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 <세실비튼> 전 큐레이터 2人 백그라운드 뮤직 추천

'탐욕과 욕정'
샤갈, 고흐 등 최근 몇 년 간 국내 대형전시회가 잇따라 성공하며 미술관의 높은 문턱이 낮아졌다. 이제 주말이면 나들이 코스로 미술관이 꼽힐 정도.

하지만 이럴 때, 여전히 난관이 있으니, 바로 미술관의 정적을 깨는 각종 소음이다. 밀회를 즐기는 연인들의 귓속말은 무시하더라도, 아이 손을 붙잡고 교육열을 불태우는 엄마들의 수다를 듣다보면 작품 감상은 커녕 짜증만 가득 안고 미술관을 돌아오기 일쑤.

이럴 때 살짝, 이어폰을 귀에 꽂아보자. 단, 오디오가이드가 아니라, 전시회에 걸맞은 '백그라운드 뮤직'을. 음악칼럼니스트 노엘라 씨는 "사회 이슈가 생기면 사상가나 철학자가 글을 쓰고, 이후 그림으로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음악 작품이 만들어진다.

동시대 예술가들은 결국 같은 얘기를 음악과 미술, 문학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전시회에 걸맞는 음악을 함께 듣는 것은 소음을 차단하고 집중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 르네상스 시대부터 최근의 팝아트와 팝뮤직까지 등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거의 모든 예술이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는 점에서, 전시회에 걸맞은 '백그라운드 뮤직'은 자칫 이해하기 힘든 미술 작품을 쉽게 다가서도록 돕는다.

'신의 손'
최근 전시 중인 대형 전시회 큐레이터에게 각 작품에 걸맞은 음악을 추천받았다.

<신의 손, 로댕>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신의 손, 로뎅>전을 기획한 김진영 큐레이터는 리스트와 쇼팽, 드뷔시의 음악을 추천했다.

1. 리스트 Liszt, Franz[1811~1886]의 <단테 교향곡 Symphony to the 'Devine Comedy' by Dante>

단테는 연인 '베아트리체'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신곡>을 썼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등 3편으로 구성되어있을 뿐 아니라, 각 편당 33곡에 3연체 운율까지 갖추었다. 문학 장르에 속하는 <신곡>은 미술, 음악 등 다른 장르의 예술계 전반에 폭넓게 영향을 주었다. 로댕의 <지옥문>과 리스트의 관현악인 <단테의 교향곡>은 <신곡>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예술작품이다. 로댕은 <지옥문>을 통해 <신곡> 중 '지옥편'에 나타난 죄지은 사람들의 형벌 받는 참혹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리스트도 청각적으로 지옥을 표현하기 위해 악곡 중 일부를 섬뜩한 관악 소리와 함께 렌토 알레그로(Lento Allegro)로 처리하여 조바심과 공포심을 유도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신의 손, 로댕>전에서는 <지옥문>을 위해 제작된 <생각하는 사람>, <아담>, <이브>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오드리 햅번'
2. 프리데릭 쇼팽 Fryderyk Chopin [1810-1849]의 <즉흥 환상곡 c# op.66 Fantasie Impromptu in C Sharp minor Op.66>

로댕은 음악사에서 낭만주의 시대에 속하는 조각가다. 즉흥곡은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낭만주의 음악가 쇼팽이 좋아하는 장르였다. 즉흥곡은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악곡을 진행하는 형태를 말한다. 비슷한 의미로 동일한 모형으로부터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주조물들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로댕은 모든 단계, 변화의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수정, 해체, 반복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것이 로댕 작업의 특징인 '아상블라주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즉흥적으로 곡을 써내려 가는 과정을 곡에서 느낄 수 있듯이 작가의 아상블라주 기법을 통해 작가 작업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와 과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로댕의 작업실 테마에 대거 전시돼있다.

3. 드뷔시(Achille Claude Debussy 1862 - 1918)의 <낭만적 왈츠(Valse Romantique)>

이번 로댕전의 테마 중 하나인 까미유 클로델과 드뷔시는 1892년 예술가 친선 모임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둘을 연인으로 보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들이 매우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까미유는 드뷔시에게 결별을 고한 후에 자신의 작품<왈츠>의 청동상을 드뷔시에게 선물로 주게 되고 드뷔시는 이 선물을 죽을 때까지 소장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 전시된 작품이기도 하다.

<세실 비튼, 세기의 아름다움> 전

'마들렌 디트리히'
예술의 전당 V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세실비튼, 세기의 아름다움>전을 기획한 최인아 큐레이터는 영화 OST로 알려진 '문 리버'등 친숙한 노래 3곡을 추천했다. 영국 왕실 초상사진가이자 패션지 보그의 사진작가로 알려진 세실비튼의 전시회는 오드리 햅번, 비비안리,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타 가르보, 마를린 디트리히등 세기의 미녀 6인을 조명했다.

1. Lilly Marlene by Marlene Dietrich

독일 출신의 마를렌 디트리히는 2차대전 당시 독일과 미국 병사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의 양심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졌던 명곡 '릴리 마를렌 (Lilly Marlene)'을 불렀다. 중성적인 그녀의 매력만큼이나 허스키하면서도 노곤한 그녀의 목소리는 세실 비튼이 포착한 뭉근히 피어 오르는 자욱한 담배연기 뒤의 그녀의 모습과도 너무나 닮아 있다. 세실 비튼이 바라본 마를렌 디티르히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지직거리는 레코드 판에서 흘러나오는 고혹적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 Moon River by Audrey Hepburn

세실비튼은 오드리 헵번에게 '커다란 왜가리의 눈을, 저 먼 동양의 짙은 눈썹을 지니고 있다'고 묘사 했다. 어린아이와도 같이 순수한 그녀의 눈망울과 단조롭지만 맑은 그녀의 음색으로 부른 '문 리버'는 세실비튼이 바라본 그녀의 모습과 중첩되며 심심한 듯 하면서도 애잔한 감동을 전해 준다.

3.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 by Marilyn Monroe

세계 최고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가 부른 '다이아몬드는 여자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라는 노래는 그야말로 먼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그녀의 대표곡이라고 볼 수 있다.

세실비튼은 사실 마를린 먼로와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 한 번의 만남만을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포착한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를린 먼로의 가장 그녀다운 포즈를 너무도 잘 표현했다.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다이아몬드는 여자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속삭이는 먼로의 표정이 살아나는 듯하다.

'백그라운드 뮤직' 실제로 들어보니…….

천편일률적인 오디오가이드에서 벗어나 음악을 들으며 미술을 감상해보면 어떨까? <로댕전>과 <세실비튼전>을 감상하며, 큐레이터들의 추천곡을 다운받아 들어보았다.

<로댕전>의 경우 관람객에 따라 개인편차가 있지만, 감상 시간은 보통 1시간 내외. 그러나 음악을 들으며 감상하면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량 늘어난다. 한 작품 당 집중하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 동행했던 홍익대학원 휴학생 석정은(31) 씨(섬유미술전공)는 "전시회에 가면 작품을 만드는 기법에 대해 생각하는데,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니 작가의 삶과 시대, 작품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집중도도 훨씬 높아진다"고 말했다.

<세실비튼전>은 반응이 더 좋다. 세기의 미인들을 찍은 사진과 음악이 어우러져 마치 영화처럼 느껴진다. 미술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인 직장인 김희경(26) 씨는 "사진은 회화보다 대중적인 장르지만, 음악과 함께 감상하니 훨씬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마치 동영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