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인-도시에 비II'
괴우는 괴상한 비, 회오리바람과 같은 이동성 저기압이 호수, 늪, 바다 등지에 나타날 때 공중으로 휩쓸려 올라간 흙이나 벌레, 물고기 따위들이 다른 지역에서 섞여 내리는 비를 이른다.

하늘에서 토마토가 내려온다. 물고기가 내려온다. 괴우(怪雨)다. 그간 익명인 시리즈로 우리에게 실존적 위치를 회화로 일깨워준 작가의 작품에 이번엔 다른 비가 등장했다.

이영조가 기를 쓰고 그려내는 것은 괴우 이전에 비, 비 이전에 사람들. 그것도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익명인. 이영조는 '대중'이라고 불리는 익명인들을 앞에 두고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익명성의 논리에 처하게 됨을 역설한다.

이영조가 완성해낸 익명성은 특별하지 않아 간과되기 쉬운 그들과 그들의 삶에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하며, 시공을 넘나드는 괴우는 나쁘지 않은 속임수와 유쾌한 환타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현대인의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풀어나가는 이영조의 발칙한 상상은 새로운 괴우 시리즈와 함께 도심의 단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우산 속 익명의 현대인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전시가 될 것이다. 5월7일부터 5월29일까지. 자하미술관. 02) 395-3222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