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해리포터', '아바타', '장보고' 프로젝트 등 선택과 집중으로 추진

"아이폰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가 한국 어딘가에는 왜 없겠습니까? 다만 그런 천재가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게끔 여건과 환경이 제공되느냐 여부가 미국과 한국의 커다란 차이겠죠."

대한민국의 콘텐츠 산업을 지원하는 총괄기관이라 할 수 있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재웅 원장은 "우리도 그런 천재성을 가진 인재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제공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기존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게임산업진흥원 등 콘텐츠 관련 5개 기관을 통합, 지난해 출범했다. 초대 원장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재웅 원장은 대한민국 콘텐츠의 세계화를 위한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아무래도 정부기관인 만큼 민간업체들을 뒤에서 지원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콘텐츠기업들이 스스로 업계를 선도할 만한 실력을 갖추도록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진흥원 업무의 방향은 '뒤에서 미는 것이 아닌, 앞에서 끄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사실 콘텐츠 산업이란 것이 정부기관에서 진흥시킨다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니죠.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 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어우러져 자발적으로 생산되고 자연적으로 발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민간 자본은 워낙 취약하다. 개인이나 업체 차원에서 모든 일을 다 해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진흥원이 이를 보완해 주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고 이 원장은 생각한다.

"콘텐츠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투자, 유통 단계까지 진흥원이 지원해 주려 합니다. 또 국내 시장은 협소하기 때문에 국외로 진출하고 수출을 하는 것만이 우리 콘텐츠 산업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콘텐츠진흥원의 역할이 거기에 있는 것이지요."

원장 취임 후 불과 1년, 콘텐츠 산업에서 당장의 성과가 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콘텐츠 산업 진흥을 위한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데서 성과를 스스로 인정한다.

이 원장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크게 세 가지.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한 해리포터 프로젝트, 영상 CG 기술과 인력을 양성하려는 아바타 프로젝트, 우리 콘텐츠 산업의 세계화를 위한 장보고 프로젝트 등이다.

"우리 콘텐츠가 이제는 아시아발 한류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앞으로는 미국발 한류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전세계에서 미국 콘텐츠 시장 규모는 무려 40%. 미국으로 나가야만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원장의 판단이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으로 이 원장은 취임 후 사업들을 새로 묶고 정리했다. 조직구조도 기능 위주로 개편했다. 종전에는 방송 영상 게임 애니메이션 등 대략 15가지 장르별로 지원이 이뤄졌는데 지금은 프로젝트 단위별로 기능적으로 통합했다. 장르의 벽을 허물고 중복된 예산 지원을 줄이려는 의도에서다.

지원 방식도 좀 더 집중화해야 한다고 이 원장은 생각한다. 이전에는 다수를 위한 분배적 성격이 강했지만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성실한 업체와 사업에 더 크게 투자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이런 변화는 당장 지원사업을 결정하기 위한 심사 과정에서부터 나타났다. 진흥원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제출하는 제안서의 형태와 분량이 완전히 달라진 것. 당장 '모든 제안서는 A4 용지 5장 이내'로 통일됐다.

"응모하는 제안서의 분량이 엄청났습니다. 종이장도 많고 글도 길고 프리젠테이션을 멋있게 한다고 제안서도 예쁘고 멋지게 만들어들 왔습니다." 이를 바라보던 이 원장은 하지만 생각이 달랐다.

"제안서 하나 만드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제안서에 들어 있는 속내용인데도 말이죠. 제안서를 잘 만드는 업체가 득을 보는 것이 아닌, 제안서에 담긴 아이디어와 열정을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내용은 좋은데 제안서를 못 만든다고 불이익을 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 원장이 구상하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작업은 벌써 시작됐다. 심형래 감독 주도로 당장 LA에서 촬영에 들어간 'The Last Godfather' 영화 지원에 나선 것. CG 기술이 결합돼 미국 시장 진출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도전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지원 사업과 해외 진출의 매뉴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진흥원 산업 분석실에 조사를 시켜봤습니다. 우리 콘텐츠 중에 가장 미국이나 해외 진출이 용이한 아이템으로 CG가 많이 들어간 코미디 영화가 꼽혔습니다. 코미디 시장은 미국에서도 가장 큰 장르여서 유리할 것으로 보이고 미국인들에게도 비교적 충격과 재미를 주기에 쉬울 것이라는 분석이죠."

이 원장은 실패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설사 우리 콘텐츠가 실패하더라도 계속 내보내야 한다는 지론이다. 설사 A급이 아니라 B급, C급이라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미국인들도 한국 콘텐츠가 돈이 되더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그 작업을 콘텐츠진흥원이 맡아야 한다고 이 원장은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콘텐츠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는 여러 장애가 가로막고 있다. 언어 장벽도 높고 우리 정서가 미국의 정서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미국 정서를 쉽게 받아들이고 익숙해 하지만 미국인들이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다. 그러나 실상 해외 진출에 가장 큰 장애물은 자본이다. 제작에서부터 유통까지 드는 적잖은 비용을 개인이나 업체가 대기에는 크게 부족하다는 것.

이에 대한 해답 또한 진흥원에 있다고 이 원장은 제시한다. 진흥원이 가진 노하우나, 인적자원을 동원하면 비록 자금 지원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때문에 우리 콘텐츠의 노출 빈도를 높여주기 위해 미국 시장의 인적 네트워크와도 교류를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벌써 미국 6대 메이저 배급사와 4대 네트워크와 MOU로 유통망 확보에도 돌입했다.

또 할리우드의 본거지인 LA에 전초기지를 만든다는 것도 새롭게 시도되는 노력이다. 이 원장은 미국으로 달려가 LA에 기반을 둔 제작사나 투자사 등 요인들과도 만나 향후 세미나, 공동 작업등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의견 교환에도 나섰다. 우리 콘텐츠의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의회, 투자사, 제작사, 언론사 등 관련 부문 인사들과 두터운 인맥 형성이 절대 필요하다고 그는 확신한다.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기대와 함께 우려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중국이 향후 문화 콘텐츠 산업에 주력한다고 공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미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중국이 눈을 콘텐츠와 문화로 돌리고 집중 육성에 나선다면 향후 버거운 경쟁 상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진 풍부한 자본과 거대 시장이 결국 훌륭한 콘텐츠 생산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시장과 인구 규모가 작은 우리가 지금은 앞서 있다지만 그 격차는 조만간 역전될 수 있다고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의 온라임 게임 또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미국의 부상으로 위태로울 수 있다고 이 원장은 진단한다.

"하지만 한국인이 가진 문화 콘텐츠 DNA는 세계에 내세울 만큼 뛰어나다"고 이원장은 확신한다. "변변찮은 제작사 하나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시아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나 음악들을 줄줄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만 봐도 대단하지요." 때문에 콘텐츠 산업은 과학이라기보다는 감각에 가깝다.

"산업은 제조업을 거쳐 상업과 IT산업을 지나 이제는 콘텐츠 산업의 시대입니다. 고용효과도 높이고 부가가치도 높기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이재웅 원장은 "사람들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고 그런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한국인의 창의성과 열정으로 보아 취약한 자본과 지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래 콘텐츠 시장은 밝다"고 정의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