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기억을 되살리는 잔인하게 아름다운 음악[Classic in Cinema] (8) 영화 <소피의 선택> 속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만약 어떤 어머니에게 두 명의 자식 중 한 명만 살려줄 테니 죽을 자식을 스스로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 어머니는 과연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까.

어머니로서 이런 상황에 처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알란 파큘라 감독의 <소피의 선택>은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 두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던 한 어머니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잔인함을 고발한 영화다.

소피의 아버지는 반유태주의가 팽배했던 폴란드에서 유태인 말살정책을 제안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자였던 남편은 나치에게 끌려가 총살을 당하고, 소피 또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수용소로 가는 도중, 소피는 독일군 장교에게 자기는 유태인이 아니라고 하면서 두 아이를 풀어줄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독일군 장교는 은근하고 잔인한 눈빛으로 그녀를 희롱하면서 두 아이 중 하나만 살려주고 다른 하나는 가스실로 보낼 테니 소피에게 직접 선택하라고 한다.

소피는 절대로 선택할 수 없다고 하지만 독일군 장교는 만약 선택하지 않으면 두 아이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자 소피는 마지막 순간에 딸을 데려가라고 소리친다. 소피의 어린 딸은 울부짖으며 가스실로 끌려가고, 점점 멀어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소피는 경악한다.

그 후 소피는 유창한 독일어 실력을 인정받아 아우슈비츠 사령관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그녀는 어린이 수용소에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사령관을 유혹하고, 마침내 그로부터 아들을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하지만 사령관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소피는 사령관의 숙청과 함께 다시 수용소로 끌려간다. 아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고, 소피는 스웨덴의 난민 수용소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그녀는 손목의 동맥을 끊어 자살을 기도한다.

전쟁의 아픈 상처를 안고 미국으로 건너온 소피. 여기서 그녀는 네이단이라는 유태인을 만나 동거에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 스팅고라는 소설가 지망생이 들어오고, 이후 세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스팅고는 소피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과, 가끔씩 나타나는 네이단의 광기가 무엇 때문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네이단의 광기가 점점 더 심해져 끝내 소피는 그와 헤어지게 되고, 이에 용기를 얻은 스팅고는 소피에게 청혼을 한다. 바로 이때 소피는 수용소에서 겪었던 끔찍한 '선택의 순간'에 대해 얘기한다. 그 후 소피는 다시 네이단에게 돌아가고, 다음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침대 위에서 음독자살한 상태로 발견된다.

스팅고의 눈에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피와 네이단은 '죽어가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결코 지울 수 없는 끔찍하고 참혹한 기억들. 네이단은 피아노 앞에 앉아 소피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다.

이때 그가 연주하는 곡은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중에 나오는 <미지의 나라들, 미지의 사람들>이다. <어린이의 정경>은 슈만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쓴 작품이다. 모두 13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술래잡기> <조르는 아이> <만족> <트로이메라이(꿈)> <난롯가에서> <약이 올라서>와 같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담아낸 단순하고 소박한 작품이다.

영화에 나오는 <미지의 나라들, 미지의 사람들>은 <어린이 정경>의 첫 곡으로 멜로디가 자장가처럼 달콤하고 로맨틱하다.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 소피는 아이들에게 아마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장가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음악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여기서 슈만의 달콤한 멜로디는 소피의 참혹한 상황과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음악은 잔인하게 아름답고, 살아남은 자들의 세상은 끔찍하게 무심하다.



글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