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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목메게 하는 음식들

[Story in the Kitchen] (4) 뼈와 살과 정서 담긴 먹을거리
배고픈 시절 콩깻묵 둔 밥과 누룽지… 386세대의 김밥과 막걸리…
요즘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아예 혼자 밥 먹을 수 있게 칸막이를 둔 '독서실 식당'이 등장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음식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크다.

먹는 걸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으면, 인삿말이 "밥 먹었어?"가 됐겠는가.

'맛은 화학적 현상이 아니라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 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 이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194~195페이지)

사실 이 코너를 기획한 취지도 이것이다. 우리에게 음식은 밥과 사람에 얽힌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별다른 메뉴나 별다른 맛이 없어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별난 식당에 가보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라고 입을 모은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누구도 그 말에 논리적인 토를 달거나 그 모습을 고까워하지 않는다.

그 '기억의 작용'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목메는 음식이다. 목메다. '기쁨이나 설움 따위의 감정이 북받쳐 솟아올라 그 기운이 목에 엉기어 막히다'란 뜻이다. 음식이 얼마나 특별하면 감정이 북받쳐 솟아오를까.

밥상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이 북받치는 감정은 어린 시절 먹어본 음식, 어린 시절 귀해서 자주 못 먹던 음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들의 자전소설을 보면 어린 시절 먹던 음식에 대한 묘사가 꼭 한두 장면씩 등장하는데, 그 풍경이 실감나 마치 그 밥상을 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작가들의 유년 시절 밥상은 한국 근현대사를 드러낸다.

'딸이라고 음식 차별해 본 적이 없는 엄마가 그 비상시국 때만은 오빠 밥은 따로 지었다. 콩깻묵 냄새가 워낙 흉해서 같이 지어서 가려 푸기조차 싫었던 것이다. 콩깻묵 둔 밥은 엄마하고 나하고 먹었지만 물론 거기에도 층하가 있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56페이지)

'할머니가 가져오는 하얀 쌀밥 누룽지를 오래도록 씹으면 고소하던 맛이 엿물처럼 달달해졌다. 집에서는 제삿날이나 명절이 아니면 하얀 쌀밥을 하지 않았다. 하얀 쌀밥을 할 때도 밥이 준다고 누룽지는 눌리지 않았다.' (이경자 <순이> 14페이지)

'여름 늦더위 때문에 어느 집이든 저녁은 안마당에서 먹게 돼 있거든요. 우리도 역시 그렇게 했습니다. 수숫잎으로 만든 넓은 거적을 깔고 그 위에다 둥근 상을 놓습니다. 반찬이라야 뭐 있겠습니까. 김치, 새우젓국, 오이 썰어 무친 것. 그게 답니다. 거기다 한 가지 얹자면 기껏해야 가지 삶아 무친 것 정도지요.' (구효서 <라디오 라디오> 2페이지)

세끼 밥 먹기도 힘든 시절에서 가끔은 누룽지를 만든 여유가 생겼고, 반찬 가짓수도 하나둘 늘어난다. 일제시대, 한국 전쟁 직후, 전쟁 후 산업화가 시작될 무렵의 우리 풍경은 이러한 것이다. 지겹도록 먹은 콩깻묵이 섞인 밥은 여전히 쳐다보기도 싫지만, 오이와 가지무침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목메는 음식이 된다.

체제의 이편과 저편에서

386세대에게 그것은 '투쟁'의 현장에서 손에 쥐고 먹은 김밥, 데모 뒤 먹은 막걸리와 파전, 소주에 곁들인 김치찌개 같은 것이다. 황석영은 소설 <오래된 정원>에서 그 절절한 감정을 상하 2권에 걸쳐 묘사했다.

주인공 오현우는 광주항쟁 주동자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잡지와 요리책을 읽으며 젊은 시절 맛과 추억을 재생시키는데, 수감자들은 이를 '외식'이라고 말한다. 체제의 안과 밖, 존재의 이편과 저편에서 경험하는 음식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요리책을 그냥 무턱대고 읽다 보면 박탈감이 더욱 심해진다. 나는 추위 때문에 이불을 코끝까지 올려 덮고 눈을 감고는 나의 요리를 시작하곤 했다. (…) 입맛은 온통 추억거리로 가득 찬다. (…) 이제는 밥과 같이 먹을 된장국 차례다. 콩나물밥에는 어쩐지 조개를 넣어 끓인 된장국이 꼭 알맞다.'

출소 후 그는 옛 애인이었던 죽은 윤희의 일기를 보며 다시 80년 광주를 떠올린다. 윤희와 김밥을 말 때 광주는 이념 대립의 장소도, 투쟁의 장소도 아닌 윤희와 보낸 젊은 시절의 한 켠이다.

'우리는 방바닥에 도마를 들여놓고 남은 밥으로 김밥을 말았지요. 당신은 갖가지를 넣고 둥글게 말아서 칼로 곱게 썬 김밥은 맛이 없다고 자기 식으로 싸겠다고 우겼어요. 김에다 밥을 길게 펴고 손으로 찢은 김치를 줄지어 늘어놓고 사이사이에 멸치 볶음을 박아두었어요. 그러곤 그냥 기다랗게 둘둘 말았어요. 이걸 한 손아귀에 쥐고 위에서부터 한입씩 덮석 베어 물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목메는 음식은… 삶은 달걀

이 목메는 음식이 오늘의 젊음에게도 있을까. 포털사이트에 '목메는 음식'을 쳤다.

"떡을 먹을 때 목이 메는 이유가 뭐지요?"

"과자나 계란, 고구마를 먹을 때 한 조각만 먹어도 목 메는 이유는?"

이들은 '뚫려 있거나 비어 있던 곳이 묻히거나 막히다'라는 의미의 '메다'에 생물학적 목의 의미를 갖다 붙인 '목 메다'를 '목메다'와 혼동해서 쓰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자기 세대의 '목메는' 음식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들에게 감정이 솟구치는 음식은 각자 개별적인 것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그 유명한 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를 들을 때, 목메는 관객은 없다.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이영애 분)는 상우(유지태 분)에게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말하며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을 하며 이들은 지겹도록 신라면을 먹어댄다. 시간이 흐른 뒤 은수가 "라면이나 끓여놔"라고 말하자, 상우는 "내가 라면으로 보이니?"라고 말하며 화를 낸다. 첫 만남에서 라면으로 인연을 맺었던 연인은 훗날 라면으로 이별을 예감한다.

와이드 스크린으로 신라면을 아무리 쳐다봐도 관객은 그 목메는 맛을 그릴 수 없다. 그것은 누룽지와 김밥이 주는 아득한 기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 맛은 은수에게 실연당한 상우만이 느끼는 맛이다.

요컨대 어떤 음식도 존재만으로 오늘의 10~20대에게 집단적 기억을 회상시키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목메는 맛'은 배부른 세대가 느끼지 못하는 맛이고, 삶의 깊이다. 그것은 삶의 특정한 시공간에서 체험할 수밖에 없는 섬세한 맛이다. 배부른 시대, 이제 우리는 하나의 미각을 상실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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