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광주비엔날레1901년부터 현재까지 인류·역사를 구축해 온 이미지 견본, 인식 방식 망라

뚜얼 슬렝 수용소 초상사진, 1975-1979
한 무리의 사람들이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각각 앉은 데에서 흘러나온 낮은 소리들이 공중에서 합쳐진다. 노래를 듣는 일이 천천히 흐르는 깊은 강을 보는 것 같다.

어디로 향하는 마음일까. 사방을 초상 사진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상하게도 하나 같이 눈 감은 얼굴들이다. 죽음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때 스러져간 이들을 뜻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광주의 기억은 바래지 않았다. 저렇게 쓸쓸하고도 결연하게 망자를 기억하고 있다.

몇 개의 방을 더 지나자 또 다른 망자들의 얼굴이 관객을 맞는다. 어떤 이는 두려워하고 있고, 어떤 이는 눈이 멀었으며, 어떤 이는 이미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하다. 죽음 직전의 얼굴들이다.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리서치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첫 번째 이미지는 1975년부터 1979년 사이 캄보디아 뚜얼 슬렝 교도소에서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당시 정권 하에 있었던 군인들이 찍은 사형수들입니다. 미학적 또는 윤리적 측면에서 난해한 이 초상 사진들은 이제 학살당한 이름 없는 생명들 중 유일한 생존자이자, 침묵하는 목격자로 남게 된 것입니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예술총감독)

어니스트 벨로크, 스토리빌 포트레이트, 1912
당시 크메르루즈 정권 하에서 200만 명이 학살 당했다. 캄보디아 총인구는 약 700만 명이었다. 그 기억이 사진에 서려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사회, 상황을 가리키고 있지만 이들 사진은 인류 공통의 역사다.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이었고, 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남긴 유언이다. 대대로 이미지는 매개의 역할을 맡아 왔다.

9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진행되는 2010광주비엔날레는 "이미지의 레퀴엠이자 임시 박물관"이다. 1901년부터 현재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인류가 역사를 구축하는 벽돌로 삼은 이미지의 견본들이 전시된다. 사진과 영화, 설치 작품뿐 아니라 우리가 이미지를 인식하고 특정하게 다룬 방식들까지 망라한다.

예를 들면 장례에 쓰였던 꼭두 인형과 신체 이미지를 반영한 의료 기구까지 동원했다. 개인과 사회의 접점에서, 욕구와 상상, 통념의 분기점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개입하고 작동했는지에 대한 탐사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예술총감독은 이번 비엔날레가 "이미지에 대한 병적인 사랑iconophilia에 빠진 현대사회와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인만 보더라도, 1초에 550개의 사진을 찍고,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한 사람 당 5만 시간을 TV 앞에서 보냅니다. 우리는 이미지에서 위안을 찾고 심지어 이미지를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기도 하죠. 이미지를 숭배하고 갈망하고 파괴합니다.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큰 규모의 산업이기도 합니다."

전시의 주제어인 '만인보(10000LIVES)'는 광주의 지역성과 보편성을 잇는 다리다. 고은 시인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투옥될 때 구상한 연작 시집의 제목을 따 왔다. 시인이 평생 만난 3800여 명의 인생을 모자이크한 시집의 구성이 전시에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각각의 작품은 사적이지만, 전체의 맥락 속에서는 인간과 이미지 간 근원적 관계에 대한 상징이 된다.

프랑코 바카리, 이 벽에 당신의 흔적을 남기시오, 1972
장장 31개국 134명 작가들의 자취가 이어지는 이 이미지의 여정에서 흥미로운 교차로들을 꼽아 봤다.

첫 번째 교차로, 카메라에 대한 일차적 반응

카메라로 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중대한 일은 기념 사진 찍기다. 일상적인 풍경, 아무렇지도 않은 관계도 한 프레임에 담기는 순간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김상길 작가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을 모아 찍는 <오프라인 동호회> 연작을 진행했다.

