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진 <캄보디아-흙, 물, 바람>전자연과 어우러진 캄보디아 사람들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반추

망고나무 잎새 사이 고요히 틈을 비집은 빛이 수줍은 소녀에게 머물다. 2009. 1 프놈펜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진'이라는 설명은 너무 방대하고 모호하다.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있지 않을까.

사진작가 임영균은 "다른 사람에게 감동과 새로운 느낌, 그리고 상상력을 주는 사진"이라고 답한다. 덧붙이자면 '스스로 가장 고민하고 느꼈던 삶이 그대로 배어난 사진'이라는 설명이다. 사진 속에는 사진가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진평론가 진동선의 정의는 보다 추상적이다. 그는 "세상의 어떤 사진이든 진실한 눈과 진실한 마음으로 찍었다면 그것이 좋은 사진"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좋은 사진이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좋은 눈과 좋은 마음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말을 합쳐 평균을 내면 '좋은 사진'의 정의는 이렇다. "사진가의 좋은 눈과 마음이 담겨 보는 이에게 감동과 상상력을 주는 사진." 결국 좋은 사진이란 사진가의 인성과 대상에 대한 고민,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구성된다고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16일까지 금호아트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임종진의 <캄보디아 - 흙, 물, 바람>전에 걸린 사진들은 틀림없이 '좋은 사진'들이다. 정치, 경제적 이슈와 성별, 계급에 따른 사회적 비판 등 거대담론이 담긴 '무거운' 사진들이 주목을 받는 시대, 임종진 작가는 왜 지구의 변방인 캄보디아, 그것도 왜 그곳의 '흙, 물, 바람' 따위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열두 살 린은 친구들과 집주변을 맴돌고 마을을 휘돌던 바람은 소녀를 감싸 안았다.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벙깍호수 4구역 마을. 나랏님들이 실어 나르는 모래는 오늘도 호수를 잠식해 간다. 2009. 7. 프놈펜
사진에 대한 정의와 비슷한 맥락에서 그의 이력을 보면 그가 소외된 곳과 세상과의 소통에 많은 관심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월간 말과 한겨레신문에서 사진로 몸을 담았던 그는 한겨레문화센터에서는 <소통으로 사진하기>라는 강좌를 통해 사진을 함부로 찍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웠다. 북녘사진전이나 고 김광석에 대한 개인전과 사진집 출판은 어둡고 잊혀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캄보디아와의 인연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JSC(Jesuit Service Cambodia)라는 NGO단체의 일을 나눠 맡으며 장애인학교 학생들의 친구이자 가난한 마을의 무료사진사로 1년여 동안 머물러온 것. 캄보디아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잔혹한 역사의 흔적이 남은 킬링필드의 나라이자, 역사적 유물 앙코르와트의 나라로 인식돼 왔지만, 정작 캄보디아 사람을 조명한 시도는, 특히 사진에서는 드물었다.

그래서 '선이골 아이들'과 '북녘 사람들'에 이어 캄보디아에 그의 시선이 꽂힌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대상이 바뀌었을 뿐, 결국 그의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래서 임종진 작가는 왜 하필 덥고 가난한 캄보디아에 갔냐는 질문에 "지위나 처한 환경에 따라 어느 타인의 삶을 아래와 위로 구분해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들보다 선진국이라는 어설픈 자부심으로 그들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사진들은 그런 그의 시선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다. 멀리 잡은 풍경엔 그야말로 흙, 물, 바람이 있는 캄보디아의 자연을 그대로 담았다. 따뜻하지만 섬세하고 예리한 작가의 시선이 빛나는 것은 인물 사진에서다. 카메라를 향해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그대로 때묻지 않은 캄보디아 자연의 모습을 닮아 있다.

빽빽하게 줄지어 선 고무나무숲 사이 뒤엉킨 바람과 빛이 춤을 추다. 2009. 7. 깜뽕톰
마치 한국의 공익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제3세계의 천진함이 이 사진에서는 더욱 순도를 높여 보는 이를 찡하게 한다. 자연의 푸른 빛, 또는 무채색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모습은, 반대로 도시 안에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과 어색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과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있는 작가는 '이쪽' 사람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엔 '그쪽' 사람이다. 그것은 사진 속 작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호감 어린 눈빛이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도운 최연하 독립큐레이터의 "임종진 작가는 선하고 심심한 작가"라는 표현은 그에 대한 적확한 묘사다. 최 큐레이터는 "사진가마다 특징과 장점이 있다면 임종진 작가의 장점은 '선한 검지'에 있다"고 말한다. 손 끝의 재주로 보이는 것을 그 이상으로 담아내려 하기보다는 임 작가는 예의 그 '선한 검지'로 보고 들은 것들을 찍고 쓴다.

때문에 그가 담은 캄보디아의 사람과 자연엔 가난과 전쟁과 폭력 같은 노골적인 정치성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사람 자체, 자연 자체여서 아름다운 캄보디아가 간결하게 담겨 있다. 임 작가의 선하고 심심한 사진들은 캄보디아를 닮은 그 느낌으로 우리를 향해서 환하게 인사를 건넨다. "썩써바이(안녕)?"라고.


3백50일을 함께 한 이들은 오늘 마지막 하루를 몸으로 털어낸다. 내일 약속된 이별은 아직 멀기만 하다. 2008. 12. 반티에이 프리웁
어제 한 채가 사라지면 오늘 두 채가 사라지고 그 안에 머물던 사람, 사람들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렇게 물 위에 고였던 삶은 하나 둘 기억으로만 남겨진다. 2009. 8. 프놈펜
벙깍호수를 메워오는 모래는 이들의 길채비를 재촉하는 강요된 물증이다. 한가로운 산책이 아닌 마지막 호기의 걸음. 2009. 7. 프놈펜.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