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가구 주축 조명, 인테리어 소품 등 영토확장

요시오카 토쿠진의 Waterfall (사진제공=museum.beyond museum)
납작한 종이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니 벌집 모양의 종이 의자가 만들어졌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약해 보이지만 벌집 구조로 짜져 성인 남성의 무게를 견딜 만큼 충분히 견고하다. 의자를 넓혔다 좁혔다 하면서 몸에 맞출 수 있는 이 의자는 일본의 디자이너 요시오카 토쿠진의 작품이다.

에르메스와 스와로브스키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과 협업해온 그는 종종 독특한 디자인의 의자를 만들어왔다. 현재 비욘드 뮤지엄에 전시 중인 그의 작품 중에는 '의자 같지 않은' 의자가 여럿 있다.

천체 망원경의 광학렌즈 같은 특수 유리로 제작된 공공 벤치(water block), 종이 관에 넣은 섬유를 104도 가마에서 구워 빵처럼 부풀린 의자(pane chair-빠네는 이탈리아어로 '빵'이란 뜻), 햇빛에 반사될 때 무지개를 만들어 내는 '레인보우 체어'까지.

실용성을 최상의 가치로 추구하던 가구는 이제는 그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덕분에 한때 초등학생의 시험답안까지 바꾸어놓았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는 21세기엔 통용되지 못한다.

박종선의 Trans-Sep09L03 Beech (사진제공=갤러리 서미)
가구를 과학의 경지에서 끌어내린 것은 바로 '예술'이다. 실용성과 예술성의 모호한 경계, 그 경계지점이 확장되고 있다. 디자인 가구를 주축으로 조명, 유리공예와 같은 인테리어 소품으로까지 범위가 넓어진다. 바야흐로 디자인이 갤러리로 모여드는 중이다.

현대미술을 주로 다루는 소격동의 국제갤러리는 2005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2008년을 제외한 매해, 가구 기획 전시를 열어오고 있다. 디자인 가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장 프루베, 조지 나카시마, 세르주 무이, 샤를로트 페리앙 등의 전시였다. 지난해 7월에 열린 <인테리어스>는 갤러리를 서재, 주방, 응접실 등의 공간으로 꾸며 현대미술과 가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바람직한 예시로 관람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국제갤러리가 이들 기획 전시에서 초점을 두었던 분야는 유럽 빈티지 가구였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했던 장 프루베 전시의 경우, 실제로 프랑스 대학이나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써오던 가구가 상당수였다. 70~80년이 흐른 지금, 학생들의 손때 묻은 가구는 당당히 '작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당시엔 대중적인 가구였더라도 선구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 덕에 디자인사적 의미가 각별하거든요. 해외에서는 이미 가구 디자이너가 예술가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외부에 보여지는 것에 소비와 관심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예술작품과 함께 가구를 가치 투자의 아이템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국제갤러리 이승민 큐레이터는 갤러리가 디자인 가구를 주목하는, 최근의 경향을 이같이 설명했다. 국제갤러리는 오는 6월 25일부터 화가이자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제작한 가구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트 퍼니처'란 용어는 처음 유럽에서 생겨났다. 유럽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예술로서의 가구'시장이 조성됐고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도 '데코레이티브 아트'부문에서 가구를 비롯한 디자인 작품에 대한 정기적인 경매를 열어오고 있다. 한국에서 이 화두가 받아들여진 시점은 대략 2005년쯤이다.

요시오카 토쿠진의 Honey-pop (사진제공=museum.beyond museum)
갤러리가 디자인 가구를 소개하고 5년쯤 흐른 2010년, 지난 4월 17일 국내 첫 디자인 경매가 열렸다. 서울옥션은 스페이스 크로프트와 손잡고 연 4회의 정기적인 디자인 경매를 통해 국내 디자인 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이스 크로프트는 론 아라드와 피트 하인 이크 작품의 전시와 공식적인 판매를 담당할 정도로 디자인에 무게 중심을 둔 갤러리다.

첫 디자인 경매는 예상외로 성과가 좋았다. 국내외 디자이너의 73건 중 66건이 낙찰되어 낙찰률 90%를 기록했고 낙찰총액은 21억여 원이었다. 해외 작품의 경우,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낸 조지 나카시마의 테이블 세트처럼 기념비적인 작품들로 구성됐고 국내 작가의 경우 권재민, 이정섭 등의 몇몇 작가들과 직접 접촉해서 작품을 수급했다.

첫 회를 'at Home'이라는 테마로 가구, 조명, 가구와 어울릴 만한 미술품 등을 다룬 서울옥션은 6월 24일 열리는 2회 디자인 경매부터는 테마를 세분화, 다양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령,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나 아시아권 디자인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식이 될 겁니다. 미술품 경매는 11년쯤 됐지만 디자인 경매는 초반이다 보니 아직 준비할 것이 많아요. 디자인 경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해 4만여 명에 이르는 디자인 전공 졸업생들에게 상업적 시장 외에 작품으로서의 디자인 시장을 열어주는 데 있습니다." 서울옥션의 신승헌 홍보담당자는 이같이 덧붙였다.

5년 전부터 꾸준히 세계의 가구 디자인을 국내에 소개해온 갤러리 서미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해외 소개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와 올해 디자인 마이애미/바젤 참여 외에도 지난 5월 15일에 끝난, '한국 디자이너 5인 전'에서도 한국적 디자인의 가치를 뉴욕(R 20th Century Gallery) 한복판에서 알렸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에 선 디자인. 이들의 동거가 앞으로도 세련되고 '엣지'있게 계속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익숙한 물건의 갤러리 진입으로,어렵기만 했던 예술이 일상처럼 가까워지고 있다.

서울옥션 디자인 경매에서 1억 4500만원으로 최고가에 낙찰된 조지 나카시마의 테이블 세트 (사진제공=서울옥션)

정명택의 Ducking Lounge Chair (사진제공=갤러리 서미)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