'알래스카 말라뮤트'를 기르는 사람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열광하는 사람들, 특유의 체크 무늬로 유명한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 모였다. 온라인 상에서야 끈끈하게 지냈지만 막상 오프라인에서 만난 그들은 어색하다. 그 관계성이 현대 도시의 초상처럼 보인다.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후반까지 미국 아칸소주의 한 시내에 있었던 마이크 디스파머의 사진관 사진 역시 당시 그곳에 대한 중요한 기념물이다.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가족 사진의 구도지만, 어쩐지 개별 인물에 관심이 가도록 찍혀 있다. 이 사진들은 작가가 사망한 후 14년이 지나서야 재조명되었다.

토마스 바이를레, 마오, 1966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도 호기심만큼이나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그로부터 이미지에 대한 금기가 생겨났다. 카메라에 찍히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속설도 있었을 정도다. 그 역사를 추적해 온 아르나울트 홀레만 작가의 영상 작업에는 카메라를 피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비튼 사람들이 등장한다. 1960년대 네덜란드의 원리주의 개신교도들이다.

두 번째 교차로, 사진과의 은밀한 관계

미국 사진작가 어니스트 벨로크의 사진들은 미스터리하다. 1898년부터 1917년까지 매춘이 합법화된 뉴올리언즈 스토리빌 구역의 매춘부들을 찍은 누드사진들이다. 작가와 모델 간 친밀한 관계, 그로부터 우러나온 과감하고 쾌활한 분위기가 있는 반면 대부분의 얼굴 부분은 검게 긁혀 있다. 작가가 사망한 후 발견된 원판을 인화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런 '파괴'의 경로나 원인은 알 수 없다.

지금은 신기할 것 없는 즉석사진 부스도 '전시'된 적이 있다. 프랑코 바카리 작가는 1972년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장에 즉석사진 부스를 들여놓고 관객들이 사진을 찍어 벽에 붙이도록 했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이라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 안에서 은밀한 일이 벌어질까 우려한 베니스 경찰의 노파심 때문에 전시 도중 부스를 가리고 있던 긴 커튼이 싹둑 잘려 나갔다.

이번 비엔날레에 당시 작품 <이 벽에 당신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시오>가 재현된다. 미술과 관객의 관계를 새롭게 제안한 이 선구적 작업이 오늘날 또 다른 스캔들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까?

하룬 파로키, 몰입, 2010
세 번째 교차로, 팝과 전위 사이에서

1960년대 경제호황과 소비문화의 활성화 속에서 서구 사회는 팝적 이미지와 기계적 패턴에 점령 당했다.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도 예민해졌다. 실험적 이미지와 정치적 급진성이 뒤섞였다. 독일 팝아트 운동에 영향을 미친 작가 토마스 바이를레의 작업은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다.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것 같은 패턴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일련의 작품들이 그 예. 특히 키네틱 회화 작품인 <마오>(1966)는 흥미롭다. 중국 공산당원들이 그려진 나무 조각들이 합쳐져 마오쩌둥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네 번째 교차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지 포화 상태에 이른 오늘날,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보는 행위의 인지적 측면, 사회문화적 의미를 탐구해온 작가들의 작업이 힌트가 될 수 있다.

주앙 마리아 구즈망, 페드루 파이바 작가는 로우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시각 프로세스에 대한 은유를 만들어낸다.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 타조 알, 나무 탁자, 유리 렌즈 등을 배치한 <눈의 모델>이라는 설치 작품은 빛이 망막을 통과하는 과정을 공간화한 것이다.

최병수, 이한열 열사 영결식, 1987
하룬 파로키 작가의 작업은 미디어를 통한 시각 문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다룬다.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목적으로 고안된 전쟁 시뮬레이션에 대한 영상 작업 <몰입>은 정치적 구조와 미디어 산업의 개입으로 전쟁이 비디오게임화되는 현상을 고찰하면서도 이미지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아르투르 즈미예브스키의 영상 작업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들이 '보는' 세상을 그리게 하고, 그 과정을 담아냈다. 그 그림들에서 관객들은 무엇을 보게 될까.

