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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캐리처럼… 기호의 소비

[Story in the Kitchen] (1)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속 브런치
고소득 전문직 싱글녀들 화려한 생활, '브런치 함으로써 대리만족
음식을 먹는 시간은 기억을 만드는 시간이다. 켜켜이 쌓인 집단의 기억은 문화를 만든다. 인터넷처럼 혼자 하는 노동과 놀이의 등장은 혼자 먹는 밥집, 혼자 노는 글루미 족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이제 음식의 맛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작품 속 음식을 통해 우리 시대 문화를 논한다. 2000년대 '지금 이곳'의 문화와 시대를 초월한 한국인의 맛, 맛을 통해 그려진 대중문화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시작은 영어였다,고 말한다. 미드의 붐에 대해서 말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택광(경희대 영미문화학 교수)은 그의 블로그(http://wallflower.egloos.com/) '미국 드라마 세상읽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치 영문학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드라마는 영어라는 문화적 지배어를 통해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라고 말이다.

그 중에서도 20~30대 여성들이 꽂힌 건 <섹스 앤 더 시티>(이하 더 시티)다. 미드를 안 보는 여자들도 <더 시티>는 보고, 미드를 모르는 남자도 <더 시티>가 무슨 드라마인지는 안다. 미드의 붐은 90년대 <프렌즈>와 의 공동 활약에서 시작됐지만, 미드의 한국적 적용은 <더 시티>라고 말해야 한다.

왜 하필 <더 시티>에 빠져들었을까? 이 드라마는 흔히 싱글 여성들의 화려한 패션과 솔직한 성 담론을 담은 드라마로 회자된다. 이들의 연애담과 패션 스타일은 전 세계 싱글 여성들의 지침서가 됐다.

드라마는 주인공 캐리가 쓰는 칼럼 질문을 통해 뚜렷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 에피소드를 진행한다. 각 에피소드는 탁월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캐리는 친구들과 사만다와 미란다, 샬롯 세 친구들과 브런치 수다를 즐기고 쇼핑을 사랑하는 원조 슈어홀릭이다. 그녀들의 지상 최대 과제는 사랑이다.

캐리는 드라마 시즌 내내 연인 빅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마침내 마지막회에서 행복하게 재결합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인기분석이다. 하지만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방송된 드라마 시리즈가 지금까지도 바다 건너 한국 케이블TV에서 무한 재방송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뭔가 다른 플러스알파가 있을 터다.

드라마 속 캐리, 사만다, 미란다와 샬롯은 모두 고소득 전문직 싱글녀이고, 하나같이 자기 욕구에 충실하다. 이택광은 같은 글에서 '미국드라마가 제시하는 여성캐릭터들은 대체로 상상적 이미지로서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작용한다.

미국 드라마 여성들은 새로운 감각이라기보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지향해야할 하나의 감각들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 감각의 포석을 연 것이 <더 시티>가 아닌가 싶다. 자기계발 동기로 충만한 이들은 사회적 규율에 따라 자기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그 만큼 욕구도 정확하게 발산한다.

드라마를 화려하게 수놓는 명품 구두와 백은 이들의 욕구(혹은 감각)를 드러내는 하나의 기표처럼 보인다. '대놓고 PPL한 최초의 드라마'란 야유에도 여성들이 캐리처럼 마놀로블라닉과 지미 추를 일단 사보는 이유는 그 기표를 소비함으로써 캐리와 동등해 지고 싶은 심리가 아니었을까.

워너비와 소비산업의 환상적인 궁합

기호의 소비. 이것이 브런치가 식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 일게다. '대화를 통한 소통의 욕구'라는 번듯한 수사 건너, '브런치 함'으로써, 그들과 같아지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캐리를 둘러싼 상징들을 소비함으로써 워너비, 캐리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 말이다. (일단, 브런치는 지미 추보다 싸지 않은가.)

<더 시티> 속 캐리는 친구들과 브런치를 위해 유니온 스퀘어 근처의 식당들을 즐겨 찾는다. 아름다운 야외 정원이 있는 루나 파크(Luna Park), 해산물과 비즈니스 런치가 유명한 블루 워터 그릴(Blue Water Grill), 유니온 스퀘어 커피숍(Union Square Coffee Shop) 등이 단골집이다. 물론 디올을 입고, 마놀로블라닉을 신은 채.

