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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벽을 넘는 역사경관

전성영 사진전 <시간의 지문>
10년간 한국 고대사 담은 1만여 점 작품 중 16점 백미 추려
  • '생초고분군(산청)', 2002
고대 유적은 고요해 보인다. 한 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어 온 묵묵함이 첫인상이다.

대부분은 그 점에 압도 당한다. 그러나 드물게, 역사를 읽는 밝은 눈이 있다.

축적된 시간과 문명들의 흥망성쇠, 인류의 희로애락 그리고 그 모두가 속한 자연의 순리까지 보고 듣는다. 역사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전성영의 카메라가 그렇다.

그래서 사진전 제목이 <시간의 지문>이다. 서울의 풍납토성, 경북 경주의 황룡사 금당터에서부터 중국 길림성의 발해 서고성, 중국 요녕성의 고려성산성에 이르기까지 전시작은 역사의 무늬이자 화인(化人)이다. 작가가 10년 동안 고대 유적 기록에 매진한 결과다. 만 여점의 사진 중 열 여섯 점, 백미를 추렸다.

지난 14일 전시가 열리는 대안공간건희에서 만난 전성영 작가는 작품 각각의 사연을 해독해 주었다. 풍납토성을 발굴조사하는 사진에서는 고대국가 백제의 위용을 들려주었다.(<풍납토성(서울)>)

  • '쌍릉 소왕릉(익산)', 2006
"성벽에 나타나는 가로 줄무늬는 나무로 흙을 다지며 쌓는 판축기법의 흔적입니다. 도읍지의 중요한 토성이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규모로 볼 때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인력이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백제가 융성했음을 나타냅니다."

과연 풍납토성은 거대하고 발굴조사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소해 보인다. 광각렌즈로 원근감을 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현장 위로 솟은 아파트들은 고대 문명으로부터 얼마나 오래 지나 왔는지를 알린다. 역사에 대한 여러 이해가 겹쳐 있다.

"사람이 들어가게 찍을 때가 종종 있어요. 시간이 흐르고 당시의 사람들은 없지만, DNA를 물려 받은 후손들이 다시 같은 공간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내 모습 같기도 하고요."

경남 산청의 생초고분군에는 아예 한 조사원이 들어가 작업을 하고 있다.(<생초고분군(산청)>) 5C 가야의 지배층의 무덤이다. 그가 누렸을 부귀영화도, 그것을 둘러싼 관습과 드라마도, 당시의 모든 정황도, 심지어 유골마저 사라진 자리에 욕망을 갖고 숨 쉬는 현재의 생명 하나가 있다. 주변의 자연은 말이 없다. 이 아이러니한 배치는 통찰이기도, 유머이기도 하다.

전북 익산의 쌍릉 소왕릉을 담은 사진에서는 작가의 태도가 더 드러난다.(<쌍릉 소왕릉(익산)> 백제 말기 무왕의 아내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되어 온 곳이다. 덤덤해 보이지만 백제의 멸망 직전 사연이 깃든 곳이다.

  • '황룡사 금당터(경주)', 2007
서동요로 전해 내려오는 무왕과 신라 공주 선화의 혼인은 정략이었다는 설이 있고, 그마저도 진위가 불분명하다. 이제 와 누가 확답을 줄 수 있을까. 익산은 이 사연을 내세워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작가는 해질녘, 그곳에 강하게 조명을 터뜨렸다. 정면대결이다. 너의 진실이 무엇이냐. 무덤은 배경으로부터 툭 튀어나와 보인다. 그러나 너무 밝은 빛은 오히려 눈을 가린다. 한층 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무덤이 대답한다.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느냐,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전성영 작가의 카메라가 성실하게 도달하는 덧없음의 정서는 아름답다. 신라의 호국 신앙의 중심지였던 경북 경주 황룡사의 저 넓디 넓은 터는 장막 같은 구름으로 덮여 있다.(<황룡사 금당터(경주)>) 하늘이 느리고 두텁게 흘러가는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자연은 유적과 칡덩굴처럼 얽힌다.

"자연은 유적만큼 중요한 피사체입니다. 유적이 들어선 이유이자 원칙이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면 고구려 사람들은 길목이나 물길이 교차하는 곳에 토성을 세웠습니다. 지켜야 하는 곳들이었죠."

그래서 이 사진들은 '역사경관'이다. 사실뿐 아니라 현실, 물질뿐 아니라 정서, 대상뿐 아니라 정경(情景)을 보여준다. 프레임과 현장 사이 어딘가에 있다.

  • 전성영 작가
"가끔은 유적과 나 사이 시간의 벽이 극복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때 찍은 사진은 초현실적으로 표현되더라고요."

<시간의 지문>은 만주와 한강유역, 남부지방과 일본을 오가며 10년간 한국 고대사를 쫓은 전성영 작가의 첫 전시다.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에 고초를 겪기도 했고, 2004년에는 고구려성의 궤적을 모아 역사기행서 <천리장성에 올라 고구려를 꿈꾼다>를 내기도 한 지난 여정의 한 결산이자 쉼표가 될 것 같다. 전시 후에는 백제에 관한 책을 준비할 예정이다.

<시간의 지문> 전은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종로6가에 위치한 대안공간건희에서 열린다. 02-554-7332.

  • '몽촌토성(서울)', 1999
  • '칼바위제사유적(이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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