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화 속으로> 촬영 현장 관람기낙동강 앞두고 벌어진 포항여중 전투 재현… 전쟁의 의미 되새겨

영화 '포화 속으로' 촬영 현장
전쟁을 겪은 세대와 함께 전쟁의 기억이 시대의 흐름 뒤로 물러나고, 기록과 재현이 그 자리를 메우는 오늘날 전쟁영화는 가장 편리하게 전쟁을 경험하게 하는 매개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 멀어졌지만 그 잔상은 여전히 정치판에, 시청앞 광장과 교과서에, 대한민국어버이협회에, 사회 이슈에 대한 언론의 갑론을박에 생생히 살아있는 한국사회에서 전쟁영화는 전쟁의 진실과 대중이 보고싶어 하는 전쟁 이미지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쟁영화는 하나의 역사인식으로 전쟁의 역사에 남는다.

한국전쟁 후 60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그 비극을 어떻게 되살리고 있을까.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을 앞두고 벌어진 포항여중 전투가 올여름에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 <포화 속으로>다. 파죽지세로 남하해 오던 북한군에게서 부산을 지키기 위해 국군이 전력을 낙동강에 총집결한 상황, 텅 빈 포항에서 북한군 766유격대와 마주한 이들은 정식 군인이 아닌 학도병들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총 한번 잡아본 적 없었을 이 71명의 아이들이 전쟁에 떠밀려 사람을 죽이고, 죽어갔다. 학도병 47명과 북한군 60여 명이 삶을 마감하는 데 겨우 11시간이 걸렸다.

<포화 속으로>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지난 19일,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영상테마파크를 찾았다. 앞서 <태극기 휘날리며>가 촬영되었고, 각종 사극의 단골 배경으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모토로 내세운 그곳에서 전쟁에 대한 어떤 진실과 이미지, 어떤 욕망과 인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취재진을 가장 먼저 맞은 것은 총소리와 자욱한 먼지였다.

학도병 역의 권상우
귀도 눈도 따가웠다. 몇 시간, 아니 몇 달째 그 속에 있었을 스태프들은 마스크 차림이 익숙해 보였다. 곳곳에 군복 차림 배우들이 눈에 띄었다. 더러는 피범벅이었다. 낯빛이 창백한 채 바닥에 누운 이들도 있었다. 숨소리조차 없는 이들은 툭툭 건드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체 역할 인형이었다. 전쟁영화 현장에 온 것이 실감났다.

북한군과 학도병이 팽팽하게 대치한 이곳은 소도시 저잣거리 세트다. 성인 남자 10명이 늘어서면 꽉 차는 너비에 길이는 100m 남짓인 직선 도로 양편에 개성상회, 동양당구장, 정인교회 등등이 들어서 있다.

저만치에는 '점 잘보는 집'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붙어 있다. 폭격으로 불타고 허물어진 건물 안에는 가재도구들이 뒹군다. 건물 벽에 붙은 비락우유, '츄잉검', 영화 '쿼바디스' 광고는 물색 없다. 평범한 삶의 터전이었을 텐데, 이젠 안온한 데가 없다. 길 한편에는 탱크가 전복되어 있고, 지친 '군인'들은 아무데나 주저앉아 있다.

혼란의 정황을 증언하는 것은 골목마다 붙은 현수막과 벽보들이다. 전쟁통에는 이들이 가장 중요한 미디어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자유를 빼앗는 괴뢰도당을 물리치자', '조국을 팔아먹는 북한 괴뢰도당' 같은 현수막에는 한 순간 영문도 모르고 전쟁에 삶을 빼앗긴 사람들의 울분이 담겨 있다. 그 와중에는 무엇에 대해서라도 싸워야 했을 것이다.

벽보들은 앞다투어 사람들을 꾄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귀순하여 오는 동지들을 편히 쉬게 하며 전쟁이 끝나면 꿈에라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려보내줄 용의가 있다"며, 연합군은 투항한 북한군인들의 사진을 내걸고 "이 동지들을 본받으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며 북한군을 설득한다.

북한군 대장 역의 차승원
또한 이데올로기 싸움의 진실에 의심을 품은 민족자주청년학우회는 묻는다. "우리는 왜 민족자주군대가 되어야 하는가. 한국군 작전지휘권이 미국에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이데올로기 틀 속에서 통일과 민족 복음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전쟁이 냉전 체제의 대리전이었음을 성찰할 수 있게 된 지금도, 이 질문은 현재진행형이다.

하물며, 이런 질문을 감당하기엔 싸우는 이들이 너무 어리다. 방금 난 총소리에 너부러져 있는 배우들의 얼굴이 해사하다. 죽은 척이 지겨운지 팔다리를 꼼지락거린다. '컷' 소리만 나면 언제 심각했냐는 듯이 금세 시시덕거린다. 기자들이 말을 걸면 쑥스러워하면서도 신나 한다. 사진도 찍혀주고, 파일로 보내달라며 메일 주소도 알려준다. 배우들이야 대다수가 스무 살은 넘었을 테지만, 당시 학도병들은 더 어렸을 것이다.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이우근 학도병의 편지는 영화 속에 고스란히 인용된다. "어머니, 두렵습니다. 제 옆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저 학우들처럼 저 또한 죽음이 두렵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화에서 편지의 주인공은 아이돌그룹 멤버인 T.O.P다. 올해 24살인 그가 읊어도 그 두려움이 슬플 텐데, 진짜 전쟁은 얼마나 참혹했을까.

그나마 멀쩡한 개성상회 건물 옥상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저 아수라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한군들이 밀려 오는 장면을 찍는 중이다. 북한군 역을 맡은 배우 100여 명이 열을 지어 서있다. 군사자문인 김세랑 씨가 목청을 높인다. "오른발은 뒤로 빼시고요, 총구는 치켜 세우시고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수 있다는 자세로요!" 신호가 떨어지자 다들 비장한 태도로 카메라를 향해 달려 나간다. 그래봐야 10미터도 못 가 멈춘다.

카메라 너머에는 아무도 없고, 카메라 너머까지 달릴 이유도 없다. 이들의 총구는 어디를 겨눈 것일까. 전쟁 중에 자신이 정말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았던 이가 얼마나 될까. 카메라가 쉬는 동안 스태프들은 다음 장면을 위해 곳곳에 불을 놓고 피를 뿌리고, 시체를 배치하느라 바빴지만 세트 너머 포화가 가리지 못한 황매산의 능선은 도도하고 아늑했다. 봄이면 철쭉이 아름답게 피는 곳이다.

그러니 전쟁영화 촬영현장만큼 전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소도 없을지 모른다. 포화와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어지럽지만 정작 군인들은 이 상황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당장의 급박한 임무와 사건들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는 부질없고 어리석다. 폐허가 슬픈 것은 그곳도 언젠가 평범한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고 그냥 그렇게, 동양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정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가끔 점도 보고 츄잉검도 씹어가며 사는 게 대다수의 행복임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중에도 삶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곳에서 누군가는 담배를 피고, 누군가는 깜박 잠이 들어 있고, 누군가는 수다를 떨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거나 먼산을 바라본 <포화 속으로>의 촬영 현장 풍경처럼. 이런 자질구레한 실체야말로 어떤 이념이나 추상적 감정보다 더 정확한 전쟁의 의미가 아닐까.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