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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4중주와 공존하는 고문의 기억

[Classic in Cinema] 영화 <시고니 위버의 진실> 속 슈베르트 가곡 '죽음과 소녀'
성폭행 때마다 틀어 놓은 '죽음과 소녀' 강박관념 표현하듯 끝없이 반복
언젠가 젊은 시절 반정부 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사람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물론 고문으로 말미암은 육체적 고통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수사관이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였다고 한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에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렇게 태평할 수가 없더란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화창하네요.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교외 나들이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런 아나운서의 멘트가 마치 "네가 고문을 당하는 이 순간에도 바깥세상은 잘 굴러가고 있어"라고 비웃는 것 같이 들렸단다. 그 느낌이 그렇게 참혹할 수가 없었다고.

수기를 읽으며 문득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죽음과 소녀>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는 젊은 시절 독재정권에 대항하다 참혹한 고문을 당한 후 그 정신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한 여자에 관한 영화다.

여주인공 폴리나는 남미의 한 섬에 있는 한적한 별장에서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인 남편 제랄드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섬에 폭풍우가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이 데려온 미란다라는 의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젊은 시절, 자기에게 전기고문과 성폭행을 가한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그녀는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의사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만큼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그의 체취, 그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와 특유의 어투, 니체의 말을 인용하기 좋아하는 습관,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아주 좋아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의사는 그녀에게 "슈베르트를 좋아하나?"라고 물었으며, 그녀를 성폭행할 때마다 그 음악을 틀어놓았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 같이 이 영화에서 '죽음과 소녀'는 작품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코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도 이 곡으로 시작해 이 곡으로 끝난다. 현악 4중주에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슈베르트가 이 곡의 2악장을 자신의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주제로 해서 작곡했기 때문이다.

2악장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유명하지만 영화에서 의사가 폴리나를 고문할 때 틀어놓은 것은 1악장이다. 슈베르트는 악기를 가지고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작곡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곡의 1악장은 예외다.

첫 시작부터 일종의 광기가 느껴진다. 섬뜩하고, 격렬하고, 신경질적이고, 불안하다. 처참한 고문의 배경음악에 어울린다. 그 일이 있었던 후, 폴리나에게 이 곡은 더 이상 슈베르트의 많고 많은 음악 중 하나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처참하고 비인간적인 기억의 세계로 그녀를 몰고 가는 매우 고통스러운 청각적 코드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폴리나는 수없이 많은 죽음의 유혹을 받는다. 처참한 고문의 기억은 너무나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전편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곡 '죽음과 소녀'는 아마 이런 강박관념의 한 표현일 것이다.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곡을 붙인 '죽음과 소녀'는 소녀를 데려가려는 죽음과 그것을 거부하는 소녀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아직 젊어요, 그러니 이대로 내버려두세요" "아름답고 상냥한 아가씨, 나는 너의 친구야. 두려워 말고 내 품에서 편히 잠들려무나" 폴리나의 무의식도 그동안 소녀와 같이 외치고 있었다. "나를 제발 내버려둬"라고.

이 영화의 결말은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한국판 제목만큼이나 엉뚱하다. 분노에 떨며 의사를 증오하던 폴리나가 그로부터 자신이 15년 전 그녀를 고문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받아낸 후, 그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회에 가서 그 동안 차마 듣지 못했던 <죽음과 소녀>를 감상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그 상처가 이제는 치유되었다는 듯이.

이 엉뚱한 결말에서 나는 문득 이 영화를 만든 폴란스키가 33년 전, 14살 소녀에게 마약을 먹이고 그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배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것은 어쩌면 폴란스키의 희망사항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그 의사처럼 자기도 그렇게 '간단하게' 용서받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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