캐리와 친구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주말 한 끼를 때우러 나왔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젊은 이들이 브런치를 찾는 이유에는 어느 정도의 과시욕이 자리 잡고 있다. "캐주얼하면서도 시크한 옷차림이 브런치용으로 딱", "<더 시티>를 보면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롯이 주말마다 멋지게 차려입고 브런치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쿨한 뉴요커의 전형"이란 사회초년생들의 인터뷰(조선일보, 2005년 5월 19일자 '웃고 떠들고 먹고 즐기는 주말 브런치')를 보면 한국의 20~30대가 브런치를 '하는'이유는 빵에 길들여진 입맛이나 소통의 욕구라기보다, 기호를 소비한다는 심리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 일주일 노동 후 나에게 주는 보상심리도 어느한 켠에 있을 자리하고 있을 테다.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도배한 브런치 카페, 브런치를 먹으며 웃고 있는 사진은 브런치가 스스로 위안과 과시적 소비를 드러내는 복합적인 현상임을 보여준다.

<더 시티>가 케이블을 통해 본격적으로 방송된 2000년대 중반, 브런치 카페가 이태원의 벽을 넘어 청담동으로 진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만원 미만의 '저렴한' 브런치가 홍대와 대학로 주변에서 선보였다. 돈 되는 어느 분야에나 발을 내미는 게 자본의 속성 아닌가. 동경하고 싶은 문화와 산업의 전략이 맞물리며 브런치는 이제 문화 코드가 됐다. 음식에 대한 기억은 경험에서 비롯되고, 반복된 체험은 입맛을 만든다.

날씨 좋은 주말 오후, 청담동, 이태원, 홍대를 가보자. '캐주얼하면서도 시크한 옷차림'으로 토스트와 스크램블 에그를 먹으러 줄지어 선 수 많은 캐리들이 있을 테니. 아, 그들의 목에는 DSLR이 걸려있다.

미국하고 달라요, 한국형 브런치

<더 시티>에서 그녀들이 먹는 브런치 메뉴는 간단하다. 팬케이크나 프렌치 토스트와 메이플 시럽, 계란 요리, 샐러드나 채소 요리, 감자 요리, 소시지나 베이컨에 주스나 커피 한 잔이 전부다.

한국식 브런치는 어떨까. 캐리가 먹는 미국식 브런치 뿐 아니라 팬케이크를 와플이나 잉글리시머핀으로 대체한 브런치, 덮밥을 기본으로 한 일본의 가정식 브런치, 멸치 국수 같은 한식 브런치까지 다국적 음식이 '브런치'란 이름으로 식당 메뉴판에 등장한다. '아침과 점심의 합성어'란 브런치 본래 의미를 깨고 새벽부터 밤까지 브런치를 파는 것이 한국형 브런치 카페의 특징이다. 특히 브런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태원에는 하루종일 브런치만 파는 가게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제 집에서 기분을 내는 브런치족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제목부터 끌리는 <잇 스타일 브런치>부터 <3000원으로 차리는 브런치>까지 수 십종의 브런치 요리책이 출간됐다.

초간단 브런치 식탁을 차려보자. 팬 케이크나 토스트, 계란(스크램블 에그·계란 프라이·삶은 달걀 등), 소시지 또는 베이컨, 샐러드 등을 준비해 커다란 접시에 담아내면 끝. 샐러드 대신 주키니 호박과 파프리카, 가지, 버섯을 썰어 팬에 구운 뒤 올리브기름과 발사믹 식초를 뿌린 '데운 야채'를 준비하면 더 그럴듯하다.

커피 대신 수프를 메뉴에 넣을 때도 있다. 단호박을 작게 썰어 전자렌지에 2~3분 돌린 후 우유 100ml와 꿀을 넣고 믹서에 갈면 봄부터 여름까지 시원하게 먹는 초간단 단호박스프다. 진짜 레스토랑 음식처럼 먹고 싶다면 계피가루나 녹차 가루를 뿌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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