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호 展조각·회화·설치의 경계, '비조각전 조각' 자기 부정과 자기 긍정의 동시적 표현

THE POT8975, copper wire, 75x75x70cm, 2008
닮은 듯 닮지 않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드로잉처럼 담백하고 수묵화 같은 품위마저 지녔다.

조각이되 조각이 아닌 듯한 이들은 꿈과 현실의 경계인양 아련하기만 하다. 실체와 비실체의 사이, 평면과 입체의 사이, 조각과 비-조각 사이에 존재하는 정광호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감상이다.

조각, 회화, 설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 작가의 작품은 작가 스스로 '비(非) 조각적 조각'(non-sculptural sculpture)이라고 칭한다.

"조각이 그 자신 이외의 모든 상황과 관련을 맺는다고 했을 때, 그 상황들, 즉 공간과 시간 그리고 주변의 것들을 모두 일컬어 비-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비-조각적 조각은 조각이 조각 아닌 세계와 가까이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자기 부정과 자기 긍정의 동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조각적 조각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가는 구리선을 망처럼 엮어 물고기, 나뭇잎, 항아리 등을 입체적인 형태로 만들어 조각을 완성한다. 하지만 조각은 '입체적인 동시에 평면적'(미술평론가 오광수)이다.

THE LEAF83230, copper wire, 230x230x15cm, 2008
촘촘하지 않게, 여백이 더 많은 구리선은 조명을 반사하면서도 벽면이나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양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림자에서도 묵직한 입체감보다는 선적인 운율이 살아난다. 또한 구리선 사이로 드러나는 공간과의 '마주침'이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철학자 이정우는 정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체험하는 미학은 "사물과 공간 그리고 차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이라고 말한다. "독특한 존재론적 사유의 산물이자 혼신의 힘을 다한 노동의 산물인 작품은 독특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나뭇잎과 꽃, 항아리가 주를 이루던 기존의 작품은 최근에 물고기, 거미, 그리고 문자와 그 문자의 평면적 전개 등으로 소재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의 작품 18점이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항공빌딩 1층에 있는 일우 스페이스에서 전시된다. 7월 22일부터 9월 8일까지, T. 02-753-6502


The Fish102162, copper wire, 162x160cm, 201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