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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에 도착한 '뮤지컬의 대명사'

<코러스라인> 한국판 초연
브로드웨이 최고의 춤과 노래의 향연 명성… 2006년 리메이크 버전 선보여
뭔가 어설프지만 눈빛만은 뜨거운 배우 지망생들이 일렬로 무대 위에 서 있다.

그 앞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자는 안무가 마이클 더글라스. 자신은 춤 한 번 추지 않으면서 배우 지망생들의 기량을 평가하는 냉혹한 모습은 <아메리칸 아이돌>의 심사위원 사이먼과 닮았다.

미국에서는 뮤지컬의 대명사인 <코러스라인>은,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영화의 한 장면으로만 기억됐다. 물론 뮤지컬 버전도 1990년대 초반 공연된 바 있지만,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해적판'이었다. 국내 뮤지컬 팬들은 브로드웨이 최고의 춤과 노래의 향연을 맛보기 위해 직접 브로드웨이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국내에서도 진짜 <코러스라인>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제작사 나인컬처가 최초로 정식 라이선스를 획득해 지난달 27일부터 코엑스아티움에서 공연을 시작했기 때문. 특히 이번 한국 초연은 2006년 리바이벌 투어 공연 연출 겸 안무가이자 1975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동양인 무용수 코니 역할을 맡았던 바욕 리(Baayork Lee)가 직접 연출을 맡아 더 원작에 가까워졌다.

막은 이제야 올랐지만, 배우들의 이야기는 이미 3월 오디션부터 시작됐다. 지난 3월, 10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이 응시한 오디션은 1차 서류통과자들을 대상으로 2차부터 발레와 재즈 컴비네이션 등 춤과 노래 실력, 지정 연기를 심사했다. 배역 오디션 이후에도 별도의 추가 오디션까지 합하면 6차 오디션까지 치른 배우도 있다. 2주간의 오디션 과정에 참여했던 한 지원자는 "8시간 동안 한순간도 쉬지 않고 춤을 췄다. 이렇게 철저한 오디션은 처음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뮤지컬이 춤이 주가 되는 작품, 노래가 주를 이루는 작품, 연기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면, <코러스라인>은 그 세 가지를 고르게,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길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 지원해서 크리스틴 역으로 출연하기로 했던 그룹 애프터스쿨의 정아도 연습량 부족 때문에 초연 일정에서 하차하게 됐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춤추고 노래하면서도 계속해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코러스라인>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이런 어려움은 35년 경력의 베테랑인 뮤지컬배우 남경읍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배우라고 자부했지만 이번 작업으로 안일한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고 털어놓는다. "연출가와 조연출이 아침 8시부터 나와서 하루종일 배우들과 함께했다. 우리는 점심 때 잠깐 앉기라도 하는데 그들은 앉지도 않고 춤과 연기 지도를 계속했다. 나를 다시 다잡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코러스라인>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만하다."

지난 3월 오디션에서 심사에 참여해 배우들을 직접 선발하고 안무 수업을 직접 지휘해온 바욕 리 연출가도 이와 관련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는 "이제까지 함께 작업한 35개국 배우들과 비교해도 한국 배우들은 가장 열심히 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은 춤과 노래, 연기의 삼박자를 다 갖춘 배우들이 많은데 한국은 그런 배우가 드물었다"고 지적한다.

바욕 리의 말은 연극배우가 춤과 노래를, 무용가가 노래와 연기를, 가수가 연기와 춤을 배우며 출연하는 한국 뮤지컬계의 풍토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바욕 리는 "이 작품을 통해 춤, 노래, 연기를 동시에 교육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란다"고 개인적인 바람도 내비쳤다.

이번 공연은 1975년 초연 버전이 아닌, 2006년 리메이크 버전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 색깔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아니다. 오히려 30여 년 전부터 알려졌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올드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진만 협력연출은 "댄서들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주요 배역이 아닌 코러스들의 삶은 지금도 여전하다"며 <코러스라인>의 감동이 현재에도 통할 수 있음을 자신했다.

  • 뮤지컬 '코러스라인' 오디션
지난달 29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공개된 장면들은 그런 <코러스라인>의 고난도의 진수와 순수한 매력이 고루 담겨 있었다. 4명씩 짝을 지어 기량을 평가받는 배우 지망생들은 너무 긴장해 순서를 잊어버리거나 몸이 굳은 채 뻣뻣한 춤 실력을 선보인다. 오디션 도중 껌을 씹다가 지적을 받는 등 이들의 앙상블은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춤과 노래를 향한 열정이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출연진 중에는 노련한 중견 배우가 있는가 하면 <코러스라인>이 첫 작품인 새내기 배우도 있다. 이는 극 중 인물들의 처지를 십분 고려한 캐스팅 결과다. 17명의 인물 중 누구 한 명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배역의 비중이 비슷하고, 또 각자의 역량에 따라 새로운 뮤지컬 스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코러스라인>은 이 배우들의 실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코러스라인>을 둘러싼 etc.
1975년 7월 25일 슈베르트 극장에서 오픈한 <코러스라인>은 같은 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수상을 시작으로, 1978년에는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상, 극본, 작곡, 작사, 연출, 안무, 조명, 남여 주연상 등 총 9개 부문을 석권했다. 같은 해 개막한 밥 포시의 <시카고>는 <코러스라인>의 위세에 눌려 토니상에서 단 한 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다.

이후 <코러스라인>은 16년 동안 총 6137회의 장기공연을 마치고 1990년 4월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렸다. 이 기록은 1997년에 <캣츠>가 깨기 전까지 부동의 것이었다. 잭의 실제 주인공인 연출가 마이클 베넷은 이 작품 이후 <드림걸스>(1981)도 연출해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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