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창작센터글로벌 경쟁력 갖춘 스토리 발굴과 스토리텔러 양성 적극 지원

스토리창작센터 개소식
영화 <아바타>의 세계적인 흥행 이후, 국내에서는 다시 한번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촉발됐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이 제품 이상의 부가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이 성공적인 문화 콘텐츠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기본이자 필수 요소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스토리 산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 작품이 성공해도 주목을 받는 것은 배우나 연출가뿐이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는 주목을 받거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한 편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고된 생활을 견디는 일이 다반사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작가가 '굶어죽기 좋은 직업'에 머물러 있는 이유다.

때문에 스토리텔링에 대한 인식 전환과 그것이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완성되기까지의 안정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일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문을 연 스토리창작센터는 그런 요구에 대한 의미있는 답이었다.

맞춤형 인큐베이션에서 완성되는 '스토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신설한 스토리창작센터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스토리를 발굴하고 핵심 스토리텔러를 양성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스토리창작센터는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인 셈이다.

작가 양성 프로젝트의 출발은 '대한민국 신화창조 프로젝트'다. 지난해 첫 번째 공모를 시작했던 이 프로젝트는 시나리오, 게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스토리를 발굴해 제작부터 해외진출까지 연결해주는 국내 최대의 콘텐츠 프로젝트다.

총 상금 4억 5천만 원이라는 규모도 다른 공모전들을 가볍게 뛰어넘지만, 더 특이한 점은 공모전에서 발굴된 스토리를 좀 더 탄탄한 시나리오로 완성시켜주는 맞춤형 지원을 해준다는 것. 스토리창작센터의 역할은 여기서부터다. 선정 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를 완전한 문화상품으로 완성시켜가는 것이다.

올초 신화창조 프로젝트가 첫 번째로 발굴해낸 14편의 작품들은 이번 달부터 본격적인 컨설팅을 받게 된다. 스토리창작센터는 스토리 전문 컨설팅 기관에 의뢰해 개별 스토리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등 종합적인 처방을 할 계획이다.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각 프로젝트마다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 멘토를 지정해 일대일 맞춤형 지도를 하고, 제작사 매칭과 투자 유치와 같은 사업도 함께 전개하게 된다.

이와 함께 스토리창작센터는 예비 인력에서 중견 작가에 이르기까지 연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창작의 저변을 넓힐 계획이다. 올해는 '스토리창작스쿨'을 통해 국내 취약 분야인 판타지, SF, 무협, 추리 분야의 스토리텔러를 집중 육성할 전망이다.

모든 하드웨어는 작가와 이야기를 위해

2003년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감독 지망생 양제혁(37)씨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데뷔를 하지 않은 처지라 공식적인 수입이 없어 열악한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그런 그에게 신화창조 프로젝트는 특별한 기회로 찾아왔다. 자신이 쓴 스토리 <철수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가 대상을 차지하며 1억5000만원의 상금을 거머쥔 그는 마음 놓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작업실도 생겼다. 스토리창작센터가 그를 비롯한 20여 명의 창작자들을 입주시켜 프로젝트룸을 배정해준 것. 양 씨는 전문 시나리오작가 두 명과 함께 12월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 시나리오로 완성시킬 계획이다.

"작품을 개발하려면 프로듀서, 작가, 제작사 관계자들과 회의도 자주 하고, 밤샘 작업을 할 때도 많은데 이처럼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나 같은 신인들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스토리창작센터는 국내 최초로 집단 창작을 위한 스튜디오형 공간도 지원한다. 현재 국내에는 영화감독, 프로듀서를 위한 창작 공간 '디렉터스 존'과 '프로듀서 존'이 운영되고 있으나 다양한 장르의 스토리텔러를 위한 집단 창작 프로젝트룸(writer's zone)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센터 측은 총면적 743㎡(225평)의 프로젝트룸을 만들기 전 콘텐츠업계 전문가들과 입주 예정 작가들의 사전 수요를 조사했다. 애니메이션 <코리(조선 최초의 코끼리 이야기)>를 개발 중인 Y팀의 서준호 작가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와 투자제안서 개발을 위해 여러 명이 회의에 참여하고 토론도 해야 하는데 최소한 서너 명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반영해 만들어진 8개의 프로젝트룸은 3인실, 4인실, 6인실 등으로 구성돼 31명의 창작자들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게 됐다.

첫해인 만큼 스토리창작센터가 기대하는 스토리 창작 저변 확대 계획은 내년부터 시작된다. 특히 센터 측이 관심을 갖는 것은 각 지역의 스토리 자원이다. 이재웅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우리나라 각 지역에 고유의 스토리 자원이 많이 있다. 이것을 발굴해서 잘 발전시키면 '해리포터' 같은 세계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스토리창작센터는 이를 위해 대학, 자치단체, 문화산업진흥기관 등과 손잡고 고유의 이야기 자원을 개발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한편, 지역의 스토리텔링 클럽을 발굴해 활동을 지원할 계획도 갖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