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구역 1-130>전옛 한국문화예술위 건물에 14명의 작가 동시대 예술에 대한 질문

김재남 작가의 작업
제의(祭儀)는 역사를 지속시키는 행위다. 새 가족이 탄생할 때,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갈 때, 기후와 삶의 방식이 바뀌는 절기마다 행해져 변화로 인한 단절을 메우고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이었다.

당장은 어떤 쓸모도 없어 보이는 일련의 절차들은 사람들을 몰입하고 고요하게 만든다. 부단한 일상에서 떼어 내어 역사적 존재임을 자각시키는 영적인 효과를 지녔다.

삶의 표면 아래 얼마나 오래되고 복합적인 지층이 쌓여 있는지,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선조들과 무궁한 시간이 깃들어 있는지,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삶이 후대에 대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므로 어떤 문화도 제의에 빚지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제의가 관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세대 간 단절이 심한 오늘날 문화의 보루로서의 예술은 종종 제의적 성격을 띤다. 재개발되거나 용도 변경되기 이전의 빈 공간에서 행해지는 게릴라식 프로젝트들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구로동으로 이전한 후 비어 있는 대학로의 옛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에도 작가들의 손과 숨이 닿았다. 8월14일까지 열리는 <자치구역 1-130> 전은 오는 10월 '예술가의 집'으로 탈바꿈하는 이곳의 지난날을 보듬고 앞날을 제안하는 예술적 제의다.

송영욱 작가의 작업
14명의 작가들의 건물 곳곳을 작업했다.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출발해 서울대학교 본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사를 거친 이곳의 유서(由緖)에 반응하는 동시에 동시대 예술에 대한 질문을 심어 놓았다.

송영욱 작가는 건물 내부 계단을 한지로 본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쳐 갔을 저 길을 부서질 듯 고스란히 재현한 모양이 어쩐지 숙연한 공기를 자아낸다. 이득영 작가는 헬리콥터를 타고 한강 다리와 테헤란로를 부감으로 찍은 사진을 전시했다. 저 사진에 기록된 한국 현대사의 격동이 교육 기관이자 예술 행정 기관이었던 이곳을 가로지른 한 축이었을 것이다.

은 예술 프로젝트를 심사·지원했던 이곳에서 묻혀 버린 수많은 제안들의 '넋'을 기리는 것이다. '접견실'에 수북이 빈 기획안들을 쌓아 놓았다. 채지영 작가는 계단과 복도, 창의 교차로에 '바람'을 놓았다. 한 데 엮인 투명 플라스틱 파이프들이 좌우로 돌며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곳은 옛날과 내일을 잇는 통로다.

오늘날 예술의 쓸모는 늘 의심 받고 방어하는 과정에 있다. 작업 개개의 뜻은 다르게 붙일 수 있을지 모르나 공통의 역할은 결국 삶을 돌아보고 역사를 염두에 두는 눈을 틔우는 것임을, 이런 제의들이 말해준다. 김자림 작가는 근처에서 채집한 이끼를 안에 들였다. '예술가의 집'의 바탕에 그런, 돌보는 마음이 깔렸으면 하는 뜻일 것이다.

김재남 작가는 건물 곳곳에 말풍선을 띄웠다. 이를 채워 나가는 것이 미술과 작가는 물론 관객이자 시민이고 역사의 주인공인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오유경 작가의 작업

채지영 작가의 작업
김지람 작가의 작업
이득영 작가의 작업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