnerbom은 민속 피들, 만돌린, 기타를 담당하는 식이었다.

월드뮤직에서 성공한 이들은 누구일까. 쿠바음악의 오마라 포르투온도, 이브라힘 페레르, 꼼파이 세군도, 파두의 마리자, 탱고의 피아졸라, 보사노바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그리스의 렘베티카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캘틱의 치프턴스, 음발라의 유순두, 시타르 연주자 라비샹카 등이다.

월드뮤직은 공연예술과 결합해 알려지기도 하는데, 국내에도 내한한 바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뮤지컬 <우모자>,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되었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아이리쉬 탭댄스를 기반으로 한 <리버 댄스>, 장이모 감독의 스펙터클 프로젝트 <인상 시리즈> 등이 각 지역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훌륭한 공연 상품으로 거듭난 사례들이다.

이들 성공사례에는 일종의 성공 법칙이 있다고 김희선 교수는 분석했다. '자국 문화와 역사를 재해석을 통한 전통 강조 / 다양한 음악장르를 통한 음악 활동 및 음악적 실험 전개와 이미 기존의 주류음악가들과의 공동작업 / 서구 쇼케이스 및 세계 투어를 통한 지속적인 뉴스 생산 / 작품과 아티스트 혹은 장르와 관련된 스토리텔링 / 철저한 예술적 실력 지향 / 다른 어떤 아티스트 혹은 다른 어떤 공연으로 대치할 수 없는 유일한 콘텐츠인 동시에 분명한 장르적 성격 / 이외에 적절한 마케팅과 홍보 지원 등'을 꼽았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음악단체 대표가 각개전투로 해외 무대의 문을 두드렸던 것과는 달리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된 현재의 시스템에는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제는 기존의 '맛보기 식'의 해외 공연보다는 주요 극장을 중심으로 한 장르 페스티벌 집중 후원을 통해 마케팅을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뮤지컬 <우모자>
연주자나 음악적 성격에 대해서는 "세계음악시장에서 한국음악만의 색깔 구축이 절실"(김희선), "동양의 음악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 창조 요구"(김진묵), "판소리, 민요, 잡가, 정가 등의 대중화 및 세계화의 가능성 모색"(최상일), "타악에서의 가능성 모색과 해외 아티스트와의 교류"(김동원)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해외에서는 한국음악의 월드뮤직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현재 아프리카 음악의 대표주자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유순두는 "전통만 고집해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전통 없이는 세계적일 수 없다. 당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되돌아 보라" 라고 말한다.

이 명쾌한 듯 모호한 답변이 여전히 혼란스럽다면, 세계 최대 월드뮤직 아트마켓인 워멕스(WOMEX·The World Music Expo)의 창시자인 벤 만델손의 말은 보다 직접적이고 따끔하다. "한국음악 샘플을 많이 받았지만 대다수가 미국풍의 팝 음악이었다. 이런 건 관심 없다. 다양한 시도는 좋지만 정작 한국 색이 탈색되어 있다. 이른바 퓨전국악이란 음반에도 탱고나 재즈, 보사노바 같은 음악들이 리메이크되어 있는데 이런 시도는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것일 뿐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다. 한국색깔을 가진 음악을 선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참고자료>
월드뮤직의 한계와 세계의 음악시장 – 김희선(국민대학교 겸임교수)
명상음악 시장과 한국 전통음악의 진출 가능성 – 김진묵(음악평론가)
라틴/아프리카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미국 대중음악 – 송기철(음악평론가. K-Beat 뮤직 대표)
월드뮤직에서의 가사의 이해, 과연 장벽인가? – 최상일(민요전문 PD)
한국 타악의 강점 : 호흡과 장단 – 김동원(원광디지털 대학교 전통예술학과 교수)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