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춤 페스티벌'서 5개 무용단 환경주제로 각축

이정희, 'silver healing dance'
정부의 개발 중심 정책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녹색 이슈다. 녹색 성장이 화두가 된 지는 오래 되었고 문화예술계에서도 녹색 문학, 녹색 미술, 녹색 음악 등 친자연을 테마로 한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연보호와 지구 살리기를 주제로 한 춤 공연이 열렸다. 세계무용센터가 지난달 29일과 30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주최한 '녹색 춤 페스티벌'이 그것.

이번 공연은 세계무용센터의 정기공연 '컬러 오브 댄스(Color Of Dance)'의 일환으로, 세계무용센터가 매년 테마 색을 정해 그 색에 관련된 안무가의 해석과 느낌을 전달하는 시리즈다.

작년의 금색(Gold)에 이어 올해의 테마 색이 녹색(Green)으로 정해지자 이번 공연의 주제 역시 곧 '환경'으로 선정됐다. 참가단체는 김긍수 발레단, 정귀인 현대무용단, 컨템포러리 발레씨어터 '얀(YWAN)', 이정희 현대무용단, 황문숙 현대무용단의 5개 무용단이다.

세계무용센터 이유영 사무차장은 "현재 전 세계의 관심사가 환경, 자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한 주제를 바탕으로 5명의 각 안무가들이 '초록'이라는 색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가갔는지 춤을 통해 풀어가는 것이 묘미"라고 설명한다.

황문숙, '사슴이 산다'
김긍수 발레단은 물과 소리를 주제로 한 <아쿠아포니아(Aquaphonia)>를 통해 물은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자원임을 현대적 발레로 풀어낸다. 제목인 아쿠아포니아는 물(Aqua)과 울림(phonia)의 합성어. 김긍수 예술감독은 침례의식을 차용해 물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정귀인 현대무용단은 <초록의 삶을 꿈꾸다>에서 이집트 여행을 매개로 사막과 초록의 낙원을 대비한다. 바짝 마른 나무와 흙을 매만지는 무용수의 몸짓과 표정은 삶의 긴 여로에서 지친 몸을 쉬어갈 초록의 낙원, 오아시스를 연상시킨다.

반면 컨템포러리 발레씨어터 얀은 직접적인 친자연을 언급하기보다는 자연의 순수함을 닮은 삶에의 갈망을 우회적으로 그려낸다. <얼룩진-스테인드(Stained)>라는 이 작품은 조금은 모자라도 아무런 욕심없이 사는 삶,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지으며 여유를 가진 삶을 가정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법정의 무소유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이정희 현대무용단의 <실버 힐링 댄스(Silver Healing Dance)>다. 제목에서도 예측가능하듯 이날 무대에 오른 것은 날렵한 몸매의 무용수들이 아닌 평범해보이는 '할머니 무용수'들이었다. 안무가와 친분이 있는 일반인들로 구성된 이날 '무용수'들은 최연소가 63세일 정도로 출연진 중 최고령을 자랑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60대는 예전처럼 힘없고 병든 노인의 모습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가운데 더욱 활력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60대 실버들의 모습은 이날도 무대에서 어김없이 증명되었다. 이정희 안무의 힐링 댄스는 그 노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더 건강한 삶으로 인도한다는, 또는 함께 가자는 무언(無言)의 제안이었다.

정귀인, '초록의 삶을 꿈꾸다'
황문숙 현대무용단의 <사슴이 산다>는 가장 본격적인 녹색 춤을 보여줬다. 숲이 사라지는 가운데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슴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사람이 주는 먹이와 사람의 언어, 그리고 사람의 행동들을 닮아가며 나약해지는 사슴들을 그린다. 그러나 끝까지 그들의 뿔을 잘라내지 않음으로써 안무가는 언젠가 그들이 숲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남겼다.

이번 공연은 전날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다음날은 비타민 스테이지 야외무대에서 이뤄졌다. 그리 크지 않은 행사임에도 이분화된 공연을 한 것은 이 행사가 가진 공공적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소극장은 비록 실내이기는 하지만 관객이 안무가의 친환경에 대한 생각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야외무대 공연은 오가는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된 것으로, 최근 최고의 관심사인 친환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주최 측의 태도가 엿보인다.

이유영 사무차장은 "참가 무용단들이 녹색(Green)이라는 색깔을 이미지화해 친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연의 소중함과 지구 살리기의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줄 수 있는 계기가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긍수, 'aquaphonia'
황규자, '얼룩진-스테인드'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