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서편제>소설·영화 이어 세번째 변신… 우리 음악 정체성 찾는 과정 그려

"그리 생각해도 그만 아니라도 그만. 나는 무얼까 생각하며 걷고 또 걸어왔던 지난 시간. 눈물. 아픔 고통의 소리. 한이 있어야 난다는 그 소리. (중략) 난 여기 그래도 있어줄게. 그래 그것이 나의 소리."

27일 서울시청 앞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서울광장' 특설무대에서 뮤지컬 <서편제>가 그 베일을 벗었다. 2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친 세 번째 <서편제>는 20여억 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으로, 8월 14일부터 11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린다. 소설과 영화에 이어 뮤지컬로 다시 태어난 <서편제>의 변화된 모습은 어떨까.

NO! 국악뮤지컬

"원작소설이나 뮤지컬 속 배경은 50년대에서 70년대의 변화기다. 이 시기는 우리 한국가요사에 있어서 무차별적으로 서양음악을 받아들일 때다. 그 속에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뮤지컬로 태어난 세 번째 이야기 <서편제>는 서양음악이 판을 치던 당시로 돌아간다. 미군부대의 클럽에서 울리던 팝송과 록 음악은 <서편제>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원작소설과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린다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뮤지컬 <서편제>는 작가 조광화의 말처럼 우리 음악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그려간다.

뮤지컬 <서편제>는 기존 뮤지컬의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소설과 영화의 (판)소리와 함께 발라드와 록이 더해져 대중적이면서도 우리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음악을 택했다. 대중가요 작곡가 윤일상과 국악아티스트 이자람이 처음으로 뮤지컬에 합류한 것도 이유가 있다.

<보고 싶다>, <애인 있어요>, <오늘도 난>, <겨울이야기>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작곡가 윤일상. 그는 뮤지컬 <서편제>에서 대중의 귀와 입에 익숙한 리듬의 곡들을 풀어놓았다. 뮤지컬의 기본 틀인 발라드와 록의 상당 부분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일상의 대중적 음악 코드에 이자람의 국악적 앙상블은 그들의 말처럼 "충격"이라는 이름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제작진은 "<서편제>는 음악이다. 국악뮤지컬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작품의 소재와 주제가 우리의 소리이기 때문에 음악에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원작소설로 볼 때 <서편제>는 남도 소리를 하는 창이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모든 음악을 국악으로 한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제작진의 판단하에, 윤일상과 이자람의 하모니는 어색하지 않다. 뮤지컬 전체 30여 곡 중에 국악의 비중이 10여 곡. 작품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판소리가 맡지만, 일반 뮤지컬과 다르지 않은 전개가 독특하다.

또한 배우들의 조합도 대중음악과 판소리, 두 장르의 연장선상에 있다. <서편제>에서 앞을 보지 못하며 한(恨)의 목소리를 냈던 '송화'는 이자람과 함께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맡았다. 두 사람 모두 판소리와 대중음악을 함께 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뮤지컬 <서편제>와 닮아 있다.

송화의 배 다른 동생 '동호'에 임태경이 합류하면서 팝페라와 판소리, 대중음악의 절묘한 조화를 짐작할 수 있다. 대중가수 JK김동욱이 소리를 사랑하며 집착하는 아버지 '유봉'으로 무대에 올라 더욱 풍부한 조화를 꿈꾼다.

<서편제>의 김문정 음악감독은 "이번 뮤지컬에는 판소리 자체로서의 존재감과 익숙한 서양음악 형태가 공존한다. 억지스러운 퓨전스타일의 곡이 아니다. 두 장르 음악을 섞는 과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며 "이자람의 판소리와 윤일상의 대중적 멜로디는 같이 흐르지만 결코 퓨전 형태로 섞이지 않는다. 두 음악의 정서를 다 느낄 수 있으며, 음악적 묘미와 흥분이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동호와 소리의 정체성을 찾아서

"얼쑤! 쿵 딱!"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의 옆을 지키던 고수를 기억하는가? 송화의 소리를 들으며 진지하게 북을 두드리던 이. 송화의 동생 동호다.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드러내며 힘겨운 속병을 앓았다. 송화의 예술적 혼을 지켜보며 안쓰러워하던 사람. 뮤지컬 <서편제>는 동호의 시선을 따라간다.

