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세상에서…> 연극으로, 어떤 모습 그릴까 관심집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이재규 연출, 노희경 작가(왼쪽부터)
도대체 엄마 신드롬의 끝은 어디일까. 요즘 관객이 몰리는 연극은 '엄마가 있는' 연극과 '엄마가 없는' 연극으로 구분해도 될 정도다. 어머니, 며느리, 아내, 누나, 딸.

엄마의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은 '엄마'라는 영역에서 상대 가족구성원에 따라 다양한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그 결과 '한국에서 여자로서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시도가 빈번해진 만큼 소위 '엄마 연극'들이 다룰 수 있는 주제도 상당히 제한돼 있다.

갖가지 엄마 레퍼토리를 접한 관객에게 엄마 연극은 이제 예측가능한 눈물과 감동의 결정체다. 전형성에 갇힌 엄마 연극은 새로운 엄마 담론, 또 하나의 '엄마이즘'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연극열전 3의 다섯 번째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제목에서 오히려 그 익숙한 전형성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제목도 왠지 귀에 익다. 잠깐 기억을 더듬어보면 십수 년 전의 TV 드라마에서 그 출처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가족 다큐멘터리에서나 맛볼 수 있는 엄마의 헌신적 삶을 극적으로 다뤘던 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 MBC 창사 특집 드라마)이 그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중 송옥순, 최일화 가족
시청률과 무관하게 평단과 대중의 고른 호감과 인기를 얻어온 노희경 작가는 그래서 최초의 마니아 작가이자 작가주의 작가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경력과 평가를 일관되게 이뤄온 것은 노 작가 작품 특유의 시선 덕분이다. 작품을 거듭하며 그의 관심사도 세분화됐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가족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던 노 작가가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작품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엄마의 죽음에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바로 이 지점이 노 작가의 섬세하고 관조적인 시선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모성애 또는 가족이라는 일상적 주제를 넘어 인간의 삶을 담아내려는 낯선 시선과 새로운 감각은 작품과 장르를 넘어 연극에서도 노희경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게 해준다. 하지만 연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공연을 앞두고 지난 7일 대학로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노 작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스포트라이트를 다른 이에게 넘겼다.

4부작인 그의 작품을 각색해 연극으로 옮기는 작업을 주도했던 이재규 연출이 그 주인공이다. 이 연출은 <다모>, <패션 70s>, <베토벤 바이러스>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한 손에 거머쥐어온 스타 연출가로, 최근엔 디지털영화 <인플루언스>를 연출하며 활동 영역의 확장을 선언한 바 있다.

그는 이번 각색 작업에서 원작의 틀을 가능한 한 그대로 가져가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제일 중요한 건 '가족'과 그들 사이의 관계다.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인데, 아름다운 건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사실 알고 보면 사람들도 별로 아름답지 않지만(웃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사는 모습이 슬프고 한편 아름다운 게 있다. 그런 점에 집중하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중 정애리, 최정우 가족
1시간 30분으로 압축된 이번 작업에 대해 노희경 작가는 자신의 관여도, 심지어 보지도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각색은 내 영역이 아니라 온전히 연출가의 몫이다. 원작자로 앉아 있지만 이방인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 그는 자신은 관객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극 무대에 처음 도전하는 두 사람 못지 않게 주목을 받는 것은 엄마 인희 역의 배우들이다. 원작 드라마에서 나문희가 맡았던 엄마는 연극에서는 정애리와 송옥숙이 나눠 맡았다. 송옥숙은 "나문희 선배가 워낙 잘해서 걱정이 크다.

정애리는 냉정하고 나는 독해보이는 이미지인데 엄마 역을 잘 해낼지 모르겠다"며 관객이 기대하는 엄마 역을 어떻게 표현할까 걱정했다. 이에 대해 노희경 작가는 "원작에서 나문희의 엄마는 질펀한 매력이 있었는데, 연극에서 송옥숙의 엄마는 귀엽고 정애리의 엄마는 전형적인 엄마 같을 것 같아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관조적인 입장을 취해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연극열전의 새로운 작품이자 '엄마 연극'의 한 작품으로, 연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역시 '엄마를 어떻게 그릴까'이다. 이재규 연출은 이번 작업을 위해 원작을 다시 보니 '아내'가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극 중 엄마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며느리이자 누나이자 엄마로 고생을 해왔지만, 정작 드라마 방영 당시에는 아내로서의 김인희를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 이런 이 연출의 시선이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날지도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투사해 이번 배역에 몰입하고 있는 배우들의 고민도 각양각색이다. 철부지 동생 역의 박철민은 실제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고 밝히며 "어떨 때는 보고만 있어도 하염없이 눈물이 나는데, 어떨 때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며 객석을 숙연케 했다.

정애리는 "엄마이자 여자가 그렇게 사라지는 과정이 서글프다"고 말하며 "내가 본 엄마와, 딸이 보는 나의 이중적인 관계를 생각하며 엄마를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송옥숙은 실제로 낳은 딸과 입양한 딸과의 관계에서 엄마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예로 들어 눈길을 끌었다. "직접 낳은 딸도 때론 거리감이 있고 입양한 딸은 어쩔 수 없이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에게 이번 작품은 엄마라는 존재에 국한된 슬픈 존재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 간의 소통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노희경 작가 역시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들이 모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이 연극을 통해 이 세상이 별 문제 없구나,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로부터 가족으로 퍼졌던 엄마 연극은 이제 관계와 삶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계기가 결국 엄마라는 존재에서 시작하고 파생된다는 점에서, 노희경과 이재규가 함께 낳은 엄마 연극이 어떤 엄마 담론을 만들어낼지 기대감을 일으키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