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작곡가의 장례식 장면서 울려 퍼지는 미완성의 진혼곡[Class in Cinema] (9) 영화 속 모차르트의

1984년에 나온 밀로스 포만 감독의 <아마데우스>는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모차르트의 라이벌 살리에리가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레퀴엠>은 가톨릭 교회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올리는 장례미사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작곡을 위촉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프란츠 폰 발제크라는 백작이 자기 아내의 기일(忌日)에 자기가 작곡한 것처럼 하기 위해 작곡을 의뢰했다고 한다.

자기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작품이 발표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차르트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왜? 물론 돈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음악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결별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니 돈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궁정이나 교회로부터 독립하기에는 음악가들을 둘러싼 사회적 여건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때였다. 음악 무대가 궁정이나 교회의 독점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을 위한 것으로 서서히 옮겨가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작곡가의 완전한 독립을 위한 시대적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고 있었다. 유럽의 여러 궁정의 생활 방식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으며, 혁명의 기운은 감돌았지만 구질서가 여전히 자연의 질서로 여겨지고 있었다.

불꽃 같은 창조력으로 종종 후원자와 마찰을 빚었던 모차르트는 결국 후원자로부터 독립해 생애 마지막 10년을 프리랜서로 살았다. 하지만 자유의 대가는 혹독했다.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모차르트는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고갈시켜갔다. <아마데우스>는 이런 모차르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살리에리는 <마술피리>를 공연하다 쓰러진 모차르트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기운이 없는 모차르트를 대신해 악보를 적어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곡이 바로 <사악한 자들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Confutatis)>이다. 음악으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그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모차르트 자신의 불꽃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너무 고갈시켜 왔다. 그래서 너무 지쳐 버렸다.

요양에서 돌아온 아내에게도 간신히 미소를 보낸 모차르트는 그로부터 얼마 후 숨을 거둔다. 모차르트는 끝내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작곡하던 레퀴엠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진혼곡이 되었던 셈이다. 영화에서 남편을 부르는 콘스탄체의 울부짖음을 배경으로 <레퀴엠> 중 <눈물의 날에 Lacrymosa>가 울려퍼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모차르트의 관이 쓸쓸하게 공동묘지로 향한다. 아내와 장모, 살리에리 등 모차르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비통해하지만 신부와 인부들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그가 묻히는 마지막 장소에 동행하지는 않는다.

인부들이 관 뚜껑을 열고 모차르트의 시신을 여러 구의 시신이 있는 구덩이로 밀어 넣자 신부가 종을 흔들며 의례적인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 의식이 끝나고 모두 마차를 타고 떠나기 전에 인부 한 사람이 하얀 가루를 삽으로 퍼서 시신 위에 뿌린다. 시신들 위로 하얀 가루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모차르트의 죽음만큼이나 처연한 <눈물의 날에>는 <아멘>으로 끝을 맺는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레퀴엠>을 듣고 있으면 이 작품이야말로 모차르트 음악의 완결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진실로 '위대한 작곡가'라는 이름에 합당한 '위대한 음악'이 바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는 이미 인류에게 충분한 공헌을 한 셈이다.

구질서의 붕괴를 가져온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으나 모차르트는 혁명의 열매를 따 먹어보지도 못하고 새 시대의 입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녕 구제도의 마지막 사람이었으며, 그의 때 이른 죽음은 세기말적 비극이었다. <눈물의 날에>가 울려 퍼지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은 그 세기말적 비극을 '눈물처럼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