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in Cinema] (23) 영화 <힐러리와 재키> 속 엘가의 첼로 협주곡남편 지휘 따라 연주하던 곡 들으며 배신과 병마의 고통 느껴

독일 출신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는 19세기 작곡가 오펜바흐의 숨겨진 첼로곡을 발굴해 여기에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렇다면 자클린은 누구일까?

베르너 토마스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떠올린다. 자클린 뒤 프레는 영국 출신의 첼리스트로 20대에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1987년 4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넌드 터커 감독의 <힐러리와 재키>는 이런 자클린 뒤 프레의 삶을 담은 영화이다. 자클린이 죽고 난 후, 그녀의 언니 힐러리와 남동생 피어스가 쓴 전기를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클린의 삶보다는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더욱 두드러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힐러리와 자클린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피아니스트였던, 자매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아이들 머리맡에 악보를 갖다 놓곤 했다. 영화에는 두 자매가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가 그려놓은 악보를 보며 함께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클린은 22살이던 1967년 당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한창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삶의 동반자이자 음악의 동반자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 무렵 그녀는 첼로의 명곡을 거의 모두 연주했으며, 대부분을 음반으로 남겼다. 그때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때로는 피아니스트로, 때로는 지휘자로 그녀의 연주에 함께 했다.

이런 행복도 잠시. 언제부터인가 자클린은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사 결과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그후 길고 외로운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힐러리와 재키>는 자클린이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자클린 뒤 프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영화에 이의를 제기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자클린이 평소에 알고 있는 자클린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상으로 남아 있는 그녀의 연주 모습이나 평상시의 모습을 보면 그녀는 소녀 같이 순수하고 소박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지닌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기적이고 괴팍한 예측불허의 천재로 나온다. 때문에 영화가 개봉된 후 로스트로포비치를 비롯한 뒤 프레의 지인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재키와 너무 다르다며 항의했다고 한다.

자클린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동안 남편 다니엘은 세계 최고의 음악가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기 때문에 그녀를 찾아올 시간도 별로 없었다. 날이 갈수록 그녀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자클린은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 절망감에 떨며 자기를 찾아와 달라고 절규하곤 했다. 다니엘은 나중에 유태계 피아니스트와 동거하며 두 아이까지 낳아 자클린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

생의 마지막에 자클린은 자신의 특기인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들으며 온몸이 찢겨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에도 그녀가 남편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에 맞추어 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장면이 실제 자클린 뒤 프레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자클린 뒤 프레가 해변에서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과 만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 흐른다. 자클린 뒤 프레의 연주로 듣는 음악은 감동적이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영화 속의 재키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영화는 영화 자체로 평가해야 하지만 이 경우에는 유독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다.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자클린 뒤 프레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글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