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in Cinema] (11)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속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뱃노래의 달콤한 멜로디 뒤 섬뜩한 밤의 음모 있음을 일깨워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유태인 학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얘기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그가 택한 방식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역설적인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지극히 반어적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주인공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아니 오히려 시종일관 보는 사람들을 웃겨가면서도 충분히 가슴 찡한 감동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귀도는 모든 일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가는 매우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어린 아이 같이 천진난만한 웃음과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그는 바로 그 순수함으로 상류사회 처녀인 도라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조수아라는 귀여운 아들까지 얻는다. 하지만 곧 불행이 닥친다. 나치에 의해 가족 모두가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수용소로 끌려온 귀도와 도라에게도 여느 남녀와 마찬가지로 행복하고 달콤하게 떠올리고 싶은 젊은 날의 추억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얼굴도 볼 수 없고, 손도 잡을 수 없는 곳에 갇혀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도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귀도는 독일군 장교 파티의 시중을 들면서 한쪽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축음기에 음반을 건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에 나오는 뱃노래 <아름다운 밤, 오! 사랑의 밤이여>이다.

도라에 대한 사랑으로 들떠 있을 무렵, 귀도는 오페라 극장에서 이 노래를 듣고 있는 도라의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았었다. 그의 젊은 날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때 그는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열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가.

이 노래를 들으며 멀리 도라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 밤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무대 중앙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곤돌라. 그리고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 하프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의 이중창이 마치 꿈속의 멜로디처럼 달콤하고 감미롭게 극장 안을 흐르고 있었다.

수용소의 차가운 침대에 누워 있던 도라는 멀리 남자 수용소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게 된다. 그리고 거의 본능적으로 그것이 귀도가 자신에게 보내는 노래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서서히 창가로 다가가는 도라. 귀도가 보낸 뱃노래에 귀 기울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밤인가.

시간이 흐르면 이 고통스러운 시간도 기억 저 너머로 사라지겠지.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만나게 되겠지. 뱃노래의 멜로디가 장벽을 넘어 내 귀에 들리듯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도 죽음의 장벽을 넘어 나에게 다가오겠지. 화면은 뱃노래의 멜로디처럼 가볍고 우아하게 흘러간다. 푸른 빛 안개가 자욱한 수용소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귀도도 이 노래를 들으며 숙소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잠든 아들을 안고 이 모든 것이 꿈일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 냉혹했다. 아들을 안고 숙소로 돌아가던 그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희멀건하게 널브러져 있는 시체 더미였다. 순간 노래가 멎는다. 뱃노래의 달콤한 추억은 결국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 비극적인 현실이 꿈이 아니라 방금 그가 들었던 뱃노래가 꿈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처럼.

<인생은 아름다워>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지극히 반어적인 방식으로 얘기한 영화다. 영화 속에 삽입된 <호프만의 뱃노래> 역시 이런 반어법에 일조하고 있다. 꿈같이 달콤했던 한 때의 행복을 노래하면서 동시에 그 꿈이 결국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뱃노래의 달콤한 멜로디 뒤에는 섬뜩한 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꿈결 같은 뱃노래를 배경으로 숙소로 돌아오는 귀도. 그는 이 모든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시체 더미. 이것이 바로 <호프만의 뱃노래> 뒤에 도사리고 있는 밤의 음모이다.



굴 진회숙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