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versus> 전시서 미술과 춤의 공존 상생 모색, 새판짜기

Good bye my dear
적막이 흐르는 전시장.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보는 관람객. 그동안 미술관의 모습이 이랬다면, 최근 미술관의 풍경은 이처럼 조용하지만은 않다.

행위예술의 개척자로 알려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는 벌거벗은 무용가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인간의 나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행위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최근 국내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등장했다. 지난달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박기원 작가의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Museum?>에서는 얼마 전까지 '살아 움직이는 설치작품'들이 지루한 전시장의 곳곳을 누볐다.

이 '몸-작품'들의 정체는 국내 최고의 기량의 현대무용단으로 평가받고 있는 LDP(Laboratory Dance Project) 무용단. 박기원 작가의 세계에 머물면서 그 일부로서 관람객들에게 다가가는 이들은, 동시에 그 안에서 무용 레지던시 <미술관, 속을 뒤집다(Turning Museum Inside Out)>라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미술관 혹은 작가와의 교감을 시도했다.

순수예술인 미술과 춤이 이처럼 '공존상생'을 모색한 것은 관념적인 연대가 아닌 새로운 판을 벌이기 위해서다. 인간의 몸은 현대예술의 주요한 관심사이지만, 그것이 무용이나 미술에 담기는 순간 대중의 관심은 쉽게 꺼진다.

첨단기술이 가미된 오늘날의 미술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몸을 작품 속에 담아내기도 하지만, 그 속의 몸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전자화된 코드로서의 몸, 이미지로서의 몸은 대개 작가의 관념 속에서만 유효하다.

그러나 지난 한 달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대한 미술과 무용의 몸은 '진짜 몸'이었다. 그것은 전시대상에 갇혀있는 몸도 아니다. 눈 앞에서 만질 수 있고, 심지어 관람객을 만지기도 하는 경계의 몸이었다. 관람객에게 체험된 작품(몸)은 그대로 관람객의 일부가 된다. 작품의 일부에서 출발한 퍼포먼스는 동시에 도슨트의 역할까지 해내는 것이다.

지난 2일 미술관에서 열린 프리젠테이션은 이런 그간의 실험을 집약해 보여준 시간이었다. 공간과 몸, 작품과 관람객이라는 이분화된 도식을 깨기라도 하듯, 무용수들은 관람객들 사이를 누비며 그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원래대로라면 멀뚱히 서 있었을 그 넓은 전시공간을 채우는 것은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있는 어떤 몸들이다.

관람객들 사이에 (관람객과 같은 일상복 차림으로) 고루 포진한 일단의 몸은 서서히 움직임을 시작한다. '우리들' 사이에서 시작된 낯선 움직임을, 관람객은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들만의 움직임에서 시작된 퍼포먼스는 이내 관람객에게 향한다. 손을 흔들고 손을 내민다.

'또 다른 우리들'은 윗층으로 이어지는 높은 계단의 난간에 매달려 위태로운 도발을 하는가 하면, 벽을 차고 텀블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한 덩어리로 모여 왁자지껄 떠들다가, '신성한'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쉘위댄스'를 권하기도 한다. 머쓱해하던 관람객은 이내 그들과 함께 헤드뱅잉을 시작한다. 작품-관람객의 구태적인 이분적 경계가 무너지는 이 순간, 박기원 작가의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는 제목처럼 그 의도를 십분 성취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퍼포먼스 중인 LDP 무용단(사진제공=박혜연)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미술관, '속이 뒤집힌' 미술관은 말 그대로 기존의 미술관의 이미지를 전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품의 일부에서 튀어나온 한 무용수는 관람객 앞에서 벽에 부착된 해설을 읽는 퍼포먼스로 기존의 도슨트 프로그램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무용수가 연기하는 도슨트는 전문적 지식으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 인물이 아니다.

외국어의 남발과 과장된 억양으로 묘사되는 무용수의 도슨트는 기존의 일방적인 해설-청취 방식을 조롱하듯 철저하게 희화화된 채 표현된다. 이것은 관념으로 무장된 불친절한 기존의 전시 행태와 수동적인 태도에 길들여진 관람 행태 모두에 변화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행사가 의미있는 것은 공연예술 레지던시(작가 거주 프로그램)로는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됐다는 데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이번 이벤트를 주도한 공연예술네트워크 판의 박성혜 대표는 "그동안 무용가들은 무용계 내부에서만 협업을 했었는데, 이처럼 타 장르와의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양쪽이 서로 창의적인 자극을 받고 새로운 관객층의 확보 가능성도 찾을 수 있게 됐다"며 성과를 자평했다.

공연예술네트워크 판은 지난 2007년에 이미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국제 무용 레지던시 '땅따먹기 프로젝트'를 주도한 바 있지만, 전문가 집단만의 작업이라 대중과의 소통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얻은 바 있다. 박 대표는 "그런 점에서 이번 시도는 '땅따먹기 프로젝트'보다 발전된 단계이자 대안적인 프로그램으로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박영란 학예사는 "이번 전시가 작가들에게는 창작 의지를 북돋우는 계기가 되어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해석과 시도를 촉발시키고, 대중에게는 현대미술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질적인 장르의 예술이 하나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시도는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대개 각각의 장르가 한쪽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역할에 그쳤다면, 최근 이어지고 있는 시도들은 두 장르가 동등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갤러리팩토리에서 15일까지 열리는 전시 역시 사진 작품과 춤 영상의 시너지가 만들어내는 이종결합 전시다. 부정기 간행물 versus의 아트디렉터 최승훈, 박선민의 사진작업과 안무가 오민정의 공연 영상 <>가 함께 상영되면서 잡지에서 보이고 있는 이미지 대비(versus)를 보다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에드가 드가의 그림 속에 담긴 무용수들은 언제나 멈춰 있다. 춤의 특성이 사라진 작품 속 발레는 그래서 '춤이 아니다'. 이제 단순한 피사체에서 벗어난 춤은 미술공간이라는 이질적인 장소에서도 자신의 특성을 온전히 살리면서 관객의 눈길을 다시 모으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