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 in Cinema] (10) 영화 <귀여운 여인> 속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오페라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뼈져리게 느껴

예로부터 신데렐라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동화, 소설의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주인공이 예뻐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데렐라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빼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Once upon a time'으로 시작하는 서양 동화나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우리 동화나 신데렐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모두 한결같이 남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자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여자가 심지어는 착하기까지 하다. "....는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마음씨도 아주 착했어요." 신데렐라의 이야기에는 바로 이런 문장이 마치 관용어구처럼 나온다. 예쁜 여자가 마음씨까지 착하다. 그러니 신데렐라로서의 행운을 누릴 자격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아마 이 때문에 보통 여자들이 신데렐라 이야기에 넋을 놓는지도 모른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나 할까. 잿더미 속에서 헤매던 여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가져다 준 부귀영화.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의 공식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나오는 남자에게도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여주인공의 첫째 조건이 미모라면 남자주인공의 첫째 조건은 능력이다. 그는 여자를 호강시켜줄 수 있는 권력과 재물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얼굴이 잘 생겼어도 소용이 없다.

줄리아 로버츠, 리차드 기어 주연의 영화 <귀여운 여인>은 이런 신데렐라 공식에 딱 들어맞는 영화다. 에드워드는 망해가는 회사를 사들여 조각조각 나누어 파는 일을 하는 부유한 사업가로 일에 있어서만큼 철두철미하고 냉정한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사업차 로스앤젤레스에 갔다가 거기서 비비안이라는 매춘부를 만나 하룻밤을 지낸다.

그는 비비안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일주일 동안 자신과 같이 지낼 것을 제안한다. 비비안은 에드워드가 준 돈과 호텔 지배인의 도움으로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신한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사업상 만나는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도 하고 오페라에 데려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계약했던 일주일이 다 흘러갔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처럼 시계가 열두 시를 친 것이다. 에드워드 곁을 떠난 비비안은 또 다시 밑바닥 생활로 돌아온다.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쓸쓸해 하고 있는 사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에드워드가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그 후의 이야기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두 사람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 이런 동화의 마지막 문장처럼 되었을 것이다.

비비안을 멋진 귀부인으로 변신시킨 에드워드는 그녀로 하여금 상류사회의 생활을 체험하게 한다. 그 중 하나가 비행기를 타고 오페라를 보러 가는 것. 여기서 그들이 본 오페라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이다. 파리 사교계의 여왕 비올레타와 순진한 프로방스 청년 알프레도의 사랑을 그린 오페라다. 여기서 비올레타는 자기 집안의 명예를 위해 아들을 떠나달라는 알프레도 아버지의 간청으로 그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폐결핵에 걸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다.

이 영화에서 하고많은 오페라 중에 굳이 <라 트라비아타>를 고른 이유는 명백하다. 주인공 비올레타의 처지와 비비안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생전 처음 오페라를 보았지만 비올레타의 처지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비비안은 오페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자신의 앞날이 비올레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게 에드워드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오페라의 이야기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오페라와 다른 결말을 맺는다. 그녀가 누구인가. 빼어난 미모에다 천진난만한 성품까지 갖춘 귀여운 여인이 아닌가. 영화는 <라 트라비아타> 식 결말을 거부하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수순을 밟는다. 잘생긴데다 인품 좋고 돈까지 많은 남자가 그녀를 선택하는 것이다.

리얼리티로 따지면 <라 트라비아타>식 결말이 훨씬 설득력이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귀여운 여인> 식의 결말을 바란다. 우리 모두 얼마쯤은 가슴 속에 신데렐라의 꿈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꿈마저 없다면 인생이 너무 밋밋하지 않은가.



글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