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 김두환 <잊혀진 향기>전휴머니즘 토속적 감성 추구한 1세대 화가, '김두환 연구회' 결성 재조명 활발

'삼존불' 캔버스에 유화 91×116cm 1980
개인의 삶이 한 시대를 가로지르며 역사의 부분으로 남기도 하지만 대게는 흔적조차 없거나 망각되기 일쑤다. 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9월 1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모처럼 작품을 선보이는 설봉(월성) 김두환 작가는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설봉(1913~1994)은 김환기, 이인성, 장욱진, 박고석 등과 동시대에 활동한 우리나라 근대미술 1세대 작가로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했음에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그는 1930년대 일본으로 유학, 명문 동경제국미술학교(현재 무사시노미술대학)에 들어가 세계 미술사조를 접하면서 기교보다는 개성과 독창성을 통해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은 실험적 작업 방식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후에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한 화폭에 야수파, 입체파, 후기인상주의적 경향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순수 창작 활동에 매진했으며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50,60년대 한국의 풍경과 사람들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대표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품은 일견 '향토예술'이라 할 만큼 향토적 서정이 두드러지고 색채는 인상파와 더불어 점묘법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면에 담담하고 소박한 토착적인 감성이 깊이 배어 있다. 하지만 그의 토속성은 향토라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우리 민족 고유의 심미적 특질에 터잡고 소재들을 통해 민족적인 사유의 저변을 확보하려는 의식과 맞닿아 있다.

'굴캐는 여인' 캔버스에 유화 72.5×90.0cm 1954
그가 동경제국미술학교 출신들로 이루어진, 우리민족을 상징(흰색, 소)하는 '백우회(白牛會)' 그룹에서 활동한 것이나 경주를 비롯한 경승지와 불상 등 전통적인 소재에 몰입해 적잖은 작품들을 남긴 것 등이 그러하다.

작가는 중반 이후 향리 인근의 수덕산을 비롯해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 등 산이 있는 풍경에 천착하면서 자연의 소소한 부분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산 자체를 하나의 조형단위로 하는 유기체적인 질서를 갖게 해 우리 산천의 수수하며 질박한 특질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표현하였다.

그는 충남 예산에서 미술연구회를 열고 고암 이응노, 나혜석 등 당대를 대표할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작업에 대한 연구를 쉬지 않았으며, 1980년에는 파리 국립미술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기도 하였다. 그는 파리 시절 수채와 유화를 함께 사용하는 과슈 표현에서 특이하게 색채를 먼저 한 후 드로잉 선을 그리거나 주제를 표현하는 데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를 통해 안정감 있는 그림을 연출하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조형어법을 창조해갔다.

이렇듯 김두환 작가는 우리나라 근대미술 여명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개성 있는 예술세계를 개척했음에도 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김 작가의 일생과 작품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설봉 김두환 화백 연구회'가 결성돼 김 작가가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설봉의 전시인 <잊혀진 향기>전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설봉의 독특한 예향은 9월 7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02)580-1620

'은행나무' 캔버스에 유화 102×116cm 197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