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서 인간은 휴식할 수 있는가 묻는 거리 공연로 밝혀져

지난 4월 8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엔 난데없이 '광화문 괴물녀'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로 올라왔다.

헝클어진 머리, 넝마와 오물로 뒤섞인 무언가를 머리와 어깨에 이고 다니는 그녀는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를 활보했다.

광화문 지하보도에선 아예 자리를 깔고 눕기까지 했다. 이를 직접 목격한 시민들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고, 네티즌들은 '신림동 꽃거지에 이은 여자 노숙자인가', '행위 예술가인가'를 놓고 분분했다.

이런 반응을 기대했던 것이 아닌데, 기획했던 서울변방연극제(예술감독 임인자)와 크리에이티브 바키(연출가 이경성)는 다급히 언론 매체에 해명 글을 돌렸다. 사실 이것은 홍보를 위한 이벤트도 아니었고 그곳엔 괴물녀만 있던 것도 아니다.

지난 3개월간 광화문, 청계천 일대 공간을 돌며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연구하던 그들은 그곳을 지나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 도시에서 인간은 휴식할 수 있는가'라고. 이 거리예술은 4월 7일에 시작해 10일까지 이어졌다.

공연 첫날, 이 같은 고민을 공유하기로 한 관객들은 광화문 사거리, 일민미술관과 동화면세점 사이의 횡단보도에서 5시 45분에 모이기로 했다. 관객들에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가 적힌 지도가 주어졌고, 코리아나 호텔 1502호를 제외하고는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 거리에서 이뤄져 관객이 따로 없었다.

기자가 처음 찾아간 곳은 코리아나 호텔 1502호였다. 침대 위 이부자리는 헝클어졌고, 이불을 뒤집어쓴 여자의 구불구불한 머리칼은 베개 위로 삐죽 나왔다. 그리고 TV 속엔, 오물을 뒤집어 쓴 여자가 빨간색 소파 위에 앉아 있다.

호텔방의 구불구불한 머리칼은 아마도 소파 위의 그 여자 같다. 그 여자가 적은 듯한 종이 위엔 '빛만 존재하는 이 도시는 슬프다'고 적혀 있다. 그녀는 누굴까. 추리소설의 첫 장이 펼쳐진 듯, 이 공연을 따라가는 건, 그녀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이겠다 싶었다.

밖으로 나오자,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눈에 띄는 복장의 한 사람이 기괴한 행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존재를 즉시 알아차린다. 그는 이벤트 회사 직원이거나, 퍼포먼스 예술가거나, 미친 사람 중 하나다.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나타난 세 명의 여자는 행인들의 발목을 한동안 붙잡았다.

명함을 이어 붙인 베스트를 입고 '직장인스러운' 트렌치코트를 똑같이 걸친 두 명의 여자는 각각 푸른색과 자줏빛의 장갑을 끼고 돌발적인 행동을 벌였다. 이들은 쌍둥이들의 거울놀이처럼 똑같은 행동을 취하는가 하면, 도로로 뛰어들 듯한 행동을 취하면서 보는 이들을 긴장하게 하기도 했다.

다른 한 명의 여자는 빨간 소파(!)를 세종문화회관 대공연장 앞에 놓고 흰 베개를 끌어안은 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윽고 그가 한 행인의 도움으로 소파를 들고 대공연장 위 계단으로 진출할 때 세종문화회관 '관계자'가 등장했다. 퍼포먼스가 관계자에 의해 제지당하는 순간은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전부 목격됐다.

관계자가 느낀 위화감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시민을 위한 공공 예술공간인 세종문화회관 앞 퍼포먼스가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광화문을 포함한 도심 공간의, 예술에 대한 경직된 인식을 반영한다. 도시의 모든 공간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용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도시에선 거리예술조차 누군가의 '승인'이란 정제된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도시에서 인간은 휴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도시의 주도권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와 맥이 닿는다. 꼬박 하루 동안 네티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광화문 괴물녀'의 해프닝은 거리 공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들은 물어야 할 것은 묻지 않았다. 이 도시는, 그래서 더 슬프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