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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전쟁'의 교집합엔 무엇이 있나

<여성연출가전 - New War, 전쟁이다!>
과거보다 현재·미래, 남성보다 인간 전체 관한 새로운 전쟁담론 시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문화계가 '전쟁'으로 물들고 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작은 연못>에 이어 다음달 개봉 예정인 <포화 속으로>는 스크린에서 전쟁의 상흔을 극적으로 되살리고 있다.

연극축제인 100페스티벌의 올해 주제는 '전쟁 그리고 분단'. 이밖에 연극 <내사랑 DMZ>와 뮤지컬 <생명의 항해>도 60년 전 '그 전쟁'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역사와 남성 중심의 서사에 제한돼 있는 기존의 전쟁 담론과 다른 전쟁 이야기도 있다.

여성연출가 6인이 모여 시도하는 <여성연출가전 - New War, 전쟁이다!>는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 남성보다는 인간 전체에 관한 전쟁 담론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전쟁을 다루고 있다.

'여성'연출가가 다루는 전쟁은 곧 페미니즘적 시선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하지만, 이를 염두에 둔 듯 이들의 관심은 인간 전체에 가 있다. 이는 지난 18일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른 백순원 연출의 <인형의 집>에 잘 드러나 있다.

헨리 입센의 원작 <인형의 집>은 1879년 초연 이후 페미니즘 담론의 아이콘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백 연출가는 이번 작품에선 노라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노라를 그런 상황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던 다른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부각시킨다. 그는 안정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숨긴 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100년 전의 노라와 마찬가지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돈,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준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런 것들은 다 허상이고 망상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그런 소유욕을 가진 채 살아가고, 또 살아야 한다. 이런 현대인들의 내면을 전쟁으로 그리고 싶었다."

백 연출가는 다큐멘터리 <시대정신(Zeitgeist)>에서 개인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늘날에도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전쟁'은 여성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오는 28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정혜경 연출의 <사랑 찾기, 칠천만분의 일>은 남북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무력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통일 원년을 배경으로 남북 남녀의 사랑찾기를 그린 이 작품은 통일 후 겪게 될 문화적 이질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다.

여기서 벌어지는 '전쟁'의 장소는 고시원이라는 작은 공간이다. 자신의 집을 마련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고시원에 북한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설득력 있는 설정이다. 한 사람의 몸을 가누기는 넉넉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마주치는 남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정 연출가의 의도도 여기서 출발한다.

"분단 후 남북한 간의 문화적 차이, 경제적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고시원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충돌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고시원의 사람들이 남북한 단일팀을 다 같이 응원하는 첫 장면은 화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랑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이질적인 문화 간의 충돌처럼 거대 담론이 아닌 전쟁도 있다. 8일부터 6월의 첫 무대를 장식하는 홍영은 연출의 <청춘, 전쟁이다>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을 통해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되새긴다.

여성연출가의 연출답지 않게 이 작품에선 유독 남성성이 두드러진다. 장르도 영화의 느와르를 빌려왔다. "극중 '암흑가'라는 설정도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암흑이라는 의미다. 그런 세상에서 사는 군상들을 작품에서 한 자리에 모았다."

이 같은 설정은 여성 연출의 전형처럼 굳어져버린 '섬세함'이나 '아기함' 같은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홍 연출가만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한때 암흑가에 몸 담았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똑같이 암흑가에 투신하는 아들은 가장 가까운 관계면서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염상애 연출의 은 '전쟁에서 시작해서 전쟁으로 마무리되는'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 <맥베스(Macbeth)>를 신체연극으로 변주한다.

셰익스피어의 현란한 대사 대신 이 작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은 몸과 도형이라는 오브제다. 고리(Ring), 원구(Sphere), 직선(Straight Line), 사면체(Tetrahedron) 등 특정한 형태의 도구들은 신체와의 접촉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빚어내는 전쟁의 실상을 표현한다.

'여성연출가'전의 유일한 모노드라마인 김수희 연출의 <싸우는 여자>는 일본 작가 사카테 요지의 원작을 각색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성찰한다. 제목의 '여자'가 싸우는 대상은 물질 문명이나 환경 파괴, 자살과 인간 복제 등 존엄성에 관한 부분들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DJ인 여자의 방송을 현실과 환상 속에서 모호하게 처리하는 이 작품은 원작과 달리 남자 버전을 추가해 한국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하지만 주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한편으론 싸우는 존재다"라는 인간 보편의 고민과 감성을 담았다"라는 것이 김수희 연출가의 의도다.

이번 연작에서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르는 김민경 연출의 <어멈>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을 한국적 형식과 색채로 새롭게 각색했다. 이번 공연에서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전쟁'을 다루는 이 작품은 전쟁이 있어야만 사는 억척어멈의 피폐한 삶을 굿과 탈춤에 담아낸다.

김민경 연출가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식들을 다 잃고 마는 어멈의 삶을 통해 전쟁의 귀결은 결국 '죽음'과 '희생'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연출가들이 다루고 있는 '전쟁'은 비단 국가나 민족 간의 물리적인 전쟁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욕망을 감춘 채 살아가는 한 개인의 존재 찾기, 이질적인 두 문화의 충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 등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또 다른 전쟁'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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