미8군부대의 클럽에서 록 가수로서 활동했던 동호. 뮤지컬 <서편제>는 아버지 유봉의 서편제와 아들 동호의 현대음악 간의 충돌이 빚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서양음악에 대한 반발심이 일어나고, 동호는 우리의 음악, 소리를 찾으려고 몸부림친다. 뮤지컬은 캐릭터 변화가 극심한 동호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한다.

이지나
<서편제> 제작진은 "동호는 결국 송화를 찾고, 송화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 소리, 우리의 판소리를 대신한다. 돌아보면 있었지만 등한시했던 판소리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송화다"며 캐릭터의 변화를 설명했다.

즉 원작과 차별화된 캐릭터인 동호의 소리는 시대를 함께하는 대중음악을 상징하며,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판소리인 동화의 존재는 서로 함께 어우러져야 할 공존의 운명임을 보여준다. 결국 송화는 현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잠시 잊었지만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체성임을 상징한다.

송화 역의 이자람은 "뮤지컬 작업이 처음이다 보니 힘들게 생각한 것도 사실"이라며 "뮤지컬계에서는 다룬 적이 없다는 한국의 전통이 얼마나 낯설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전통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새로운 음악에 대한 부담 없이 본능에 충실해 노래했다"고 말했다. 이자람은 서울광장에서 펼쳐진 무대에서도 <나의 소리는>이라는 곡으로 소리의 정체성, 더 나아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노래했다.

제작진은 "뮤지컬 <서편제>는 우리가 가진 가난에 대한 증오로 우리의 전통조차 가난의 유물이라 여겼던 한국인의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이제는 우리의 잃어버린 전통성을 회복할 시간이며 무조건적인 사대주의는 벗어버릴 때가 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또한 전통성을 지키고 있는 예술에 대한 예우이고 원작과 이청준 작가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뮤지컬 <서편제> 연출가 인터뷰

처음 <서편제> 연출 제의를 거절했던 이유는.

창작(뮤지컬)은 무조건 하려고 한다. 그러나 <서편제>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없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라는 작품이 강렬하게 각인돼 있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관객이 원하는 것에서 <서편제>가 너무 무겁고, 진중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조광화 작가를 설득하면서 보람찬 일을 해보자고 했다. 영화가 아닌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존재의 가치를 찾고 있다.

배우 섭외에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서편제>는 판소리로 하는 뮤지컬이 아니다. 뮤지컬은 서양음악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잠시 나오는 판소리를 뮤지컬 배우가 단기간에 하기에는 관객에게 모독이라고 봤다. 그래서 이자람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고,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판소리를 한다기에 캐스팅했다. 사실 뮤지컬의 흥행 여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타 캐스팅에 대한 제의를 받았을 때 거절하지 못했다. 엄청난 파워의 스타들도 캐스팅 선상에 있었지만, <서편제>라고 하니 다들 안 한다고 하더라. 난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서편제>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흥행보장 캐스팅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진정한 꿈의 작업 중이다.

트리플 캐스팅이 많은데.

배우 마케팅이라고들 말하는데 전혀 아니다. 배우들의 목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자람도 국악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차지연도 앞으로 뮤지컬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장르를 넘어선 국악과 현대음악의 곡들로 목이 상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1막 20곡, 2막 14곡의 곡들을 소화하기에 배우들의 가창력이 중요하다. 1시간 40분 공연에서 모든 대사가 노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배우들의 목과 소리를 위해서 트리플 캐스팅을 하게 됐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