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채 개인전 <물소리 바람소리>

'자유 공산주의'. Oil on Polycarbonate,LED 2010
평양 만수대에 김일성 동상 대신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자유 공산주의'). 마찬가지로 뉴욕 맨해튼 중심부 42번가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보이는, 보이지 않는2').

너무나 익숙한 공간에, 지극히 대조적인 작품에 관객들은 멈칫한다. 그리고는 가까이서, 멀리서 몇 차례 더 작품을 감상한다.

수몰지구의 아픔을 잔잔한 호수와 소나무로 표현한 '이주민', 시골 마을 어귀 당산나무가 푸른 물빛과 교감하는 '시간의 간극', 텅빈 공간의 커다란 나무가 무슨 사연을 전할 듯한 '물소리, 바람소리' 등에서도 관객들은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지난 18일부터 서울 용산구 파크타워 비컨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손봉채 작가의 전시에서 자주 목격되는 풍경이다. 아마도 손 작가의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관객들이 귀기울이고, '입체회화'라는 생소한 양식에 관심을 갖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손 작가의 작품은 유독 '서사'와 '현장성'이라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어 남다른 느낌을 준다. 앞의 김일성 동상과 자유의 여신상의 설정은 65년의 북한체제와 자신이 경험한 자본주의 도시국가인 뉴욕의 상징물들을 크로스오버시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 묻게 한다.

'보이는, 보이지 않는 Ⅱ'. Oil on Polycarbonate,LED 2010
또한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편안한 인상의 나무, 산, 집, 골목에는 사실 저마다의 아픔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수난, 6‧25 사변 때 학살의 현장,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이 달아나던 골목길 등등.

"작품들은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 의식의 과정을 거쳐 형상화됩니다. 내 작품은 현장에서 출발합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이미지를 상징하는 소나무, 대나무는 그냥 풍경의 부분이 아니라 역사의 증언자이며, 그것이 서있는 곳은 역사의 현장이다.

손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평면회화가 아닌 입체회화라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캔버스 대신 방탄유리인 폴리카보네이트에 각기 다른 작업을 한 다섯 장을 칸칸이 세우고 LED 조명으로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작품은 비슷한 풍경을 겹치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이나 풍경을 공간분할한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다섯 개의 면으로 분할되지만 개념적으로는 시공간을 분할하는 것이다.

'이주민Ⅰ'.Oil on Polycarbonate,LED 2010
"단순한 풍경이나 장면이 아니라 그 너머에 스며있는 시간과 역사를 함께 만나보고자 하는 것이 내 작품의 의도입니다."

조각을 전공한 손 작가는 국내 키네틱아트(움직이는 조각) 1세대로 1997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거꾸로 페달이 돌아가는 자전거 207대를 설치한 작품'으로 주목받았고, 2000년대 들어 입체회화라는 그만의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는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보다 보는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겹, 한 겹 작가의 열정과 땀이 서려있는 손 작가의 작품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경험과 함께 인간과 역사, 삶을 생각하게 하는 색다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9월 12일까지 전시. 02)567-1652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