다섯 번째 교차로, 이미지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1987년 6월 9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시위 중 한 대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비극을 대변한 이미지는 유명하다. 최병수 작가가 그린 이한열 열사의 대형 영정이었다. 픽업 트럭에 실린 그 그림이 수많은 군중을 비탄에 빠뜨렸다. 장례식 후 연세대학교에 걸렸지만 공권력에 의해 철거당하고 찢겨지면서 사회 변혁의 기폭제가 됐다.

비엔날레 전시장에 복원된 이한열 열사의 걸개그림에는 이어 붙인 흔적이 역력하다.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동시대 세계의 비극이 이 작업을 둘러싸고 있다. 토마스 히르슈호른 작가의 <박힌 페티시>는 끊이지 않는 전쟁에서 죽은 이들의 이미지를 나사가 잔뜩 꽂힌 마네킹으로 재현한 것이다.

이데사 헨델레스, 파트너(테디 베어 프로젝트), 2002
팔레스타인 내전에서 통용되는 이미지들, 유혈 사태의 희생자 초상과 '순교'를 부추기는 포스터 등이 이어지고 9.11 사태 직후 전세계 신문의 보도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망연자실해진다. 오늘날 폭력과 참상을 전하는 이미지들은 교훈을 주는 것일까, 악랄한 페티시즘의 대상일까.

한 전시실에는 실제 크기의 인물상이 가득하다. 1965년 중국 쓰촨성 정부가 충칭의 쓰촨 미술학교에 의뢰한 작품들인 <랜드 컬렉션 코트야드>다. 따이 지방 대지주에게 착취당한 소작 농민은 제작된 후 그 지주의 집 마당에 설치되었고 계급투쟁에 기여했다. 어떤 이미지들은 세상을 바꾸려는 사명감에서 탄생한다.

여섯 번째 교차로, 토템이 된 이미지

이번 비엔날레의 대표작 중 하나는 이데사 헨델레스 작가의 <파트너(테디 베어 프로젝트>다. 1900년부터 1940년까지 찍힌 3000여 장의 테디 베어 사진들을 복층 전시공간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채운 작업이다. 매우 사적이지만 동시에 당대 사회상황이 스며들어 있는 사진들의 아카이브 속에서 테디 베어라는 오브제는 역사적 영속성을 부여받는다. 실체가 사라지고 주인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는 꼭두가 있다. 1940년대까지 장례에 사용되었던 이 작은 나무조각들은 악귀를 몰아내고 망자의 곁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움직이는 모양의 꼭두는 망자를 죽음의 길로 안내하고, 여성의 모습을 한 꼭두는 망자를 보살피며, 광대 모습의 꼭두는 슬픔을 위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토마스 히르슈호른, 박힌 페티시, 2006
일곱 번째 교차로, 내가 나를 보는 방법

1880년부터 1968년까지 살았던 중국인 예징루의 사진은 이번 전시의 출발점 중 하나였다. 1901년부터 죽을 때까지 매년 연례행사로 찍은 초상사진은 곧 그의 생애사였다. 또한 그 안에는 시대의 변천과 초상 사진 스타일의 흐름까지 담겨 있다. 19세기 서구 부르주아 초상사진의 전통을 따른 초기 사진과 달리 후기 사진에서는 모던하고 과감한 형식이 발견된다. 일렬로 배치된 60여 장의 사진들이 그 시간을 따라가게 만든다.

전시 후반부의 상당한 분량이 '자화상' 작업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디지털화와 함께 자신을 표현하고 기록하는 이미지 문화가 확산되는 현재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은 좀더 첨예해졌다. 대만 작가 데칭셰는 1980년 4월 11일부터 1981년 4월 11일까지 1년간 매시간 자신의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를 했다.

찰칵 찰칵, 시간 기록계 소리와 함께 넘어가는 이미지들 속에서 그의 머리카락은 덥수룩하게 자란다. 그 강박적인 리듬 속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자신을 찍고 보는 습관적 행위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한스 펠드만, 9_12 프론트 페이지, 2001
예징루의 초상사진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